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복코코 Sep 04. 2024

#4 다시 만난 천사

   원장님께서 유산 후 세 달은 푹~쉬어주라 하셨지만 세 달이 조금 안 되었을 무렵 생리가 터져 버렸다. 나처럼 생리가 불규칙한 사람은 정상적인 배란을 위해 생리 3일쯤부터 배란유도제를 먹어줘야 하는데, 이번 생리가 지나가면 다음 생리는 한참 나중일 것 같았다. 하루라도 빨리 임신준비를 하고 싶었던 나는 ‘살짝 일찍 내원하는 건 괜찮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일단 병원으로 향했다. 다행히 오랜만에 뵌 원장님께서는 이 정도면 다음 임신을 준비해도 괜찮을 것 같다고 하셨다.


  나는 지난번에 유도제만으로 임신이 되었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약만 사용해서 자연임신 시도를 해보기로 했다.


   

  병원에서 주로 처방하는 배란유도제에는 클로미펜과 페마라가 있는데 둘 중에선 클로미펜이 좀 더 보편적으로 많이 사용되는 편이다. 보험이 되는 약이라 비 보험 약인 페마라에 비해 저렴하기 때문이다. 나 또한 처음에는 클로미펜을 받아왔다. 배란유도제는 큰 불편감을 주는 것까진 아니었지만 종종 두통을 일으켰다. 내 몸을 억지로 변화시키는 것이니 당연히 편할 수만은 없겠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도제를 먹는 5일간은 종종 두통약을 먹으며 버텼다.     


  배란유도제를 먹을 때 주의점은 나처럼 평소 생리주기가 매우 긴 사람이어도 약발(?)때문에 배란이 급격히 빨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나 또한 약이 배란을 너무 촉진해서 하마터면 배란 시기를 놓칠 뻔했다.. 중간 점검을 위해 내원한 어느 날. 선생님은 초음파 사진을 보더니 깜짝 놀라시며 당장 당일로 숙제 일을 잡아주셨다.          


  숙제. 아기를 만드는 행위를 난임병원에선 숙제로 표현하는데 그게 참 처음에는 웃기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중에는 정말 누가 지었는지는 몰라도 너무 잘 지은 단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기를 만들기 위한, 목적이 뚜렷한 행위는 즐기기가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숙제할 때 즐거운 학생이 몇이나 될까 생각하면 아주 훌륭한 비유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산 후 첫 숙제를 여차저차 무사히 끝냈다. 지난번엔 쉽게 임신이 됐었지만 원래 자연임신의 확률이 그렇게 높지 않으니 이번에는 기대를 버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병원 진료일이 다가오자 우선 스스로 마음의 준비를 하기 위해 테스트기를 사용해 보았다. 옛날에는 2주를 채워야 테스트기로 결과를 알 수 있었다고 하는데 요새는 얼리 테스트기를 사용하면 10일 만에 임신 여부를 쉽게 알 수 있다.          



' 유산한 지 얼마 안 돼서 이번엔 좀 힘들 거야. 아니어도 실망하지 말자.'



  그렇게 별 기대 없이 사용해 본 테스트기는, 또, 두 줄을 보여주고 있었다.


  ‘엥?’     

 기쁘다기보다는 당혹감이 먼저 들었다     



  ‘이렇게 또 쉽게 임신이 된다고? 뭔가 잘못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먼저 스쳤고, 아 그러면 또 그 공포의 피검사를 여러 번 해야 하는 건가 싶어 겁이 났다. 다녔던 병원의 초음파실, 피검사실의 그 분위기를 다시 마주할 생각을 하니 점점 자신이 없어졌다. 결국 나는 다니던 난임병원이 아닌 동네 분만병원에서 진료를 받기로 결정했다. 나는 시험관처럼 임신 유지를 위한 주사를 맞을 필요가 없어서 그렇게 해도 무방했기 때문이다.           


  두 줄을 보자마자 너무 기뻐서 친정 부모님께 “나 다시 아기가 온 것 같아.”라고 이르게 임밍아웃을 했다. 엄마 아빠 또한 뛸 듯이 기뻐해 주셨다. 그리고 빨리 병원에 가보라고 하셨지만 나는 이번에는 천천히 갈 것이라고 말씀드렸다. 나는 피검사 과정을 스킵하고 바로 초음파를 보러 갈 생각이었다. 1차, 2차, 3차.. 피검사 수치에 연연했던 지난 과정이 너무 괴로웠기 때문에 성격이 급한 나지만 잘 참을 수 있었다.          



  맘 같아선 한 8주까지 기다렸다가 병원에 가고 싶었지만 혹시 모르니 슬슬 가보라는 친정 엄마의 말에 ‘그래 혹시 자궁 외 임신처럼 비정상 임신이면 빠른 처치가 필요할 수 있으니 일단 아기집은 보러 가야겠다.’는 생각에 임신 5주 차쯤 병원을 찾았다. 다행히 아기집이 자궁에 예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여기까지는 지난 임신 때도 보았던 거라서 엄청 감격스럽진 않았던 것 같다. 이제 내 걱정은 ‘또 고사난자가 되지 않을까’하는 단계로 넘어갔다.      


  

  원장님께선 이제 2주 뒤에 다시 내원하라고 하셨다.

  아기가 정상적으로 큰다면 아마 그때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있을 터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3 안녕? 안녕. 복덩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