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매거진 [이분화된 사고의 탈피]는 삶의 원리인 양극, 중용을 이해함으로써 이분화된 사고의 탈피를 돕고 이를 위해 대립점의 상반된 극이 어떤 식으로 동시에, 연속적으로 이치에 따라 흐르는지를 하나씩 개념을 통해 설명하고자 합니다.
[이상 VS 현실]
꿈을 꾸는 자는 꿈을 이룰 것이다!
꿈을 꾸는 자가 꿈을 이룬다? 글쎄..
현실을 직시하는 자가 꿈을 이룬다!
그렇다!
현실(실재, 實在)을 모르는 이상(理想)은 허상(虛想)이다.
사전적 의미로 이상은 현실의 반대개념으로 정의된다.
꿈은 꾸.는. 것이고
현실은 이.루.는. 것이라는 단어 속에서도 이는 선명하게 드러난다.
현실없는 이상은 말 그대로 꿈에 불과하며 이상이 없는 현실은 방향없는 실천이다. 멋진 스포츠카를 타는 꿈으로 차를 구입했지만 막상 면허증도, 가야할 곳도 없는 격이다.
하지만, 꿈(이상)과 현실은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며 순차적으로, 하지만 동시에 실행되는 것이다. 이상과 현실은 대립점에 위치하는 반대개념의 사전적 정의를 뛰어넘어 이상은 현실없이는 이룰 수 없고 현실 역시 이상없이는 그저 길잃은, 갈 곳없는 현실만 존재함을 의미한다.
이상을 이루기 위한다면 일단 현실에서 움직여야 한다. 움직이지도 않으면서 가고 싶은 길은 꿈속의, 가상의 길이다. 어찌어찌하다 보니 꿈을 이룬 사람도 있을 것이고 아무리 노력하지만 꿈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 때 사람들은 '운'을 이야기하고 '재수'를 거론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좋은 운'을 만나 '재수좋게' 꿈을 이룬 사람의 경우, 정말 아무 것도 안했는데 그저 운이 좋아서, 재수가 좋아서 마법이 이뤄진 것일까? 아니면, 어떤 연결에 의해 이 노력이 저기 현실로 이뤄진 것일까? 결코 지성에 입력되어 있지 않았다 하더라도 운과 재수 역시 꿈꾸던 것의 어떤 연결이 현실에서 실천되었기에 현실화된 것이다. 꿈은 이상, 즉, 바라고자 하는 모든 것, 현실에서 이루고자 하는 목적을 의미한다. 그러하기에 '운좋게', '재수좋게'는 자신이 못 느꼈을 뿐 자신의 가치를 쫓는 삶을 살고 있었음을 의미하는 겸손의 표현일 수 있다.
꿈을 꾸는 것, 자신의 자아실현을 이루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아니, 삶의 궁극의 목적이다.
이러한 큰 그림을 위해 현실에서 움직이지 않는다면 꿈은 꿈으로만 존재하며 현실은 과거로 남게 된다.
이상과 현실
함께 공존해야 가치가 있다.
아니, 둘 중 하나만 존재할 수도 없으며 하나만 존재하는 듯 살다가는 둘 다 이도저도 아닌 것이 된다.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고 꿈은 꾸지만 허공에 뜬 상태로 연명하게 되는 것이다. 이상, 꿈은 현실을 움직일 동력이며 현실에서 움직여야 이상을 실현할 수 있기에 이상과 현실은 동시에 실천되고 순차적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자, 그렇다면 이상과 현실. 이 두 단어는 같은 의미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하지만, 우선순위가 있다. 현실을 살다보니 꿈이 이뤄진 경우도 물론 있겠지만 이는 자신이 인지하지 못했을 뿐 이미 가고자 하는 꿈의 방향이 몸 곳곳에 스며들어 있었을 것이다. 굳이 우선순위를 따지자면 꿈을 꾸는 것이 먼저다. 꿈을 꿔야 꿈을 이룰 것이 아닌가. 꿈을 이루기 위한 첫번째는 꿈을 꾸는 것이다.
질문을 하면 된다.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어떤 모습으로 죽고 싶은가?'
'나는 무엇을 남기고 갈 것인가?'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 것인가?'
이런 질문이 고리타분하고 진부하고 혹 어렵다면
질문의 방향을 바꿔보면 된다.
'신은 왜 오늘 이 시간까지 날 살려뒀을까?' 그 많은 사건사고, 우연이 많은 세상에서 말이다.
'신은 날 왜 태어나게 했을까?' 그렇게 아이를 못낳거나 유산, 사산도 많은데 말이다.
'신은 나를 통해 세상에 무슨 일을 하려는 것일까?'
'신은 나에게 왜 고통을 주는 것일까? 무엇을 하지 않았기에 이리 심한 회초리를 휘두르는 것이지?'
답을 당장 내리기 어렵다. 당연하다. 신이 내준 숙제이기에 답은 내가 잘 모른다. 모르지만 없는 게 아니다. 있는 것이니 찾으면 된다. 이런 저런 생각들이 나를 강타하면 그저 느끼면 된다. 그 느낌이 숙제의 답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 하지만 그 놈의 이성이, 관성이 순간 가로막는다. '내가 뭘~'. '말도 안돼. 나같은 사람이' 라고. 이성에 관성으로 들어앉은 놈은 과거에서 기억에 남은 것들의 덩어리인데 오늘 처음 느낀 이 가슴떨림을 그 기억이 막아선 것이다. 말도 안되지 않는가? 신이 내게 '드디에 네가 내게 물었느냐?'하며 느낌으로 알려준 것을 과거의 내가 가로막은 것이다. 싸움 상대가 안되는 싸움을 하려니 영원히 답을 모르고 숙제만 푸는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닐까? 막지 말아야 한다. 그 느낌. 그 느낌에 되니 안되니 따지지 말고 그저 그것에 순응해보는 것이다.
받아들였다면 이제 현실적인 목표를 세우면 된다. 장중단기 목표로 말이다. 3년, 2년. 1년정도로 나눠서 무엇을 해야 할지를 구체적으로, 정량적으로, 되도록 숫자화하여 기록해보는 것이다. 나의 인생의 다양한 범주를 나눠서, 가령, 가족, 건강, 일, 관계, 정서, 자산, 사회적역할 등과 같이. 이렇게 나눈 각 범주마다의 장기목표를 먼저 세우고 여기서부터 중기, 단기를 계획해보는 것이다.
자, 아주 신나게 여기까지 그저 느낌으로 좍좍 써내려가면 된다. 그리고, 이제 집중해서 몇가지를 추출, 그렇다. 추출해내면 된다. 매일 해야 하는 행동의 우선순위인 루틴을 추출해야 한다. 가령, 건강에 대한 장기중기단기목표를 만들고 이에 대한 행동으로 1일 만보를 추출하는 것이다. 명심해야 한다. 루틴은 해야한다고 여.겨.지.는.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즉,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추출하는 것이다. 아무리 열심히 운전해서 달린 들 부산이라는 목표가 없다면 다른 지방에 도착해 있게 되니
깔대기처럼
커다란 형이상학적이고 추상적인 꿈으로부터
장중단기 목표를 만들고
거기서 쫙~~~~ 즙을 짜내듯 하루에 해야 할 루틴을 추출.
자, 따라서. 매일매일의 루틴이 꿈으로 날 데려가는 행동이 된다.
다 추출했으면 이제 꿈과 목표는 잊어버리고 루틴만 반복하면 된다. 꿈이라는 창조의 씨를 세상에 뿌렸으니 이제 나는 물만 주면 된다. 나머지는 바람과 태양, 자연이 알아서 싹을 틔울 것이니 나는 물만 주면 된다. 루틴만 하면 된다. 이렇게 꿈(이상)과 현실은 결국 현실을 통해 꿈이 이뤄지는 순차적인 행로가 있지만 현실의 루틴을 하는 것이 꿈으로 가는 과정이니 연속적으로 동시에 이뤄지는 것이다.
양극은 맞닿아 있다.
양쪽 대립극을 모두 포함한 전체적인 시각으로 지금을 사는 것이 중용의 실천이며 꿈이냐 현실이냐의 이분법을 탈피하여 모두를 취하여 더 선하고 옳고 제대로인 삶을 살아가는 길인 것이다.
꿈(이상) vs 현실
둘 중 하나가 없다면(없지 않다. 찾지 않는다면) 다른 한쪽도 힘을 잃는다.
이것이 삶의 원리다.
꿈없이 현실을 사니 공허하고
꿈에 젖어 현실을 외면하니 늘 고통인 것이다.
둘 중 하나가 아니라 전체를 포용한 사고.
이러한 사고의 실천이 꿈을 찾고 목표를 세우고 루틴을 매일 반복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