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디지털 노트필기를 많이 하지만 아이패드가 생기기 전, 나의 학창 시절은 필기에 미쳐있던 시기였다고 말할 수 있다.
영혼을 담은 노트필기. 그것이 학생 때, 나의 낙이었다. 고등학생 때는 생물학에 완전히 꽂혔기 때문에 세포와 인체 그림, 설명을 예쁘게 써야만 했다. 한 장에 잘 못쓴 단어가 있다면 미련 없이 찢어내고 새로 쓸 정도로 필기에 강박적이었다.
그렇다고 공부를 잘했는가? 그럴 리가. 안타깝게도 필기에 시간을 많이 투자해서 다른 과목들을 공부할 시간은 없었다. 여러 색으로 그어진 노트를 보고 친구들이 빌려달라고 할 때, 흔쾌히 빌려주는 쾌감. 공부했다고 느껴지는 뿌듯함. 그것으로 살았던 것 같다. 20대가 되어 방을 정리할 때도 그때의 노트를 버릴까 말까 한참 고민할 정도니 어린아이들에게 애착인형이란 이런 게 아닐까 싶다.
이렇게 열정적인 노트 정리에 중요한 것은 바로 필기구다. 장인은 도구를 따지지 않는다 했던가. 나는 장인이 아니기 때문에 도구를 따졌다. 그것도 아주 매우. 굵기, 끊김, 번짐, 각 브랜드 펜에 따른 색 조합 등 다양하고 신기한 펜의 세계에서 공부보다 더 시간을 투자했다.
아이패드가 생기면서 다양한 색의 펜을 사는 것은 훨씬 줄었다. 또 석사과정에서도 종이에 무언가를 작성하는 Hand Writing보다 페이퍼나 논문을 써내는 것이 많았기에 펜이 많이 사용되지 않았던 탓도 있다.
하지만 상담사로 일을 시작하면서 여전히 필기구는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내담자의 이야기를 놓치지 않기 위해 갈겨쓰더라도 번지지 않고, 끊김 없이 매끄럽게 써지는 필기감을 갖춘 펜이 필요하다. 예전에는 얇고 잘 그어지는 잉크펜을 선호했다면 지금은 0.7 이상의 볼펜을 사용한다. 작은 칸 안에 글씨를 채워 넣어야 할 필요도 없으니 정말 필기감만 좋으면 그만이다.
현재 사용하는 펜은 Uni의 JETSTREAM 3색 507 펜이다. 부드럽게 작성되고 투박하지 않아서 손이 자주 간다. 특히 내 것이라고 소유주장을 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내 이름이 각인된 펜을 좋아하는데, 최근 교보문고에서 무료 각인서비스를 제공하여 가지고 있던 펜과 같은 것을 하나 더 구매했다.
좋은 펜들의 데이터베이스를 가지면 선물할 때 유용하다. 펜을 사용하는 순간을 생각해 보면, 좋은 일이 있을 때가 많다. 집 계약서나 새로운 일에 대한 계약 등에서 내가 선물한 펜을 사용하길. 그래서 의미 있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는 의미를 담아 선물을 하게 된다. 좋은 일에 내가 기뻐하는 것처럼 내 주변 사람들도 펜을 통해 행복을 기억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