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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 Dec 21. 2022

결코 내게서 해방될 수 없는
고집불통 너에게.

'정신'에 대한 소고

정신에게.

내 오늘은 작정하고 네 정체를 알려주마.

고집불통이다.

한 번 박히면 빼낼 줄을 모르니..

게다가 박힌 놈이 굳어지기 시작하면 엄청난 속도로 스스로 몰아붙여 고정관념으로까지 빠르게 진화해대니... 이 속도보다 더 빠른 속도로 새로운 지식의 투입을 위해 문을 활짝 열어두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몹쓸 반려견을 두 마리나 키운다.

편견, 선입견.

이 녀석들은 도대체 뭘 먹여 키우길래 힘이 이토록 센지 왠만해선 버릇들이기가 쉽지 않구나

어디 훈련소에 보내 그 못된 성질을 고쳐야 하려나.

아니면, 스스로 가책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려나.


고마운 줄을 모른다.

육체가 이리 먹여주고 키워주는데도 늘 자기 맘대로 뛰쳐나가다니...

세상이 그리 챙겨주는데도 자주 구멍에 빠지는구나.

그래서 널, 정신빠진이라 하는 것이다.

게다가 지금보다 더 좋아보여 바라면서도 막상 그것이 손에 닿으면 또 다른 걸 바라는,

육체에도, 세상에도, 사물에도 고마운 줄 모르는 녀석이다.

그래도 가끔 혼줄나면 모양새를 차리기도 하니, 정신차리는거지.

정신빠진 놈 소리 듣지 말고 정신차리라는 소리도 듣지 않도록

혼줄나기 전에 알아서 갖춰주면 좋으련만.


자기 위치를 망각할 때가 많다.

서야 할 자리 제대로 서 있어줘야

바삐 놀리는 혀도, 바삐 달리던 다리도 제 보폭을 조율할텐데

제대로 명령해줘야

놀던 혀도, 멈췄던 다리도 움직일텐데

제대로 지휘해줘야

잔잔하다 출렁이다 격하게 뛰는 가슴이 엉뚱한 데서 엉뚱한 박자로 뛰지 않을텐데

스스로 알아서 청소해줘야

세상이 주는 메세지에, 세상으로 내보내야 할 에너지에 맑은 길을 내줄텐데

조금만 타격이 와도 이리 휘청 저리 휘청 

제발 네 위치에 딱 서서 자주 세정(洗淨)하여 제대로 지휘하려므나.


삐딱하다.

분명히 영혼의 자극을 제대로 받았는데

분명히 육체도 준비가 끝났는데 

도대체 왜 삐딱한 것이냐?

무엇을 의심하고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걱정하느냐?

무엇을 원망하고 무엇을 재단하고 무엇을 재고하느냐?

왜 가끔 아니, 자주 삐딱선을 타는지, 

도대체 공기가 너에게 무엇을 실어나르더냐?


신뢰에 인색하다.

분명 

귀가 그간 듣지 못한 것을 가져가고

가슴이 그간 느끼지 못한 것에 출렁이고

눈이 그간 보지 못한 것을 담아냈고

손이 그간 외면하던 것을 부여잡았음에도

너는 어찌 그것을 신뢰하지 못하고 지속적으로 의심하는지

물론, 너의 그 병이 위험으로부터 너의 주인을 보호해주기도 하지마는

네가 수족으로 데리고 있는 오감들이 이리 네게 증명해낸 것이라면 그것들에 신뢰를 부여해도 좋으련만.

어찌할까?

굳이 너는 현상이라는 사태에 부딪혀 봐야만 너를 파괴할 수 있다는 말이냐?

내 분명 말하자면, 현상은 너의 이성을 파열시켜야만 네가 설득됨을 알기에

내 경고하건데, 네가 신뢰하지 못하는 모든 것은 사태로서 신뢰에 이르리라.


과하다.

너무 많은 것을 원한다.

인간 외의 모든 것들을 살펴보자. 

발가벗고 태어나 누구의, 무엇의 도움없이는 결코 생존할 수 없어 울어제치는 인간과는 달리 모든 생명있는 것들은 인간처럼 단절된 채 그 때만 유용한 유아어로 말을 배울 필요도, 먹을 것을 기다릴 필요도, 때에 따라 걸친 의복을 변화시킬 필요도, 재산을 축적하며 잃을까 노여워할 필요도, 그 어떤 필요도 없이 그저 자연에게서 모든 것을 충당한다. 

그런데 이만큼 스스로 필요한 것들을 갖춰 충분한데도

더 많은 것들을 원하니 이를 무엇으로 설명해야 할 것인가.

욕구? 그리 말한다면, 그것은 자연에게로 돌아가고자 하는 본능 외엔 모든 것이 탐욕이라는 사실을 

네가 스스로 깨우치지 못한 활동의 부진탓일테다. 

제 몫에 맞게끔 자기 자리를 지켜내지 못한 채 네가 과하게 앞서 나가는 것으로 인해

가슴은 불안에 떨고 

손은 잡지 말아야 할 것들을 잡고

다리는 가지 않아야 할 곳으로 주인을 데려가

서서히 너를 파괴시켜갈 것이다.

정해진 궤도가 쳐놓은 울타리를 벗어나지 않아야겠다.


가끔 사기도 친다.

너의 주인이 '이성적 사고'라는 명목으로 너를 과하게 과신하는 것을 안다.

하지만 이 때 네 역할만 제대로 한다면 너의 주인이 삶의 구렁텅이에 빠지는 것으로 인해 되갚아지는 너의 고생도 피할 수 있을텐데 너는 왜 네가 잡고 있는 '줄'을 제 때 놓지 않았느냐?

'정신줄'. 놔야 할 곳에서는 놔라.

그래야 네가, 그리고 지식, 이성이라 불리는 네 동료들이 범하는 오류에서 네 주인이 헤매지 않을 것이니.

이는 네가 켜켜히 저장해두었던 과거경험에만 또는 누구누구 학자들의 이론에만 근거해 너의 주인을 상대로 사기를 치는 것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지나간 기억의 투자가 미래의 이윤으로 환원될거라는 과도한 사기행각은 이제 그만. 직접이든 간접이든 너에게 쌓인 이론이 네 주인의 현실을 나아지게 할 것이라는 사기는 이제 금지. 너는 앞으로 이러한 순간에는 부여잡은 줄을 놔야 할 것이다. 세상은 결코 지나간 과거로, 남의 것으로 인간에게 지혜를 주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길이 있으니 너는 자주 너의 줄대신 영혼의 줄로 옮겨타는 시도를 해야겠다.


당부하건데

가끔, 때에 따라서는 자주 의심하고 결코 놀라지 마라.

눈과 귀는 너를 이길 때가 종종 있단다.

보이는 것만을 믿으려 할 것이고

들리는 것을 가려내지 못한 채 있는 그대로의 실체만을 쫒을 것이다.

이 때가 네가 그들에게 져서는 안될 때다.

육체가 멀쩡한데 네가 항복해서도 안되지만

네가 멀쩡하면 육체가 네게 백기를 들 터이니

너의 의심이 감사로 돌아오도록 항상 '똑바로 차리고' 서 있거라.

또한, 세상이 가끔 너를 놀라게 할 것이지만 결코 그런 일에 흔들려서는 안된다.

육체가 받아오는 수많은 위협적인 사태들로 가끔은 너를 혼미하게 하겠지만

이는 결코 너를 경멸하려거나 저 아래에 두기 위함이 아니라 너로 하여금 채워야 할 부분들에 대한

경고정도로 여겨야 한다. 뭘 그리 놀라서 움찔한단 말인가?

놀라지 않고 제 자리를 지킨다면, 너는 충분히 그 위협적인 사태를 육체보다 먼저 감지하여

오히려 육체를 보호해줄 것이다.


그래도 고맙다.

휘청대는 것이야 바람이 강하니 어쩔 수 없다치고

삐딱하게 구는 것이야 공기가 실수했다 치고

자리를 이탈하는 것이야 지체보다 더 큰 타격때문이라 치고

신뢰에 인색한 것도 사태를 겪기 전이라 치고

과한 것에도 보폭조절이 난감한 때가 있다 치자.

사기치는 것은 금지당했으니

휘청대다 삐딱하다 자리를 벗어나고 의심병과 욕망에 괴롭더라도

책임감있게 딱 서야 할 그 자리로 돌아와 육체와 영혼의 연합에 지장주지 않으니  

참 고맙다.


끝까지 버텨야 할 명확한 이유를 알려주마

영혼이 내 숨결을 모두 세상에 뿌리는 그 순간까지 끝까지 버텨야만 한다.

육체가 잠으로 쉴 때조차 수많은 상(像)들이 너를 쉬지 못하게 하더라도 버텨야만 한다.

네가 결코 망가지면 안되는 이유는 명확하지.

네가 쓰러지면 모든 육체가 자기 할 도리에서 어긋나게 되고

네가 차단되면 모든 영혼의 자극이 들어갈 틈 없으니. 

혀는 몹쓸 말들을 뱉어낼 것이고 

눈과 귀는 분별없는 흡입을 해댈 것이며

피와 살도 덩달아 자신들의 통로를 막아버리고

이로써 그 시간까지 애써 버텨온 모든 이력들을 한 순간에 바람에 실려보내야 할 터이니

육체가 쓰러져도 넌 살아있어야만 한다.

육체가 살아있는 내내 너를 키워준 그 몫까지 해낼 정도로 너는 강인해졌으니

끝까지 너의 주인의 인간다움을 흐트러뜨리지 않아야만 한다.


너는 네 주인의 허락이 떨어져야 주인에게서 해방되는, 그런 존재여야만 한다.


육체가 멀쩡한데 정신이 항복하는 - 마르쿠스아우렐리우스, 명상록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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