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환자가 되다.
"아뇨, 근무 중이라 안될 거예요 저 혼자 가겠습니다. 보호자가 필요한 거 보니 안 좋은가 보네요.."
"네. 경황이 없으실 것 같아서요. 설명드려야 할 것도 많고요."
가슴이 방망이질 친다. 일이 손에 안 잡힌다.
병원에 도착해 진료실에 들어가니 선생님 얼굴이 좋지 않다.
"유방암 0기 상피내암이라고 하는 암이라고 검사결과가 나왔습니다. 일찍 발견해서 다행이에요. 수술하면 완치가능하니 너무 걱정 마시고요."
"네...."
"질문 있으세요?"
"아니오."
병원에서 바로 인근 대학병원으로 결과지를 팩스로 보내 스케줄을 잡아주신다. 척척 알아서 잘해주신다.
어떤 선생님으로 하실지 물어보는데 내가 어떤 선생님이 유명한지 알리가 있나. 빠른 예약으로 부탁한다고 말씀드렸다.
글자가 너무 무섭다. 드라마에서 보던 암이라는 말.
가족들 중 아무도 가족력이 없기에 당연히 아닐 거라 생각했는데 설마가 사람을 잡았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괜찮다고 말하는 남편의 목소리가 떨린다. 울고 있나 보다. 아이들에게는 말하지 말아야지 결심해 본다. 입술을 깨물고 집에 들어간다. 그럼 나는 아무렇지 않은 원래 그냥 아들 둘 엄마가 된다.
예약한 대학병원 가는 날이다. 아이가 어릴 적 광범위 항생제를 써야 했던 경우에 갔던 거 말고는 처음 가보는 대학병원. 남편이 시간이 돼서 함께 진료를 보기로 했다. 아직도 둘이 눈만 마주치면 눈물이 난다. 이럴 땐 서로 눈을 피하는 게 좋다.
인상 좋은 여자 교수님이다. 받아온 검사 CD 사진을 보고 진단받은 내용이 맞는 것 같다고 하셨다. 조직검사 슬라이드를 대학병원 병리과에서 재검사해보고 확진을 한다고 이야기했다. 사진상으로 보이는 범위가 넓어서 많은 절개가 필요할 것 같다고 한다. 그냥 2~3cm 절개하는 게 아닌가 보다. 한번 더 절망감이 몰려왔다.
다음 진료 일정을 잡고 병원을 나왔다. 오랜만에 평일 낮에 시간이 남으니 데이트나 하자고 한다. 카페를 갈까 드라이브를 할까 고민하다 집에 일찍 들어가 아이들을 놀라게 해주기로 했다. 따뜻한 집에서 아이들과 저녁을 먹고 이야기하고 티브이를 보며 그렇게 하루를 보냈다.
며칠이 지났다.
대학병원에서 내린 검사결과도 동일한 내용으로 유방암 0기라고 진단이 내려졌고,
그렇게 나는 유방암환자가 되었다.
일상을 살아가려고 한다. 뭐 다르게 산다고 슬퍼한다고 달라지는 게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리고 시작된 기나긴 검사들을 받아내고 있다. 오전에는 출근했다가 오후에는 피검사, 심전도, 뼈스캔, CT, MRI 등등 40 평생 듣기만 해 봤던 여러 가지 검사들을 씩씩하게 받고 있는 중이다.
참 사는 게 아이러니하다. 내 매장을 운영하다 보니 일정조율이 쉽고 병원진료도 언제든 가능하다. 이러려고 가게 차렸다 싶기도 하다.
삶은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 같다. 그런데 그 길이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다.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고, 작은 행복에 눈물이 차오를 때가 많아졌다. 사소한 것에 화내지 않고 그저 건강한 것과 그저 평범함을 살아내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일인지 경험하게 되었다.
따뜻한 아이를 품에 안는 행복이, 보드라운 볼을 비비며 뽀뽀세례를 퍼붓는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