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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잡문집

내가 암이라고요?

건강검진 꼭 하세요.

by Helen Teller

"갑자기 조직검사를 하자는 거야, 너무 무서웠어."


오랜만에 아이처럼 엉엉 울어보았다. 목놓아 울었다.

결과가 궁금해 전화한 남편의 목소리에 감정은 더 울렁거렸다. 투정 부리는 아이처럼 무서웠다고, 왜 옆에 있어주지 않았냐고 혼자여서 무서웠다고 그렇게 소리 내어 울었다.


일 년에 한 번씩 하는 숙제 같은 건강검진을 몇 주 전에 마쳤다. 오랜만에 손님도 없고 서늘해진 기온에 전기장판 생각이 간절해 조금 서둘러 퇴근길에 올랐다. 일찍 출발했더니 늘 막히던 도로도 뻥 뚫려 기분 좋게 일찌감치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작은아이는 놀이터에 놀러 나갔다 하고 큰아이는 집에서 공부하고 있었다. 이리저리 뒹굴거리는 장난감과 안과 밖이 완전히 바뀌어 있는 아이들의 바지와 양말을 빨래통이 담아두고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로 전기장판에 몸을 뉘었다. 와.. 너무 따뜻하다. 꽁꽁 언 몸이 녹아내리는 느낌이었다. 저녁준비를 위해 일어나야 하니 핸드폰 알람은 45분 후에 맞춰놓고 눈을 감았다. 잠이 스르르 들려는 찰나 전화벨이 울린다. 모르는 번호다.


"네~여보세요."

"안녕하세요, 박o주 씨죠? 건강검진하셨던 병원입니다. 유방에 석회화가 진행된 부분이 있고 모양이 좋지 않아 유방암 소견이 있습니다. 오셔서 진료의뢰서 받아 큰 병원에 가보셔야 하겠는데요?"


옆에서 통화내용을 들은 큰아들은 엄마 유방암이야? 어떡해? 하며 말끝마다 유방암 어쩌고 소리를 해댄다. 한두 번은 들어주겠구먼 계속 유방암 거리니 너무 듣기 싫다. 엄마 병원 다녀올게 이야기하고 밖으로 나왔다. 이게 무슨...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병원이 마치기 30분 전에 받은 전화라 병원으로 달려갔다. 이러려고 일찍 집에 온 건가 싶었다.

데스크에 말씀드리니 3번 진료실로 들어가란다. 의사 선생님이 소견서를 써 주셨다. 2 년 전에도 석회화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데 유방암이라는 소견서에 쓰인 단어가 좀 무섭게 느껴졌다. 서류를 받으러 데스크에 다가갔다. 데스크에는 내 또래 또는 더 나이 많아 보이는 간호사 선생님 세 분이 앉아있었다.

"내일 산부인과 가보려고요." 얘기했더니 산부인과 말고 유방외과에 가야 한다고 알려주셨다. 이런 일도 처음이라 어디에 가야 하는지도 모르는 40대 모지리 아줌마다. 감사하다 인사 남기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무렇지 않았다. 주변에 석회화 얘기 맘모툼 받았다는 이야기 많이 들었다. 집에 와서 저녁준비해 가족들과 함께 저녁을 먹었다. 일반적인 똑같은 저녁식사시간이었다.




유방외과는 인근에 딱 한 곳이 있었다. 진료시간이 오전 9:30부터 시작이라 일찍 퇴근하고 들려야겠다 생각했다.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예약진료만 가능하단다. 출근 후 전화예약 해야겠다 생각하고 시동을 걸었다.

매장에 출근해 9:30에 전화 걸어 오늘 예약가능한지 물어봤더니 오후 4:30분에 가능하단다. 그럼 매장문을 일찍 닫고 출발하면 시간은 맞겠다 싶었다. 예약시간보다 이른 시간에 도착했다. 좁디좁은 건물 지하주차장에 주차하고 신용카드와 신분증만 챙기고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가벼운 마음으로.


인테리어가 너무 잘 되어있는 신식 병원이었다. 환자는 나 외엔 아무도 없어서 프라이빗 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예약만 받나 보다.' 생각하며 접수하고 진료실에 들어갔다.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젊은 여의사가 진료소견서를 받아보더니 바로 엑스레이 찍고 초음파 보자고 이야기했다.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건강검진때 했던 것과 다름없는 유방엑스레이를 찍었다. 잠시 대기하라고 하더니 초음파실로 안내했다. 초음파. 아이들 뱃속에 있을 때나 접했던 초음파. 베드에 누워 따뜻한 겔을 바르고 초음파를 보기 시작했다. 화면을 함께 봤지만 봐도 뭔지 모르겠다. 시커먼 화면에 허연 물결 같은 게 보였다 말았다 했다. 크기를 측정하는 것 같았다. 그냥 그려려니하고 화면을 응시하며 불편하게 누워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마취를 해야겠단다. 네? 어디에 가슴에요?? 몇 군데 조직검사를 해야겠다고 한다. 마음에 준비를 할 겨를도 없이 주삿바늘이 내 몸에 들어왔다. 살짝 찌르는 것도 아니고 너무 깊숙이 찔렀고 오랫동안 머물러 있었다. 그리고 계속된 조직검사. 주사 맞을 때부터 난 눈을 감았고 검사가 끝날 때까지 뜨지 못했다.


별생각 없이 온 병원이었다. 설마 이상이 있으려고.. 이상이 있다 해도 다음에 일정을 잡아 검사를 하거나 그러는 줄 알았는데 너무 아무 생각 없이 검사를 당했다.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날 줄은 상상도 못 했기에 이 모든 것들이 가짜같이 느껴졌다.


차에 올랐다. 핸드폰을 통해 들리는 남편의 목소리에 참았던 눈물이 터져나왔다.

"괜찮아 아무일도 아닐꺼야 그냥 검사 해본 걸꺼야, 너무 걱정하지말고 집에가서 쉬고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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