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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코코 Aug 28. 2024

#3 안녕? 안녕. 복덩아.


  봉투 안에 들어 있던 것은 초음파 사진이었다. 자궁 안에 아기집이 조그맣게 생겨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거지만 난임병원에서는 임신 초음파 사진을 다른 환자들 앞에서 대놓고 보는 것을 암묵적으로 금하는 분위기가 있다 보니 초음파 선생님께서 그렇게 비밀스럽게(?) 건네주셨던 것이었다. 원장님께서는 일단 아기집이 생겼으니 피검사 결과는 잊고 한 주만 더 지켜보자고 하셨다. 임신 중단을 위해 마음 정리를 다 하고 병원을 방문한 나는 그 말에 맥이 탁 빠졌다. 더 기다려야 하는구나. 희망 고문 당하고 싶지 않은데...        


  

  초음파에서 아기집을 본 순간부터는 주 수에 맞게 아가가 성장해야 했다. 6주에는 아기집 안에 난황이 생겨 있어야 했고, 그다음 7-8주쯤엔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했다. ‘하지만 피검사 결과가 그렇게 불규칙했는데 과연 주 수에 맞게 아기가 성장할까?’ 불안하고 답답했다. 어떤 생각으로 그다음 진료까지 버텼는지 모르겠다. 최대한 임신 관련된 생각을 하지 않으려 노력했던 것 같다.         


      

  다음 주. 초음파실에선 내 자궁 상태를 보더니 아무 사진도 봉투도 주지 않고 진료실로 가라고 했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았다. 원장님을 뵙고 내 초음파 사진을 보니 아기집은 거의 자라지 않았고 난황도 보이지 않았다. 흔히 말하는 ‘고사난자’의 상황이었다. 원장님은 더 기다려 볼지, 아니면 수술을 할 것인지를 물어보셨다. 나는 이미 마음 정리를 오래전에 끝낸 상태였기 때문에 더는 기다리지 않겠다고 말씀드렸다. 원장님께서는 수술 날 한번 더 확인은 할 것이라고 말씀하시며 안쓰러운 표정으로 수술 날짜를 잡아주셨다.                    


  평소 눈물이 적은 나지만 첫 임신과 유산을 받아들이면서 생각보다 정말 많이 울었다. 당시 나는 내가 임신이 그렇게 간절한 사람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난임 병원을 다니고 있는 처지에 우습게도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나에게 왔다 가는 작은 생명을 보니, 또 그게 너무 슬픈 걸 보니 내가 완전 틀렸구나 싶었다. 나는 아기가 간절했구나. 아닌 척 스스로를 속였던 거구나.               


 

 ‘나는 아직 젊으니 또 기회가 있겠지.’ ‘주변에 첫 아이 임신 전 유산 한 번쯤은 경험한 사람들이 많던데 나 또한 그렇게 과거로 지나가겠지...’ 이런저런 생각들로 마음 정리를 하며 수술날을 맞이했다.      


    

  다니는 병원이 오래된 곳이란 걸 알고는 있었지만 수술실과 회복실의 시설은 정말 너무 낡아서, 마치 90년대로 타임워프를 한 것 같았다. 안 그래도 울적한 기분이 조금 더 처참해졌다. 원장님께서는 여전히 거의 자라지 않은 아기집을 다시 한번 체크하시고 소파술을 진행하셨다. 수술이 끝나고, 오래되고 낡아 칠이 군데군데 벗겨진 차가운 스테인리스 베드에서 눈을 떴다. 마취에서 깨면 많이 쓸쓸할까 싶었는데 나와 비슷한 상황의 사람들이 복작하게 병실에 누워있어서 그렇게 생각보단 외롭지 않았다.        


      

  아기집만 생긴 상태에서의 유산이라서 그럴까, 다행히 수술 이후의 회복 또한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특별히 통증이랄 것도 없었다. 원장님께서는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된 후에 다시 임신 준비를 하는 것이 좋으니 세 달 후에 다시 내원할 것을 권유하셨고 나는 그동안 아-무 생각 없이 쉬기로 결심하였다. 친구들과 만나고, 운동도 하고, 보약도 먹고, 내가 하고 싶은 취미생활에 몰두하면서 그렇게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리고 유산 후 세 달이 조금 안 되었을 무렵. 나는 다시 병원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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