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는 말 없이 사랑한다고
*이 글은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탕웨이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무언가가 있다고 느껴지는 배우였다. 유명한 영화들을 찾아보며 탕웨이가 나온 영화들을 찾아보았다. 탕웨이는 한국인 김태용감독을 '만추_리마스터링'에서 만나 결혼했던 배우이기도 하기에 더 관심이 갔다. 탕웨이는 '색계'로 유명해지지만 영화가 친일파를 미화했다는 내용에서의 정치적인 문제, 그리고 영화에서의 노출문제로 중국에서 활동에 제한당한다. 이후 홍콩영주권을 얻고 한국인 감독의 영화에 등장하며 다시금 연기활동을 이어간다.
그가 나온 영화 '색계', '만추', '헤어질 결심'을 보았다. 한 배우의 작품을 모아보니 배우에 대해, 영화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으며 세 작품 모두에서 탕웨이가 맡고 있는 역할에서의 공통점이 보였다. 바로 남자주인공에게 "사랑한다"라는 말을 거의 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상대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상대를 좋아하고, 손익을 따지지 않고 자신이 가진 것을 잃어가면서 심지어는 목숨까지 내어놓고 상대를 지키기도 한다는 점이 보였다. 마지막으로 세 영화에서 모두 주인공들이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는 공통점을 발견했다.
왜 이 세 영화에서는 탕웨이의 '직접적인' 애정표현이 나타나지 않을까? 일단 이 세 영화에서 이들의 관계가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어렵거나, 사적인 감정을 느끼면 안 되는 사이이기 때문으로 느껴진다.
먼저, '색, 계'에서는 탕웨이가 맡은 왕자즈가 이모청(양조위 배우)을 유혹하여 암살하라는 작전으로 처음 만난다. 극 중 이모청은 왕자즈와 나이차가 있으며 양조위는 결혼을 한 상태인 데다 애정해야 할 대상이 아닌, 제거해야 할 대상이다. 그럼에도 왕자즈는 이모청에게 사랑을 느낀다.
두 번째, '만추'에서는 탕웨이가 맡은 에나는 살인자로 수감되어 있는 상태이며 바깥에서의 휴가는 3일의 시간밖에 안 된다. 그래서 자신에게 다가오는 훈(현빈)을 받아들일 수 없는 상태이다.
마지막으로 '헤어질 결심'에서 탕웨이는 피의자 서래 역을 맡으며 가정이 있는 경찰관 장해준(박해일 분)을 사랑하게 된다.
더욱이 '만추'와 '헤어질 결심'에서는 언어의 장벽도 존재한다. '만추'에서 에나(탕웨이)는 홍콩 출신으로 영어를 잘하지만, 훈(현빈)은 미국 시애틀에 이제 2년 온 상태로 에나에 비해 영어가 유창하지 않고, 모국어도 아니다. '헤어질 결심'에서 서래(탕웨이)는 한국에 귀화한 중국인으로, 일상대화는 가능하지만 '붕괴' 등과 같은 어려운 단어는 해석하지 못한다. 이러한 점들이 이 영화를 돋보이게 한다.
'만추'에서는 에나(탕웨이)가 자신의 속이야기를 중국어로 털어놓을 때 훈은 중국어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하오(좋아)", 와 "화이(나쁘군)"을 반복하며 에나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준다. 오랜 수감기간, 그리고 잠깐 나온 휴가에서 가족에게 큰 관심을 받지 못했던 에나는 훈의 이런 모습에 위로를 받는다. 이는 말이 통하지 않아도 표정이나 경청하려는 태도만으로도 충분히 소통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헤어질 결심'에서 서래(탕웨이)는 한국어를 사극으로 배워 고풍스러운 단어를 사용하고 해준이 이에 매력이과 호기심을 느낀다. 서래를 조사할 때 녹음된 중국어를 번역기로 돌려 들으며 해석이 늦어지지만 그만큼 새롭게 관객에게 전달된다. 두 번째 사건 때 서래는 해준이 자신의 중국어를 수사하며 들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말하고 싶은 내용을 녹음해 놓아 편지처럼 전달한다.
언아라는 장벽은 서로의 의사소통을 답답하게 하는 장애물이 아닌, 호기심 그리고 기다림으로 이끌어주는 매개물이 된다. 그/그녀의 말의 의미, 그 의도가 궁금하기 때문에 더 신경쓰이고, 해석했을 땐 설렘이 증폭된다. 그리고 상대가 이해를 못할까봐 쉬운 단어를 사용한다던지, 풀어 설명하며 배려하며 서로의 속도를 맞춰가는만큼 그들의 마음의 속도도 맞춰간다. 풋내기들의 연애처럼, 그들의 관계는 자칫 지저분하게 느껴질 수 있는 상황임에도 풋풋하게 느껴진다. 단일한'이란 맥락에서 안쓰이는 단어를 쓴다든지 그들만의 언어를 만들어 가며 신중해지고 표현은 섬세해지고 단어 하나하나의 의미를 곱씹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설렘만큼 상처도 큰 법. 해준이 "난 완전히 붕괴되었어요"의 '붕괴'라는 단어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사전에서 검색하고 뒤늦게 뜻을 알게 된 이후 흐느낀다.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탕웨이는 처음엔 천천히 다가가고 표현도 직접적으로 하지 않는다. 대신 애정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색계'에서 왕자즈(탕웨이)와 이모청이 우산 아래에서 만났을 때의 기류, 식사를 하면서의 눈빛으로 연출한다. '만추'에서는 에나(탕웨이)가 처음에는 곧 감옥으로 들어갈 것이라 훈을 밀어내지만 이후 훈에게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는 모습, 장례식 포크 사건 때 훈의 편을 들어주는 모습에서 확실히 거리가 가까워졌음을 볼 수 있다. '헤어질 결심'에서는 잠 못 드는 해준을 자신의 방법으로 재워준다.
"사랑"이란 단어를 아예 사용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끌림을 느꼈던 시간에 오래 지난 훨씬 이후 겨우 '사랑' 혹은 '그리움'과 같은 단어를 사용한다. '색 계"에서 왕자즈(탕웨이)는 이모청을 상하이에서 재회하고 그동안 그리웠다며 감정을 쏟아내고, '헤어질 결심'에서 해준이 서래(탕웨이)에게 "우리"라는 표현을 사용하자 서래는 이 단어를 되뇌며 좋아하고 해준이 '사랑한다'는 말을 했을 때 녹음파일을 반복해 듣는다. 그리고 해준이 이를 기억하지 못하자 무너져 내린다.
하지만 보통의 연인들보다는 표현을 절제하는 모습이 보인다. 사실 '헤어질 결심'을 보며 이들의 관계를 불륜으로 봐야 하는지도 애매했다. 둘이 포옹 이상의 육체적 관계는 영화에서 표현되지 않았으며 비즈니스 이상의 관심은 보였지만 표현이 모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극 중 해준은 "나 없을 때 내 생각했죠?"라는 서래(탕웨이)의 말처럼 아내가 있는 이포에 주말에 갔을 때에도 노래 '안개'를 들으며 서래(탕웨이) 생각을 하고 있었고, 서래(탕웨이) 역시 마음에 없는 두 번째 남편과 결혼했을 때에도 해준의 녹음파일을 들으며 해준을 생각했다.
보통의 연인들,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개인차가 있긴 하지만 사랑한다, 보고 싶다는 말을 하고 산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하면서도 오히려 애정이 느껴지지 않을 때가 있다. 하지만 극 중 탕웨이의 사랑은, 말로는 표현하지 않았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 감정이 상대에게 전달된다. 오히려 정해진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단어에 얽매이지 않은 채로 좀 더 입체적으로 느껴진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이래도 되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정을 떨쳐내지 못하는 탕웨이의 사랑이 여운이 남는다.
극 중 탕웨이는 자기 자신을 상대에게 내어준다. '색계'에서는 작전이 실패하면 모두 죽게 될 것을 알면서도 이모청을 도망가게 하고, '헤어질 결심'에서는 해준의 '품위'를 높여주기 위해 두 번째 남편을 간접 살해하며 첫 번째 남편 살인사건의 증거였던 자기 자신을 없앤다. '만추'에서는 에나(탕웨이)의 희생이 드러나진 않는다. 훈이 자신이 쫓기는 상황임에도 에나에게 집중하는 훈의 희생이 드러나기는 한다.
탕웨이는 여기서 손익을 따지지 않는 상황을 보인다. '색계'에서는 순전히 연기를 하며 목적을 위해 계획적으로 접근했지만 아이러니하게 계획은 완전히 이지러뜨린다. '헤어질 결심'에서 서래는 범행 후 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들지만 해준과 가까워지며 범행을 들키고, 해준을 잊기 위해 폭력적인 두 번째 남편과 결혼하며 자기 삶을 스스로 파괴시키며 해준을 지키기 위해 자기 자신을 포기하는 모습에서 자신의 전부를 완전히 내어주는 모습을 보인다.
극 중 탕웨이의 이런 모습을 보며 이런 행보는 탕웨이의 캐릭터는 잃을 게 없는 사람이기도 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색계'에서 탕웨이는 목숨을 걸지만 그는 아직 어렸다. 아직 대학생이었고, 가정이 있고 장관직이라는 높은 자리에 있는 이모청보다는 확실히 잃을 것이 없다. '만추'에서의 에나는 사실상 잃은 것도 없지만 주인공은 살인자로 수감되어 잃을 것이 없다. '헤어질 결심'에서 서래는 타국에 와 연고도 없으며 남편도 잃었으며 자식도 없다. 가족도 있고, 직업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해준은 잃을 게 많다. 잃을 게 없었고, 젊었던 그였기에 조금 더 패기 있게 자신의 마음을 따랐던 것이 아닐까 싶다.
사실 이 세 영화를 봤을 때 처음에는 께름칙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색계'는 적나라한 베드신이 나오며 왕즈즈와 이모청의 관계는 결국 확실한 불륜인 것이고, '만추'에서는 에나가 비록 살인자로 누명을 썼다는 암시가 나오긴 하지만 살인자와 남자 에스코트라는, 떳떳하지 못한 직업과 이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헤어질 결심'에서 서래와 해준 역시 정신적 불륜관계이고 서래가 가정폭력과 추방 협박을 당해 살인을 저질렀다 해도 이는 살인이라는 중범죄가 정당화되지 않으며, 이를 덮어준 해준 역시 직업인으로서 바람직하지 못한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죽어 미결사건이 되어 해준의 기억에 영원히 남고 싶다는 서래의 말은 소름 끼치며 집착에 가까운 모습을 보인다.
발견한 또 다른 공통점은 주인공들이 비참한 최후를 맞고 그들의 사랑은 미완으로 결말을 내린다는 점이다. '색계'에서 암살작전이 실패하고 연극부원들은 체포된다. 왕자즈(탕웨이)가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는 건 누구나.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남겨진 이모청은, 살았다고 행복했을까? 그는 경호원도 의심하는 남자였다. 그런 그가 유일하게 경계를 풀고 마음을 연 사람이 왕자즈였는데 왕자즈 역시 자신을 암살할. 계획을 세웠단 걸 알게 되면 배신감이 느껴질 것이다. 혹은 그런 왕자즈가 자신을 살려 줬기 때문에 배신감보다는 자신을 포기한. 왕자즈에 대한 연민이 커진다고 하더라도, 이제는 볼 수 없는 왕자즈에 대한 그리움과 증오가 섞인 양가적 감정을 평생 안고 살 것이다. 또한 앞으로 다른 사람을 더 경계하고 살게 될 것이다. 게다가 이모청은 잃을 게 많은 사람이다. 왕자즈와의 관계가 드러난다면 고위직이었던 그가 사회에서 얼굴 들고 살지 못하게 된다.
'만추'에서. 에나(탕웨이)는 예견대로 다시 수감된다. 더 큰 비극은 훈에게 일어난다. 훈은 에나를 만나기 전부터 에스코트 손님인 옥자의 남편에게 살해의 협박까지 받으며 쫓기고 있는 상황이었다. 더 멀리 도망가거나 숨어야 했음에도 훈은 에나에게 시간을 쓰느라 도망갈 시간을 놓친다. 물론 도망치거나 숨더라도 옥자의 남편을 마주치는 건 시간문제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훈은 같이 도망쳐 살자는 옥자의 제안을 거절하고, 삶을 구하기 위한 시도도 하지 않은 채 에나에게 마음을 쓰고 끝내 옥자를 살해했다는 누명까지 쓰게 된다. 이 때문에 에나가 출소하면, 기다리겠다는 훈의 약속도 어그러질 가능성이 커진다. 자신에게도 비참하고, 사랑도 못 지킨다. 낭만적인 3일이라는 시간 뒤엔 너무나 가혹한 결과가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헤어질 결심'에서 서래(탕웨이)는 삶을 끝낸다. 남들이 보기엔 비극이라도 본인에겐 해준에게 영원히 기억되는 일이었다고 치자. 그래도 그건 해준에게 너무 가혹한 일이다. 해준은 서래를 영화가 끝날 때까지 찾아 헤맸으며 이것은 그가 말로는 서래와의 관계를 끝냈지만 사실은. 서래를 향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미 서래를 잊지 못하고 있는 그가, 서래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만큼 가혹한 형벌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미, 해준은 서래와의 관계 속 많은 것을 잃었다. 자신의 품위이자 자존심이었던 경찰로서의 자부심, 애정은 없었지만 그래도 가족이었던 아내, 그리고 마지막엔 사랑했던 사람을 잃으며 처참한 결말을 맞는다.
현실에서는 일어나면 안 되는 일들이 표현되기도 했고 이들의 행보를 옹호하고 싶지는 않다. '그들의 과오가 있었기에 처참한 결말로 벌을 받지 않았나'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영화라는 예술이라는 면에서 봤을 때 이 내용은, 그리고 표현법은 오랜 기간 여운이 깊게 남았다. 영화를 보고 탕웨이의 외모뿐 아니라 그의 연기력, 영화감독의 표현법에 감탄하며 그의 작품을 감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