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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빈아 Dec 13. 2022

혹시 내가 온실 속의 화초일까?

중고 막내의 혼란

혹시 내가 온실 속의 화초일까?


중고 막내의 혼란 2

일을 시작한 지 딱 1년이 되었을 때, 스스로 많은 기대를 품었다.   


  ‘일 년이 넘었으니 더 프로페셔널하고 깔끔한 일 처리를 할 수 있겠지.’
  ‘처음이야 엉성했지. 두 번째는 잘할 자신 있어.’     


호기로웠다.   


생각과 달리 1년이 지난 막내 생활도 쉽지 않았다.

두 번째 하는 일도 버겁게 느껴졌다. ‘이상하다. 그럴 리가 없는데?’ 해가 바뀌고 작년에 해봤던 업무가 돌아왔을 때, 나는 생각보다 곱절은 더 자연스럽지 못했다. 당황하기 시작했고 자신감도 확 떨어졌다. 결과물이 어떻게 보일지 걱정됐다. 훅 들어오는 리더의 날카로운 질문엔 알고 있는 것도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고, 뒤에서 씩씩댔다. 열심히 했는데 아는 것도 대답하지 못하는 꼴이라니. 질문에 날이 서 있다고 우물거릴 필요가 있었나? ‘일 년이 넘도록 왜 그렇게 눈치를 보는 거야.' 한심한 루저 같았다.


어느 주간업무 회의 날, 리더가 질문했다.


  “막내, 근무한 지 얼마나 됐지?”

  “일 년쯤 됐습니다.”

  “이제 한 번은 돌았네. 일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좀 보여야 하는데. 일할 때는 사람들이 궁금한 게 뭔지, 필요한 정보가 뭔지 먼저 생각하고 일해야 한다고.”     


내 회의 자료가 맘에 들지 않은 눈치였다. 날카로운 질문이 쏟아졌고 허둥지둥 대답하기 바빴다. 어떤 질문에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대답을 못 하기도 했다. 뇌가 정지되는 느낌이 드는 순간, 선배들이 대신 부연 설명을 덧붙였다. 분명 나도 대답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말이 나오지 않았다. 화가 끓었다. 생각해보면 회의 전에 사업별로 자료를 취합하고 나서, 팀장님이 검토한 후 최종 회의 자료를 만들었다. 그때마다 그는 내가 작성한 자료를 수정해주거나 질문이 나올 수 있는 부분을 먼저 잡아냈다. 그 덕분에 회의 자료를 더욱 빈틈없이 준비할 수 있었고 리더의 예리한 질문에도 잘 대응할 수 있었다. 팀장님은 다른 파트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마치고 회의에 들어갔다. 그런 사람과 함께 했으니 나도 모르게 안일했던 거다.


선배들 그늘 아래 편하게 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마땅히 마주해야 할 고난을 지나친 것은 아닌지. 깊은 좌절감이 들었다. '온실 속의 화초', 공주병(왕자병)에 걸렸거나 설거지 하나 제대로 못 해서 지켜보고만 있는 사람을 그렇게 말하곤 했는데, 혹시나 나와 닮아있을까 봐 두려웠다. 돌이켜보면 업무처리에만 급급했고, 리더가 알고 싶어 하는 부분을 놓칠 때도 많았다. 방패막이 안에서 마음을 편하게만 있었다는 생각에 스스로가 한심스러웠다.      


  ‘일 년 동안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겠다.’
  ‘선배들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하는 걸까?’
  ‘지금까지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선배들이 여린 막내 한 소리 듣기 전에 나서 줘서 순탄했나 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선배라는 온실 속에서 오냐오냐 자란 화초가 되어버렸다고 확신했다. 언제나 선배들의 일 처리는 빨랐고, 리더는 만족했다. ‘어떻게 저렇게까지?’ 감탄과 동시에 작아지길 반복했다. 그러다 풀이 죽은 나 때문에 오히려 눈치를 보고 있는 선배들이 눈에 들어왔다. 달달한 간식을 사주며 기회가 될 때마다 따뜻한 말을 해주려는 모습이 느껴졌다. 문득 내가 절면 절수록 그들은 나를 보호하려고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 큰 막내 눈치를 보는 선배들에게 미안했고, 내 모습은 참을 수 없을 만큼 짜증스러웠다. 의기소침한 채 사소한 실수와 눈치 보기를 계속하길 몇 주, 불현듯 내가 일한 지 일 년이 갓 지났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선배들은 나보다 몇 년은 먼저 와서 일하고 있잖아?’

  ‘1년 된 막내 눈에 안 보이는 게 선배 눈엔 보이면, 쉴드도 좀 쳐 줄 수도 있지. 나도 그럴 텐데?'


어떻게 보면 당연했다. 1년이 아니라 3년이 넘었어도 선배들은 언제나 나보다 경험치가 높았다. 내가 한 번 한 일을 선배들은 여러 차례 해 왔다. 겪어보지 못한 시행착오도 그들은 먼저 당해보았고, 그들이 알게 된 팁을 아직 미지한 막내한테 전수해줬을 뿐이다. 내 우선순위는 풀이 죽어 분위기를 흐리는 게 아니라, 같은 질문이 나오면 절지 않고 대답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었다. 연차가 다르듯 회사에서 할 수 있는 일도 선배들과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 점을 더 빨리 깨달았어야 했다. 절절맨다고 달라질 건 없고 오히려 상황만 나빠지기 때문이다.


잘할 수 있는 게 있고 없는 게 있었다.

아무리 잘 뛰어도 선배들은 이미 날고 있었다. 경험의 폭이 좁은 만큼 그들보다 더 능숙하게 일할 방법은 없었다. 그들은 각자 위치에서 할 일을 했던 거다. 나의 임무는 일에 집중하고, 동료들을 도울 수 있는 부분이 있는지 찾아 서포트하는 거였다. 편집 프로그램을 다루는 일처럼 선배들이 약한 부분을 연마해 전문성을 키우는 것도 좋은 방법이었다. 무엇보다 리더의 공격적인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여 신뢰를 주는 것, 생각하고 일했다는 것을 명확한 대답으로써 증명하는 것. 그를 통해 성장하는 것! 그게 우선이었다.


당시를 떠올려보면 ‘온실 속의 화초’는 아니라고 결론짓는다. 중고 막내는 절대 곱게 자라지만은 않았기 때문이다. 선배들도 온실이 되어줄 생각은 안 했을 거다. 혼자 걱정과 관심을 양분 삼아 자라나려 했을 뿐일지도. 아무튼 입사한 후부터 지금까지 내 모습을 떠올려보면 뭘 해야 할지 몰라서 일을 못 하고 있을 때도 눈치만큼은 보고 있었지, 절대 한량처럼 가만있지는 않았다. 내가 소속된 회원홍보팀의 경우, 때에 따라 수행해야 하는 업무 말고도 수시로 확인이 필요한 업무가 많다. 매일 걸려오는 전화들을 받아내는 것도 내 담당이었기 때문에 일을 안 할 때도 마음의 여유가 없던 적이 많았다. 우리 리더의 잦은 요청사항을 들어주는 일도 거의 막내의 몫이었다.(그의 요청은 우리가 초집중 상태일 때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아무리 생각해도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화초일지언정 온실 속 화초는 확실히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럴 수 있는 구조에서 일하고 있지도 않고. 베테랑 선배들과 비교되는 모습을 계속 봐온 중고 막내가 그들처럼 되고 싶다는 갈급함에, 걱정을 키운 건 아닌가 싶다.(그 갈급함은 지금도 조금 남아있는 것 같다.)

 

무엇보다 선배들은 모른다. 중고 막내는 그들이 지나가듯 하는 말을 지나치지 않고, 잊어버리는 법이 없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기도 하고. 무거운 짐이 오면 옮겨 나르는 일도, 회사에 부족한 물품을 채우는 일도 앞장서 해야 할 일이다. 중고 막내가 겪는 고충도 생각보다 많다. 그들은 아마 끝까지 알 길이 없을 거다. 내가 중고 막내를 대하는 선배들의 고충을 아직 알 수 없는 것처럼.


실은 지금도 난감한 일에 처하면 눈은 자연스레 팀장님을 향한다. 일이 틀어지면 여전히 선배에게 조언을 구한다. 그것은 리더 눈치를 보느라 일을 그릇 치는 것을 방지하며, 보다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도 모를 고충을 경험하는 막내는 온실 속 화초도, 들풀도 아니다. 조금 뜬금없다고 여길 수도 있겠지만 나와 같은 자를 이렇게 정의하고 싶다.

숲 속의 크지도 작지도 않은 여린 나무


작은 열매를 맺고, 여린 잎사귀로 작은 그늘을 만들어주는 나무 말이다. 그 나무는 큰 그늘이 되어줄 수 있고 큰 열매를 맺을 가능성이 있다. 아직은 열매도 얼마 없고 그늘도 작지만, 열심히 성장하는 대견한 나무. 그렇게 위안을 얻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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