검푸른 하늘이 이불처럼 나를 감싸주던 때가 떠오른다. 내가 다니던 대학 앞에는 한옥마을이 있었다. 기숙사 안에서 가슴이 답답해질 때마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나서면 밤공기는 시원했다. 관광객들이 다 빠져나간 한옥마을은 아늑하고 편안했다. 낮은 돌담과 발밑을 밝혀주는 불빛들은 가라앉았던 기분을 상기시켜 주었다. 아무도 없는 거리를 이어폰 속의 노래와 함께 발맞춰 걸었다. 노래를 따라 중얼거리기도, 하늘과 천변이 함께 보이는 다리에 멈춰 멍하니 서 있기도 했다. 골목골목을 천천히 누비다 다시 기숙사로 향하는 발걸음은 한결 가벼웠다. 누구에게도 터놓지 못한 당장 하루하루의 피곤함도, 미래의 막막함도 몇 그램 정도는 바람에 흘려보낸 듯 다시 현재에 집중할 수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몇 년 후 다시 그곳을 찾았다. 그때의 홀가분함을 다시 느끼고파 부러 근처에 숙소를 잡고 밤 산책을 했다. 오랜만에 찾은 그곳의 밤은 사람이 없는 것도, 돌담과 발밑의 불빛들도 그대로였지만 나에게 무서움을 불러일으켰다. 4년을 내리 지나다녔던 그 길가가 그새 낯설어졌는지, 느껴지는 으슥함에 나도 모르게 주위를 계속 두리번거리게 되었다.
장소와 음악은 나를 종종 추억하던 그때로 데려다주기도 하지만, 슬프게도 다시는 느낄 수 없는 감정들도 있다. 그 사실이 직감적으로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지금 이 순간은 내 기억 속에 영원히 남아있겠구나. 동시에, 이와 똑같은 감정을 다시는 느끼지 못하겠구나.’
역설적으로 다시 한번 느낄 수 없기에 그 기억은 더 찬란하게 빛난다. 그런 순간을 마주할 때, 나의 직감이 지금을 잘 기억하라고 말해줄 때에 그 순간을 더 고이고이 접어 간직하자고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