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버전 과속스캔들?
2008년 과속스캔들이란 영화를 참 재밌게 보았습니다. 위 그림은 저의 결혼식 사진을 인공지능으로 묘사를 해본 것인데 실제로 2005년 결혼 당시 저의 한쪽 팔은 아내가, 다른 쪽 팔은 딸(?)이 차지 하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사람들이 누구냐고 물으면 제 딸이라고 답합니다. 사실 결혼 이후, 곧 20주년을 맞이하는 제겐 아들은 있어도 딸은 없는데도 말입니다.
두 번째 근무 학교에서 만난 영희(가명)는 또래 아이들에 비해서 밝았고, 똑부러진다는 첫인상을 주었던 학생입니다. 인문계고에 아쉽게 진학을 하지 못해 특성화고로 진학했다지만, 금새 자신의 환경에 잘 적응하며 선도부원활동 등 학교의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며 잘 지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밝고 붙임성이 좋아 선생님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았으며, 딤임교사는 아니었지만 일주일에 세 번 수업을 하게 되는 저와도 금새 친하게 지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가끔 일상적인 고민도 주고 받으며 지내다 여름 방학이 되었을 어느 날 영희에게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통화 내용이 다 기억나지는 않지만 안부를 묻고 하다 "선생님, 내 아빠 해줄 수 있어요?" 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저는 아주 잠시 머뭇했던 것도 같지만 어떤 이유도 묻지 않고 "그래"라고 답해주었습니다. 제가 결혼 전이었고, 영희와 제가 12살밖에 차이나지 않는 띠동갑이라는 사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이 아이의 기대에 실망을 시키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특성화 고등학교에는 편부모, 조부모 가정의 학생들이 많았습니다. 지금이야 학부모의 아동학대를 말하는 시대지만 20년 전은 가정 폭력에 상처받는 아이들도 많았던 것 같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아픈게 아픈건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잘못된 것임을 안다고 해도 가정의 문제를 학생 스스로는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습니다.
그건 교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안타까워도 어디까지나 학교라는 테두리 안에서 대해줄 수 있을 뿐입니다. 그렇게 어른들에 대해 마음의 벽을 세우고 있는 학생들에게, '어른들중에도 최소한 너희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줄 수는 있는 이도 있어'라는 말을 그들의 마음에까지 닿게 하는 것이 쉽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1년 밖에 있을 수 없었던 학교, 그렇지만 영희는 이후로도 연락을 할때면 언제나 아빠라고 불러주었습니다.마음속 아버지의 자리, 그 자리를 제가 얼마나 채워 줄 수 있었는지 모르지만, 영희는 대학 진학도 하고, 간호사로써 여엿한 사회인으로 지내다 지금은 좋은 짝을 만나 두 아이의 엄마로 살아갑니다. 그렇게 딸 아이가 성장하고 자신의 삶을 오롯이 살아내는 모습을 보는 제가 영희보다 더 복을 많이 받은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남은 교직생활 가운데 영희처럼 딸이나 아들로 부를 만한 아이들은 못 만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영희에게 그랬던 것 처럼, 너희들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줄 수 있는 어른도 있다는 것, 정말 주위에 친구들의 도움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만났을 때 연락할 수 있는 어른이 있다는 것, 그런 마음을 전해줄 수 있는 어른으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좀 더 바라기는 더 이상은 아이들이 본인들의 잘못이 아닌 일로 아파하고 상처받는 일은 없었으면... 어른들이 아이들 앞에 좀 덜 부끄럽게 살았으면 합니다.
영희야, 잘 지내지? 네가 아빠 딸이라서 너무 감사해. 언제나 너의 한 걸음 한 걸음을 아빠가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