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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잡문집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

가까운 사람에게 들으면 아픈 말

by Helen Teller

바람이 너무 세차게 분다.

문이 덜렁거리고 손님이 올 때 알아차리기 위해 매달아 놓은 종이 계속 흔들며 존재감을 확인시킨다.

마음이 추워 그런가 날씨가 괜히 더 춥다.


어제 잠깐 남편과 말다툼을 했는데 실컷 둘이 떠들고 뒤돌아 보니 시무룩하게 고개 숙인 두 아이가 하던 일을 멈추고 우리의 이야기를 다 듣고 있었다.

너무 미안하고 안타까워 괜찮다고 미안하다고 엄마아빠 싸운 거 아니라고 사과하고 나는 씻으러 들어갔다. 참 작디작은 사건이 싸움이 되고 아무것도 아닌 일이 심각한 일이 된다. 특히 그것이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하다. 내 딴엔 열심히 살고 있다 생각하는데 돌아온 말은 다들 그렇게 산다는 것이다. 그 말도 맞다. 다들 그렇게 살지. 아침에 눈뜨면 아이들 챙기고 식사준비하고 일하고 돌아와 반복되는 일상. 모두 다 그럴 테지.

어제는 서로 많이 뾰쪽했던 것 같다.

넘어갈 법한 이야기도 받아치고 그걸 받아내는 상대는 더 크게 와닿는 그런 상태.



추운 날씨에 따뜻한 백숙을 해 먹기로 했다. 퇴근이 일러서 집에 들러 닭 손질을 해놓고 압력솥에 물과 부재료들을 담아두었다. 작은아이 수영 픽업을 가야 해 남편이 도착하면 바로 저녁준비를 할 수 있도록 준비한 거다. 아이들과 내가 도착하면 바로 식사를 시작할 수 있도록 말이다. 아이들이 개학해 모든 일정을 다 마치고 집에 와 그날 공부까지 마치면 7:30분이 훌쩍 넘는다. 그래서 최대한 시간을 아끼기 위해 노력해 본다.

남편은 내 디렉션대로 백숙을 바로 먹을 수 있도록 준비를 해놓았으며 반찬까지 정갈하게 나눔 그릇에 준비해 두었다. 네 식구가 식탁에 둘러앉아 따뜻하고 진한 백숙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아 그전에 신랑 직장일로 약간 속상한 이야기를 했었는데(전화통화로) 다음 학기에 추가로 일을 더 하는데 급여는 하반기에 받게 될지 모른다는 그런 힘 빠지는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였는지 둘 다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통화할 때는 어쩔 수 없지 뭐 하고 내가 다독이며 넘어갔더랬다.


식사하는 중 신랑이 이야기를 거 냈는데 내용은 내가 전부터 하고 싶어 했던 경매 관련 일을 언급하며 누군가가 엄청 억척스럽게 노력해 많은 돈도 벌고 유명한 유투버가 된 이야기를 했다. 본인은 정작 관심은 없다면서 그걸 보고 내게 이야기해 주기 위해 라이브강의를 들었다고 한다. 평소라면 읽었던 책 이야기 듣듯이 관심 있게 리액션하며 들었을 텐데 왜 인지 일을 더 하라는 이야기로 들렸다. 지금도 가게일하고 아이들 공부도 봐주고 픽업도 내가 하는데 시간 쪼게서, 더 노력해서 돈 벌어오라는 이야기처럼 나 스스로 베베 꼬아 들었다.

먹는 약 때문인가 갱년기가 벌써 오려는 건가 20년 지기 남편에게 잘 대답할 수도 있었던 별 내용 아닌 이야기에 나는 벌처럼 쏘아붙였다.


우리 집은 그렇게 못해 한 달 식비 20만 원? 우리 집은 일주일에 20이야!





하고 받아치는 사태로 변질.. 그러니 말하는 사람도 표정이 굳고 속상했을 거다.

그게 다툼이 되어 설거지 하는 남편에게 가서 계속 따지고 들었다.


"나도 아침부터 아등바등 살고 있어."

"아등바등? 그런 말 하지 마 네가 무슨 엄청 희생하며 지내는 것처럼 말하는데

너만 그런 거 아니야 다들 그렇게 살아."


그 말이 너무 비수같이 꽂혔다. 다들 그렇게 산다는 말 나도 알고는 있지만 너만 힘든 거 아니라는 말은 가장 가까운이 에게 들어서는 안될 말인 것처럼 들렸다. 속사포처럼 쏟아내고 뒤 돌아보았을 때 불안해하는 아이들이 표정이란. 부부싸움을 하는 모습을 보이는 건 아이들에게 참 못할 짓이다.


씻고 나온 나는 뾰족하게 굴어 미안하다고 하고 남편은 심하게 말해서 미안하다고 한다. 그런 우리를 보던 큰아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난 이해가 안 가." 한다.

야 이놈아 너도 결혼해서 살아봐 부부싸움이 괜히 칼로 물 베기라고 하겠니?


내가 어릴 때 부모님이 싸우는 소리가 들리면 불안해했다가 다시 괜찮은 모습에 안도하곤 했었다.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했는데 지키기 어렵다. 오늘 저녁 식사 자리에서는 온화한 미소로 응 응 하고 화답하는 아름다운 여인내로 남아보리라 다짐해 본다. 손톱을 드러내고 싸움을 기다리는 것 대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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