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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지담
Nov 11. 2022
치가 떨리든 심장이 두근거리든 매한가지
'생존'과 '인연'에 대한 소고
사진 : 환경부
세상에 몹쓸 새가 뻐꾸기다.
남의 둥지에 몰래 알을 낳고 심지어 둥지주인더러 품고 기르게 하는
탁란
(托卵, parasitism/deposition)
의 주인공.
뱁새둥지에 10초만에 알을 낳고 도망가는 뻐꾸기.
자기몸집보다 몇배가 넘는 새끼뻐꾸기를 깃털이 닳도록 먹이를 물어다 먹여 키우는 뱁새.
이들의 관계에서 뻐꾸기는 늘 악역이다.
그런데 실상을 알고 보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뻐꾸기는 아프리카에서 여기 한국까지, 무려 왕복 2만km를, 심지어 제대로 먹지 못하고 이동한다. 여름철새인 이 녀석은 5~6월에 아프리카를 출발, 7~8월에 한국에서 번식한 후 다시 아프리카로 하루 평균 200km가 넘는 속도로 날아야 한다.
따지고 보면, 그 먼길을 그 빠른 속도로 쉬지않고 알.을.낳.으.러. 여기까지 오는 것이다.
그리고 길어야 3주
안에
알낳고
알에서
부화시키고 이소할 수 있도록 키워낸 후
새끼뻐꾸기를 데리고 다시 아프리카까지 그 먼길을 다시 떠나야 한다.
뻐꾸기에게는 단지 '살기 위한 본능'외엔 아무 것도 생각할 겨를이 없다.
한국에 도착해 알을 낳을 장소를
고를 시간도
집을 지을 시간도
없을 뿐더러
오랜 날개짓
에
지쳐버려 새끼에게 먹이를 찾아 물어다
줄 힘도 없다.
자기 새끼를 이소할 수 있도록 키워내줄 그 '누군가'에게 맡기는 수밖에.
그 사이 어미는 새끼까지 데리고 다시 먼길을 떠나기 위
해
힘을 비축해두어야만 한다.
그저 생존이다!
과연 누가 이 뻐꾸기를 세상에 둘도 없는 비열한 녀석이라 흉볼 수 있을까.
과연 누가 이 뻐꾸기를 모성애도 없는 냉정한 에미라고 손가락질할 수 있을까.
과연 누가 이 뻐꾸기 아가를 자기 살자고 다른 친구 죽여버리는 살인조라고 욕할 수 있을까.
그저 본능에 의한 생존일 뿐이다!
먹고 사는 것이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들의 최우선과제다.
여기에 도덕과 윤리는 종과 시대와 관습과 문화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어야 한다.
이런 이유로,
굳이 내가 뻐꾸기를 이해할 필요까지 없겠지만
그렇다고 욕하고 흉볼 논리와 권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이 둘의 관계는 당사자(조)가 아닌 이상 어느 누구도 시비(是非)를 가릴 수 없다.
가려서도 안되고 가릴 필요 또한 없다.
그들은 그들만의 세상에서 그들만의 윤리로 그들만의 규칙에 의해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생.존.할 뿐이다.
과연 우리 인간은, 나는.
우리 사는 세상에서
내 새끼를 위해 이토록 욕먹을 각오는 하고 사는가?
과연 우리 인간에미들은
내 새끼의 독립을 위해 이토록 냉정할 각오는 되어 있는가?
과연 우리 인간부모들은
내 새끼의 생존을 위해 이토록 육신이 상하도록 헌신할 각오는 되어 있는가?
나는 나의 생존에 치열한가?
이렇게
어처구니없지만 아이러니한
자연이 맺어준 관계를 우리는
'인연'이라
부른다.
인간의 시선으로 볼 때
뱁새 입장에서 뻐꾸기는 자기새끼를 자기도 모르게 죽여버리는, 세상에 둘도 없는 악연이겠지만
뻐꾸기 입장에서 뱁새는 자기새끼를 자기보다 더 튼실하게 키워주는 세상에 둘도 없는 호연이다.
과연 이 둘의 관계는 필연일까 우연일까.
자연이 이유가 있어
이리 맺었
겠지.
우리네 인간도 그렇지 않을까.
나에게 상대는 천하에 없을 악연이지만
상대에게 나는
둘도 없는
호연일 수 있고
나에게 상대는 더이상 없을 호연이지만
상대에겐 나는
둘도 없는
악연일 수 있다.
그러니
악연때문에 치가 떨리는 것도
호연때문에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도
매 한가지다.
호연도
악연도
다 나에게로 온
인연이니까.
이렇게
가혹하게 냉정하면서도
지독하게 너그러운 것이
자연의 대법(大法)인 것을,
세상의 법칙인 것을,
우주의 원리인 것을,
그리고.
지극히 자연스러운 조화인 것을.
모든 인연은
일체(一切)를 위한 조화의 의무
인 것을.
어찌 내 작은 머리로
악연이다 호연이다 가늠할 수 있을까.
그저
뻐꾸기처럼 뱁새처럼
생존
부터 하라고
그저
자연이 선택하여 내게 맺어준
인연
인 것을.
keyword
생존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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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unch Book
1000일의 새벽독서 - 관점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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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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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일의 새벽독서 - 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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