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우고 채우는 여행

by 보나로사

나의 여행은 늘 가족 혹은 친구와 함께였다.

그런 내가 용기를 내서 혼자 떠나기로 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혼자 괜찮겠어?”, “무슨 재미로 혼자 여행을 가니?” 한 마디씩 한다. 대부분 걱정을 한다. 간혹 “대단하다.”, “부럽다, 잘 다녀와!” 응원을 해 주는 이도 있다.

나 역시 걱정 반 기대 반이다. 그리고 결심한다. ‘이번 여행은 짐을 늘리지 않는 여행을 하겠다고…….’ 나는 이번 여행의 목표를 ‘짐을 늘리지 않는 것’으로 잡고, 그 목표에 집중할 생각이다.


ISFJ형 인간인 나는 완벽하게 계획한 여행을 좋아한다.

어느 식당에서 무엇을 먹을지도 계획하던 나. 그런데 이번에는 아무런 계획 없이 무작정 여행을 떠났다.

혼자 여행하니 남의 눈치 볼 것도 없이 그냥 여행을 맘껏 즐겼다.

자칫 완벽할 뻔한 여행이었는데 아뿔싸! 가장 중요한 목표를 놓치고 있었다. 나는 여행에서 짐을 늘리지 않기로 다짐했었다.

그랬던 내가 ‘오페라의 유령’ 첫 장면에 나오는 원숭이 인형과 너무 닮아 눈을 뗄 수 없는 테라코타 원숭이 보석 보관함을 보는 순간 이성을 잃었다. 태국 전통 스타일의 그릇도 장바구니에 쓸어 담았다. 아직도 골목길 골동품 가게에서 본 물고기 모양의 손잡이가 눈에 아른거린다. 여행 전에 내가 많이 단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치앙마이에서는 물욕을 억제하기 힘들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짐을 싸는데 어디서 그 많은 물건이 생겨났는지 놀라웠다.

다람쥐가 겨울 식량을 매일 조금씩 모으는 것처럼 나도 그렇게 가방 속에 지인들에게 줄 도토리(태국에서 싸게 구매할 수 있는 타이레놀, 말린 망고, 치앙마이 아라비카 도이창 원두, 태국 마마 똠얌꿍 컵라면 등)를 모았다.

터질 것 같은 내 가방! 이번 여행은 망했다. 우아하게 캐리어 하나만 들고 공항을 나오고 싶었다. 여행 마지막 날, 보따리 장사꾼처럼 바리바리 짐을 싸고 있는 내 모습에서 현타가 왔다. 한심했다. 내 의지가 이렇게 나약했구나!


지난번에 친구들과 치앙마이에 왔을 때 나는 태국 요리를 배우고 싶었다.

친구들은 맛있는 태국 음식을 먹는 것은 좋아했지만, 굳이 여행 와서 요리를 배우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이번에야말로 태국 음식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태국 요리를 배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숙소 근처를 지나다니면서 쿠킹 클래스를 하는 곳이 보여 등록했다.


요리 수업은 정해진 시간에 사람들이 모이면 같이 현지 시장으로 가서 식재료를 탐색하고, 자기가 선택한 요리를 배우는 프로그램이다. 쏨펫 시장(Somphet Market)에 도착하니 우리나라 수입 과일 판매대에서만 보던 각종 열대과일이 제일 먼저 보였다. 태국인 요리 선생님은 영어로 음식 만들기에 필요한 재료를 직접 보여 주면서 설명한다. 듣기 평가하는 마음으로 귀를 쫑긋 세우고 맨 앞자리에서 듣는다.


시장에서 돌아오니 테이블마다 재료 준비를 해놓았다. 내가 좋아하는 쏨땀(파파야 샐러드)과 팟타이(볶음 쌀국수) 만드는 과정을 선택했다. 집에 돌아가서 원 없이 해 먹고 싶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사 먹으면 너무 비싸니까. 여행의 짐을 줄이는 데는 실패했지만, 태국 요리를 배운 것은 참 잘한 일이다.


여행 후, 친구와 태국에서 사 온 과자를 먹으며 나홀로 여행의 무용담을 풀어놓았다.

여행 가방을 가득 채웠던 망고 젤리, 코코넛칩, 태국 전통 과자가 우리의 입으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다음에는 친구에게 직접 쏨땀과 팟타이를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했다.

물건보다 경험에 투자하는 여행이 더 많은 추억을 남긴다는 걸 깨달았다.


여행은 나를 설레게 한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하늘나라로 여행을 떠나게 된다면, 난 어떨까? 그때도 설렐까?

그곳에는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다. 짐을 쌀 필요도 없다.

내가 머문 이곳에서 나를 아름답게 기억해 줄 수 있도록 몸과 마음, 그리고 물건을 비워야 한다.

평소 주변 정리를 잘했다면 미련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떠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진정 바라는 여행은 이런 것이다.


언제라도 가볍게 떠날 수 있는 여행.

현재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경험과 나눔은 채우는 여행..

다음 여행은 지금보다 더 비우고 채우는 여행이 되기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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