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있어 커피에 대한 역사는 매우 유구하다.
고등학생 시절, 우리 학교는 '사교육 없이 공교육으로만 대학을 잘 보낼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야간 자율학습을 강제하던 학교였다.
아침 7시부터 밤 10시까지 학교에 있는데 졸지 않을 청소년이 있겠는가. 그때부터 정해놓은 시간표가 있는 것 처럼 선생님은 옆구리에 커피 한 박스와 커피포트를 들고 나타나 커피를 타주기 시작했고, 나는 커피의 각성효과에 대해 일찌감치 눈을 떴다. 그중 한 선생님의 커피사랑은 대단했는데 집에서 직접 한 로스팅 원두를 갈아 학교에서 커피를 내려마셨다.
그 이후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이 방영되고 학교 근처에 커피프린스 2호점이 생기면서 나는 그 카페 바리스타 오빠들과 친해질 정도로 문턱을 넘어 다녔다. 맛있는 와플과 커피, 소소한 대화의 즐거움이 자리잡게 된 것도 이 시절의 기억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졸음을 깨기 위한 수단으로 마셨던 커피가 분위기와 사람들과 어우러지면서 하나의 취향으로 남게 되었다.
여행을 다니면서도 주로 근처의 카페를 찾는 과정을 중요하게 여긴다. 사실 모든 여행의 일부분에 카페 방문은 필수 코스가 되었기 때문에 내 여행의 테마를 찾아보자면 커피 투어일 것 같다.
시간이 흐르면서 커핑 클래스나 원두별 차이점을 찾아보기도 하고 커피를 탐닉하는 과정 자체의 즐거움을 발견할수록 타협점을 찾기가 어려워졌다. 맛과 비용, 간편성, 접근성 등 고려할 것이 많았다. 결국 지금은 모든 맛(평균적인)과 향의 커피를 사랑하게 되었지만, 선호도는 분명한 편이다.
병원을 방문할 때마다 커피도 줄여보라는 말이 그렇게 서글플 수가 없다. 술도 안 마시는 내가 이 정도의 취향은 괜찮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