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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높은구름 Mar 06. 2024

서울 길상사에서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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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나들이다.


이런저런 사연들로 짧지 않은 휴식의 시간이 주어지니 좋긴 하만, 조금 불안한 느낌도 있다.


하여 집에서 아주 먼 서울까지 특별히 정해진 바 없이 아주 오랜만에 길을 나선다.


세상의 거리와 시간을 숨 막힐 듯 압축시켜 놓은 KTX보다 많이 느리지만 편안한 의자와 여유로운 공간이 좋아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에 올랐다.


차창 밖 3월의 산들아직 겨울의 기억을 차마 다 지우지 못하고, 봄을 조심스레 기다리고만 있다.

고속버스 창문 풍경

아직 시린 겨울바람 제 할 일들이 남아 있기에 조바심 내지 않고 차분히 화려한 봄향기를 아껴 숨기고만 있다.


설렌 기분으로 지난밤 제대로 잠들지 못한 탓에 한참을 달리는 고속버스에서 기분 좋은 졸음으로 마음까지 개운하다.


고마 고속버스에 내려, 또 시내버스, 마을버스를 환승해 가며 꼭 가고 싶었던 여기 서울 삼각산 아늑한 곳에 자리 잡은 길상사(吉祥寺)에 닿았다.

삼각산 길상사 (三角山 吉祥寺)

역사가 오랜 사찰은 아니다.

국보나 보물도 없다.


그래도 오고 싶은 걸 보면 인연(因緣)이거나, 어쩜 인연이 아니었기에 그런 게 아닐까 싶어지기도 한다.


인연이면 볼 수 있게 연결되었기에 그 연()으로 보고 싶을 것 같다.

또 인연이 아니면 연이 없어 볼 수 없을 수도 있기에 그 아쉬움에 더 간절히 보고 싶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해서 말이다.


결국 보고 싶음은 인연도 인연이 아님도 다 아닌 게 어쩜 맞을지도 모르겠다.


보고 싶음은 그냥 보고 싶음이 맞다.


아무튼 보고 싶은 이가 있어 대웅전(大雄殿) 인사마저 드리지 못하고, 바쁘게 그 옆 홀로 서서 그 아름다운 미소를 보내시는 관세음보(觀世音普薩)께 간다.


길상사 관세음보살(吉祥寺 觀世音普薩)

역시 인사도 생략하고 한참을 그 아름다운 관세음보살을 눈에 담기 바쁘다.

한참을 서서 바라보다가 그제야 할 일이 많으신 관세음보살님과 눈을 맞춰 인사드린다.


차가운 돌의 모습이지만, 만지면 온기가 전해질 것만 같다.

살다 보면 힘들고, 아프고, 괴롭고 또 슬플 때  그냥 다 내게 일러 달라며 미소 짓고 계시는 것 같다.

길상사 관세음보살(吉祥寺 觀世音普薩)

그냥 듣기만 하시지는 않고, 여리지만 든든한 큰 누나처럼 다 해결해 주실 것 같다.


보고 싶어 왔다.

보고 싶음이 깊은 인연이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좋은데 인연으로 연결되지 않은 보고 싶음이라면 참 슬플 것 같다.


관세음보살이 조금 옆으로 보이는 나무 아래 작은 의자에 또 한참을 앉아있다.


겨우 일어서 돌아보는 여기 평일 조용한 도심 속 사찰은 작은 공원 같은 곳이다.

길상사(吉祥寺)

오랜 역사이지 않기에 그냥 집 주위 언제 가도 갈 수 있을 것 같은 크지 않은 공원처럼 자리 잡고 있어 좋다.


인사드리고 돌아 나오는 길에 조금 힘겨운 듯 올라오는 초록색 작은 마을버스가 예쁘다.

길상사로 가는 마을버스

길상사 가득한 나무들이 저 예쁜 초록색으로 물들면 그때 또 한 번 더 보고 싶어 질 것 만 같다.


그 초록 작은 마을버스를 타고 내려와 깊은 인연으로 연결되어서 그런지, 아니면 인연이 닿지 않아 더 보고 싶은지는 모르겠지만, 늘 보고픈 이들을 다 만나고 옛날이야기가 더 많은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늘 짧게만 느껴지고, 아쉬움이 가득해지는 걸 보면 역시 인연도, 인연이 아님도 아닌 게 맞다.


길상사 관세음보살님, 또 늘 보고 싶은 친구들과 헤어져 내려가는 고속버스 안에서 여전히 기분 좋은 졸음에 미소 지어져 좋다.

집으로 가는 고속버스

깊은 인연이던 그렇지 않던 벌써 아쉬움에 보고 싶어 지는 걸 보면 그냥 좋은 이들인 게 더 맞다.

보고 싶은 이들을 다 보고 와서 좋다.


훗날 매미소리 가득할 여기 길상사오고 싶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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