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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CI Oct 26. 2024

구멍 난 캔버스화

타마라

달리기 하다가 누군가가 떠올라

한동안 쉬었던 연재를 이어가 봅니다.






"너 내일 가니까 내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거 해줄라고."


그날 나는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컬리플라워를 먹었다. 크로아티아어로 뭐라고 말을 했는데 이름은 까먹었고 뒤돌아보니 발칸 스타일의 - 크로아티아 사람들은 발칸이라는 표현에 발끈하겠지만 - 구운 컬리플라워였다. 내게 밍밍하고 개성 없는 맛의 대표주자였던 컬리플라워가 타마라 덕분에 오명을 벗은 날이다.


그녀의 집에 머무르기 전까지 나는 자그레브 시내에 있던 한 호스텔에 있었다. 거기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예쁘장한 여자애가 있었는데 - 카라 델레바인 닮았고 구멍 난 캔버스화를 신고 다녔는데 자기가 아끼던 파블로 네루다 책을 내게 선물해 줬다. 어린 시절 나는 구멍 난 캔버스화를 신고 다니는 사람들을 신뢰하는 경향이 있었고 나도 그러고 다녔다 - 내가 자그레브에 두 달 정도 있고 싶다고 말하자 자기 절친을 소개해주겠다 했다.


"호스텔 체크아웃 했으면 지금 보러 갈래?"


나는 격한 감사의 끄덕임을 표하며 카라 델레바인을 따라 옐라치치 광장에서 자그레브 역 뒤편까지 열심히 걸었다.


그리고 그렇게 타마라를 만났다.


마음이 따뜻한 아이였다. 얼굴에 그렇게 쓰여 있었다.


"이제 대충 방 정리 됐으면 저녁 먹으러 갈래? 우리 학교 밥 공짜야. 그리고 맛있어!"


타마라는 자그레브대학교 학생이었다. 내 구멍 난 캔버스화를 보고 굉장히 불우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지 재밌다고 느꼈는지 그것도 아니면 이방인에게 친절하라는 말을 듣고 자랐는지 몰라도 그녀는 내게 뭔가를 먹이고 싶은 모양이었다. 나는 남의 대학교 밥이 궁금하기도 하고 배도 고파서 흔쾌히 따라나섰다.


그녀의 말대로 밥은 맛있었다. 이름 모를 크로아티아 음식과 어딘가 범유럽스러워 낯설지 않은 메뉴가 혼재했는데 술술 넘어갔다. 한창 혼자 여행하는 일이 재밌었던 시절, 스스로 자처한 일임에도 낯선 땅을 혼자 돌아다니는 일은 고단했고 마음에 채워지지 않는 허기가 있었다. 그래서 많이 먹었다. 지금은 상상도 못 할 양을 먹고 돌아다녔다. 열심히 먹은 에너지를 낯선 사람들과 노는데 바쳤다.


재밌는 것들은 힘들었다. 집 떠나서 대체 이게 뭐 하는 짓이지? 같은 질문을 하루에 수차례 반복하는 과정에서 서로 말이 안 되는 것들이 있는 그대로 온전하며, 나는 내 삶을 나쁘지 않게 꾸려가고 있다는 내적 인가가 내려졌다. 다음날 또 뒤집어질 인가였지만 상관없었다. 자꾸 뒤집어진다는 것에 대항하기보다는 웃기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자그레브를 떠날 즈음에야 알게 된 것은 학교밥이 공짜가 아니었다는 사실. 타마라는 자기가 돈 주고 산 식권을 학교에서 그냥 주는 거라 뻥을 쳤고 아무 생각 없던 나는 신나게 얻어먹었다. 그리곤 집에 가는 길에 우리가 좋아하던 초콜릿이 두텁게 발린 버터쿠키를 가슴에 소중히 품고 와구와구 먹으며 집으로 돌아와 밤새 얘기하다 잠들곤 했다.


이런 사람을 소개해 준 카라 델레바인이 매일 밤 고마웠다.




"너 근데 여행하는 주제에 크로아티아어 학원은 왜 다니는 거야? 크로아티아어가 이 나라 밖에서 쓰일 일이 있나?"


"유럽 지역 언어 2개 시험 통과해야 졸업할 수 있어. 여행하는 김에 하는 거지."


"그럼 내 친구 소개해줄까? 걔가 아시아 언어에 관심 많거든. 서로 가르쳐 주면 되겠네!"


"진짜? 나야 좋지."


그렇게 나는 또 타마라 덕분에 젤레미르를 만났다.




카라 델레바인이 내게 준 책. 네루다의 <Songs of Love and Hope> 크로아티아어 다 까먹었지만 가끔 멍하니 펼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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