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에 아이 학급의 학예발표회가 예정되었다. 1학년때는 어영부영 지나가버렸고 이번이 스스로 준비하는 첫 학예발표회다. 발표 신청서도 받고 공연에 필요한 영상이나 배경음악도 미리 제출하라는 안내들이 있었다. 하고 싶은 친구들만 하는 건가 했더니 모든 친구들이 다 참가는 해야 한단다. 1명당 주어지는 시간은 최대 3분. 신청서를 내는 기한은 지났는데 아직까지 가방에 넣고 다닌다. 아이고, 아들아.
참가 종목은 뭔가 했더니 마술이란다. 방과후교실에서 2년간 마술을 배운 덕이다. 매주 하나씩 마술도구를 받았으니 집에 쌓인 마술도구도 한 상자 가득이다. 처음엔 신나서 그날 배운 마술을 집에 오자마자 보여주고 태권도장에도 가져가서 보여주고 하더니 요즘은 통 뭘 하는지 보여주지 않는다. 이게 마술도구인지도 모르게 가방에 있다 마술상자로 처박히는 요즘이다.
담임선생님이 며칠째 숙제로 공연 준비를 시키시는데 여태 아무것도 연습하질 않기에 답답한 마음에 묻는다.
-학예회 때 무슨 마술할 건지 정했어? -아니. 뭐 할지 모르겠어. 마술선생님한테도 물어봤었는데 다음 주에 다시 물어볼래. 풍선마술 괜찮댔는데 이거 칼을 하나 잃어버렸어. -에이. 그럼 다음 주까지 아무 연습도 안 한다고? 그거 말고 다른 거 해. 전에 그 CD마술 어때? -CD 안 보이던데? -잘 찾아봐. -아? 이건가? 맞네. 근데 이거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안 나.
아.. 그래. 할 때만 잠시 열심히 하고 지나고 나면 하나도 기억을 못 하는 게 문제다. 엄마가 유튜브를 뒤져서 영상을 보여줘도 도대체 흥미가 없다.
-자, 엄마가 해볼게. 이렇게 CD 다 보여준 다음에 CD 하나 넣고 리본을 구멍 사이에 끼워 넣으면 이렇게 바뀌는 거지.
설핏 기억난 모양.
-엄마 이거 안 들어가. -그거 잘 넣고 빼는 걸 연습해야지.
잘 안 된다고 투덜투덜.
-아, 이번에 한 꽃도 해도 된대. -그거 30초면 끝나는 거 아냐? 꽃도 하고 CD도 하고 둘 다 해. -두 개나? 음... 그럴까? 근데 꽃이 안 보여. -네가 아무 데나 뒀겠지. 뒤로 넘어갔나 찾아봐. -아, 여깄네.
노는 꼴을 못 보는 엄마는 기어코 아이가 연습을 하는 모습을 봐야 마음이 놓인다.
-여기 CD들이 있습니다. 자, 뒤에도 아무것도 없죠? 이 마술상자에 CD를 넣어볼까요? 노란 리본을 여기에 넣으면 짜잔 노란 CD가 됐습니다.
조잘조잘 한번 해보곤 마냥 노느라 마술도구가 허공을 날아다니고 엉망이다. 무대체질은 아니지만 잘했으면 싶은 엄마는 배경음악도 틀고 멋들어지게 했으면 싶은데 아이는 다 필요 없단다. 이런 담백한 공연 같으니. 하고 싶은 말은 한 가득이지만 마음속에 꾹 눌러 담아본다. 아이가 할 일을 침범하지 않으려 애쓰는데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이토록 어려운 거라니.
아들, 넌 모르겠지만 엄마는 엄청난 인내를 연습 중이야. 차츰 조바심 덜고 묵묵히 네 길을 바라볼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