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중고 막내입니다.
[선배님이라 쓰고 선배복(福)이라 읽는다(2)]
- 부제 : 조금 특별한 막내와 조금 특별한 선배들
3년 차 막내의 삶 3_ 두 번째 이야기
이 선배는 뭘까. 차가운데 따듯한, 이성적인데 공감을 잘해주는…. 선배 표정은 무표정으로 고정되어있다. 상황에 따라 더 무뚝뚝해 보이기도 하지만 온화하고, 심지어 애교도 있는 사람이다. 반전 매력이 있는 양파 같은 사람이라고나 할까. 많은 수식어가 있긴 하지만, 선배는 여태껏 내가 본 사람 중 ‘가장 이성적인 사람’이다. 우리는 그의 이성적인 판단으로 도움을 받기도 하고 마음을 다스리기도 한다. 가끔 정신을 차릴 수 있나 싶은 상황이 생겨도 좀처럼 표정에서 드러나지 않는다.
팀장님이 해결사 느낌이 강한 캐릭터라면, 선배는 갑자기 나타나 주인공을 위기에서 구해주는 마법사 같은 캐릭터다. 예를 들어 주인공이 무도회장에 가지 못해 허름한 꼴로 울고 있으면, 별안간 나타나 고민을 들어주는 인자한 요정의 모습이다. 고민을 들은 요정은 별것 아니라는 듯 시종일관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인다. 주인공 말이 끝나면 “저런~ 가엾어라. 자자, 아름답게 변신할 차례예요~”라고 상냥한 목소리로 말한다. 부드럽게 요술봉을 휘둘러 주인공이 화려하게 변신하도록 돕는 미스터리한 조력자의 모습!
선배는 결코 유치한 개그에 웃어주지 않지만, 우리 농담엔 어떻게든 반응하려 노력하는 자상한 면이 있다. 선배가 대학에 입학했을 때, 나는 아직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이었는데, 그렇게 나이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자신의 경력이나 나이를 내세운 적이 없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무기로 사용한 적이 없다.
“자기야. 여기선 걱정할 게 없어. 아직 안 해봐서 큰일처럼 보일 수 있는데 우린 다 해봤던 거야. 혹시라도 변수가 생겨도 다 우리가 커버할 수 있어.”
“…. (감동의 눈빛)”
“그러려고 나이 먹은 거지, 그냥 먹은 거 아니야. 우리가 다 도와줄게.”
내가 회원 행사를 준비하며 근심하고 있을 때 선배가 해준 말이다. 위 대화문은 선배가 어떤 사람인지 정확히 설명해주고 있다. 누구보다 이성적인 판단과 자기 경력을 막내 성장의 거름으로 쓰는 사람! 마치 자전거를 처음 배우는 아이에게 뒤에서 잡아줄 테니 걱정하지 말고 페달을 밟으라 말하는 아빠가 연상된다. 멋있었다. 그의 이성적 판단은 변수가 일어나는 경우에 빛을 발한다. 경력에서 느껴지는 차분함과 일목요연한 정리가 동반되어 동료들이 많은 도움을 받는다.
처음으로 한 해 사업을 마무리하는 ‘애뉴얼 리포트’ 제작 업무를 맡은 때였다. 소식지와는 차원이 다른 분량이라 원고를 쓰고 검토하는 작업이 오래 걸렸다. 내용이 부실하거나 오탈자가 있는지 확인하고 수정하는 과정에만 많은 시간을 들였다. 사실 글을 쓰는 건 워낙 좋아하던 업무라 힘들진 않았다. 되려 재미있었고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기대도 됐다. 어느 주말 오후, 리더에게 장문의 메시지를 받기 전까진.
우리의 리더는 5번의 수정 작업이 끝난 뒤 시안 컨펌을 마쳤는데, 애써 잡아둔 디자인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상심이 컸지만 일단 수정은 필요했고 무거운 마음으로 작업을 해나갔다. 마음과는 달리 일은 어렵게 진행되었다. 이미 마음이 많이 굳어져서일까. 리더는 우여곡절 끝에 바꾼 시안에도 만족하지 않았다. 사소한 부분조차 쉽게 넘어가는 법이 없었는데, 글 옆에 작게 삽입한 일러스트를 보고도 골난 소리를 했다. 1분 1초, 수없이 뒤바뀌는 복잡한 마음을 다잡고 수정을 거듭한 끝에 드디어 오케이 사인이 떨어졌다.
인쇄를 마치고 조금은 홀가분해진 것도 잠시, 생각지도 못한 오탈자가 리포트 후반부에서 발견됐다. 그것은 앞선 사업 보고에 소개된 지원내용을 간략히 정리한 리스트에서 찾아냈는데, 숫자 하나가 다르게 기입되어 있었다. 이렇게 사소한 걸 놓치다니! 억울했다. 여러 차례 눈 빠지게 확인도 했고, 앞에 나와 있는 내용이라 익숙한 숫자기도 했다. 딱 한 곳! 누가 보지도 않을 것 같은 작은 크기! 디자인에 신경을 몰두한 건지, 너무 많은 정보를 본 건지, 어디 홀리기라도 한 건지. 어이없는 실수에 속으로 험한 말이 터져 나오는데 옆에 있던 리더가 물었다.
“이거 어떻게 할 거예요?”
“…. (머리 굴리는 중)”
“뭐 작아서 제대로 안 볼 수 있다고 해도, 오탈자는 오탈자예요. 이대로 보낼 거예요?”
“아닙니다. 어떻게든 방법을 ㅁ…”
“(불쑥) 라벨 작업하면 될 것 같습니다.”
“…!?”
“크기도 너무 작고, 다른 방법보단 라벨로 수정해두는 게 가장 좋을 것 같은데요.”
당장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우물거리고 있는데, 옆에 있던 선배가 방법을 제시했다. 담담한 목소리에 우리의 리더는 수긍했고 말없이 떠났다. 별일 아니라는 듯 신속하게 대책을 말한 선배는 바로 본인 일을 마저 하러 갔다. 그 뒷모습을 보며 ‘선배는 내가 지금 겪는 것들을 먼저 다 겪어보았구나.’ 생각했다. 지금의 나처럼 당황도 해보고 시행착오도 겪으며 방법을 찾아나갔겠지. 속으로 중얼거리던 나는 선배가 제시한 방법에 따라 급하게 움직였다. 오자가 있는 부분에 맞춰 라벨 디자인을 잡고 인쇄해서 수정 작업을 마쳤다. 마침내 발송까지 무사히 끝내고 녹초가 되어 들어오는데, 자료집을 한 장씩 펼쳐보는 선배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들으라고 한 말은 아닌 듯 작게 속삭였다.
“예뻐라, 어쩜 이렇게 감쪽같이 잘했대~”
그 말에 짧은 숨을 탁하고 뱉어내며 웃었다. 드디어 끝냈다는 후련함 뒤엔 선배에 대한 고마움이 남았다. 변수가 발생해도 늘 해결책은 있다는 것도 그날 깨달았다. 앞으로 이런 일이 생기면 지금만큼 당황하지 않고 대안책을 생각해내겠지. 아직은 어려운 영역이라 선배만큼 빠릿빠릿 찾아내진 못하지만, 일은 어떻게든 흘러가게 되어있는 것 같다. 어쨌든 문제가 생기더라도 당황하지 않고 해결하기 위해 몰두하면 된다. 그게 일이 더 커지지 않는 최선의 방법이다. 언제나처럼 일은 해오던 대로만 흘러가지 않으니까.
“선배. 지금 저한테 부족한 게 뭔 것 같아요?”
“저 되게 쓸데없는 걸로 걱정하고 있죠?”
부끄러울 수 있겠으나, 선배한테는 정말 쉽게 나오는 말이다. 가끔 일하다 진전이 더딜 때, 혹은 결과물을 보고 뭔가 아쉽다는 생각이 들면 선배를 찾는다. 그와 대화하다 보면 해답을 찾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선배와 함께하면서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방법을 많이 배웠다. 그 역시 본인 힘으로만 안 되겠다 싶을 때는 누구보다 빠르게 인정하고 도움을 요청한다. 내가 갖고 싶은 능력을 갖춘 사람이라 곁에서 많은 영향을 받는다. 돈 주고도 못 사는 게 바로 이런 거지 싶다.
만화책 찢고 나온 팀장님과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선배, 중고 막내는 공생하고 있다.
여기에 개그 코드가 누구보다 잘 맞는 선배, 팀장님과 선배들을 반반 섞어 놓은 듯한 선배도 있다. 그들은 본인의 능력을 남을 위해 사용할 줄 알고 가르쳐줄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선배들에게 도움이 될 때 진심으로 보람차다. 더 쓸모 있는 후배가 되고 싶달까.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말은 진리다. 감사하게도 처음 몸담은 곳에서 동료관계가 참 좋다. 나중에 다른 곳에 가게 되면 적응을 못 하는 건 아닐까 모르겠다.
아, 마치 선배들을 찬양하듯 써놓은 글 같을까. 선배들을 사랑하긴 하지만 작은 곳에 오랜 시간 모여 지내다 보면 여느 회사와 같이 감정이 상하는 일이 발생한다. 본인 사정이 급할 땐 동료가 어려워 보여도 잠시 못 본 척해야 할 때도 있고. 당연히 서운한 것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많다. 그러나 함께 일하고 실수하고, 갈등을 겪고 어떻게든 사업을 끝내면서 우린 서로를 더 잘 알아가고 있다. 사람은 완벽하지 않고 언제든 무너질 수도 있다. 그런 사람들이 각기 다른 성향을 가지고 최고의 결과를 만들어내는 곳이 여기다. 그 사실을, 그러니까 우리는 다르고 완벽히 맞지 않는 존재인 걸 인정할 때, 갈등은 오히려 서로를 잘 알아가는 통로가 되어준다. 각자의 강점을 통해 시너지를 내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면서 팀은 더 단단해진다.
세상엔 다양한 사람이 참 많다. 하나의 주제에 대해 생각하는 것도 모두 다르다. 어찌 됐든 각자 매력과 고유한 능력으로 근로의 소명을 다한다. 그중 자기 세계가 너무 확고한 사람들도 있고. 그 세계가 동료를 지치게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무언가 같이 만들어 내는 게 어렵기도 하겠다. 그런 거 보면 내가 배운 ‘동료와 공생하는 방법’이 잘 안 먹히는 공간도 어딘가엔 있을 수도 있겠다. 일은 철저히 비즈니스 관계만 유지해야 한다거나, 일할 때는 재수 없는 성격이 차라리 편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몰린 공간처럼.
휘둘리지 않겠다. 동료를 사랑하고 선한 영향을 주고받는 법을,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엔 제대로 배웠다. 조금 특별한 선배들에게 배운 것을 잘 흘려보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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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ar 선배들 고마워요. 누군가에겐 좋은 선배가 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