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컬렉션들에서는 작품 Babydrone과 Connection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데요. 그중 Connection은 자궁에 있는 아기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모습으로 아기가 태어난 이후에 조차 어머니와 아기가 디지털로 연결되어 있음을 의미합니다. 단순하지만 강렬한 인상을 주는 디지털 조각이죠.
그런데 과연 어머니와의 유전적 연결 속에서 디지털 세포를 보유한 채 태어난 아기는 미래 세대의 모습이기만 할까요? 뱃속에서조차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 모습이 좀 섬뜩하기도 하지만 하루 종일 스마트폰, 태블릿, PC 등 전자기기에서 떨어질 수 없는 우리 모습과 다를 바 없습니다. 아기가 엄마와 분리될 수 없듯, 우리도 디지털과 분리될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전자기기와 소셜 미디어에서 잠시나마 해방되려는 디지털 디톡스(digital detox/ 디지털 단식)까지 있을 정도니 과장이라기보다 현실반영에 가깝다고 할 수 있죠.
이 작품은 2017년 실물 작품으로 전시되었을 때 위 사진처럼 탯줄이 있었는데 2018년 청동 조각상과 그 후의 NFT작품에서는 탯줄을 볼 수 없습니다. 최소한의 생물학적 연결 고리(탯줄)조차 필요 없는 강력한 디지털 커넥션과 모든 영역에서 와이파이, 블루투스, NFC 등 무선(Wireless)이 되어가는 추세를 반영한 것이 아닐까요?
클라피스의 대표작으로 자리매김한 Connection은 암호화폐 지갑 회사인 Eidoo가 의뢰해 청동조각상으로 제작되기도 했는데 ‘Crypto Connection’이라는 이름으로 런던 거리에서 10일 동안 전시되었습니다. 크립토 커넥션이라는 이름처럼 디지털 화폐의 미래에 대한 상징이기도 한데 금융 중심지 런던의 암호화폐 관련 회사 앞에서 트로피처럼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습니다.
Connection이 다소 충격적인 이미지이지만 미래 디지털 세계에 냉소적인 시선을 던지는 것으로 보이진 않습니다. 오히려 디지털 미디어를 적절히 활용해 현재와 미래를 대비하는 쪽에 가깝다고 할 수 있어요. 클라피스는 디지털 라이프스타일 개선을 위한 ‘Deep Scrolling Experience(깊은 스크롤 경험)’라는 행사를 마련하기도 했기 때문이에요. 소셜 미디어 이용을 예술, 문화와 관련한 유익한 콘텐츠의 소비로 유도하고 디지털에 중독된 아이들이 전문가의 심리적 지원을 받게 하는 이벤트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클라피스는 작품 제작뿐만 아니라 작품이 어떤 사람들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지 고민하고 행동으로 옮깁니다. '예술은 결국 모두를 위한 것'이라고 말하는 듯하네요.
두 번째 컬렉션인 ‘Concretes, Back to Earth(콘크리트, 지구로 돌아가기)’에서는 이전 컬렉션의 작품들이 모두 콘크리트 버전으로 바뀌었어요. 우주에서 지구로 돌아왔다는 점을 상기시키며 ‘Back to Earth’라는 제목을 덧붙였는데 첫 번째 컬렉션에서 배경과 조각상의 재료(질감)가 바뀌면서 완전히 새로운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특히 ‘Concrete Touch Scream(콘크리트 터치 스크림)’은 노트북 모니터에서 손을 뻗고 있는 영원히 만날 수 없는 한 쌍의 남녀가 서로를 바라보며 무언가를 외치는 모습이에요. ‘Screen’과 발음이 비슷한 ‘Scream’을 제목에 넣어 전자기기의 '화면을 터치한다'는 느낌도 준 것으로 보여요. 작품과 찰떡처럼 어울리는 제목 때문에 더욱 실감 납니다.
세 번째 컬렉션은 ‘Flooded Ruins(침수된 유적)’로 Grieving Conceptions, New Race, Digital Growth의 세 작품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지구에 있는 조각상(유적)들이 물에 잠겨 있는 가운데 작품 Grieving Conceptions(슬픔에 빠진 상념)는 VR기기를 쓴 채 기술로 구현된 가상의 아기를 안고 있는 자세의 한 여인을 보여줍니다. 몸을 약간 기울인 채 아이를 바라보는 여인은 딱딱한 돌의 질감으로 화석처럼 굳어져 있습니다. 세월의 풍파가 홍수처럼 쏟아져도 아이를 보고 싶은 마음만큼은 변치 않는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더군다나 하반신은 아직도 물에 잠겨 있어 슬픔과 고난이 여전히 진행 중임을 암시하는군요. 보는 이의 마음을 뭉클하게 만드는 이 작품은 현대판 버전 '폼페이의 연인'인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은 특히 항암치료 하루 만에 세상을 떠난 딸을 VR을 통해 만나게 해 준 'VR다큐멘터리 - 너를 만났다'라는 TV프로그램을 떠올리게 하는데요. 프로그램의 주인공인 어머니는 영원히 만날 수 없음을 잘 알지만, 잠시나마 가슴에 묻은 딸을 보기 위해 촬영에 기꺼이 임합니다. 어머니가 VR을 쓰자 딸 '나연이'가 영상으로 나와 말을 합니다. "엄마 나 예뻐? 예쁘지" "너무너무 예뻐 우리 나연이" 엄마는 왈칵 눈물을 쏟으며 나연이를 어루만집니다. 비록 허공일지라도, 비록 영상일지라도. 가슴에 묻어 둔, 나의 모든 세상이자, 우주, 삶의 이유였던 사랑하는 딸을 말입니다. 그 누가 이 엄마에게 그건 단지 영상일 뿐이니 더 이상 집착하지 말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 체험이 끝나면 뼈아픈 현실로 돌아와 허망함을 느끼겠지만, 이렇게나마 잠시라도 그리움을 달랠 수 있다면.. 여러분은 이와 비슷한 상황을 겪는다면 체험을 시도해 볼 건가요? 지금 당장이 아니더라도 미래에 가상과 현실의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VR기술이 더욱 고도화된다면? 가상현실은 언젠가 엔터테인먼트 분야와 더불어 사람들의 상실감과 정신적 고통을 달래줄 웰빙 비즈니스가 되어 우리 삶에 더욱 깊이 파고들게 될 것입니다. 세상을 먼저 떠난 그리운 가족을 만나고, 10년을 함께 살며 행복을 주었던 반려동물과 산책을 하고, 진작 찾아뵙지 못했지만 돌아가신 그리운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는. 머잖아 익숙한 현실이 될 장면을 우리는 Grieving Conceptions을 통해 조금 먼저 만나볼 뿐입니다.
작품 ‘New Race(새로운 인종)’는 사람의 얼굴에 전자기기가 붙어 있는 조각상입니다. 새로운 인종이 전자기기와 밀접해지다 못해 일체가 되어 인간의 주요 감각 기관의 역할을 기계로 대체했습니다. 끔찍하기까지 한 상상이지만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마냥 확신할 수만은 없는 기술 시대의 미래입니다. 로봇과 AI, 챗GPT 등으로 대변되는 작금의 첨단 산업과 기술들은 생각보다 우리 곁에 가까이 와 있기 때문이죠. 클라피스는 이처럼 우리가 당면한 실질적인 문제와 고민들을 모두가 쉽게 공감할 수 있고 독창적인 방식으로 표현하는 능력이 매우 뛰어납니다.
컬렉션 중 또 다른 작품인 ‘Digital Growth(디지털 성장)’라는 작품에서는 마치 고장 난 인큐베이터에서 표류를 하는 것 같은 아기의 모습이 표현되었습니다. 홍수로 주변 상황이 온전치 않지만 아기의 표정은 오히려 편안해 보이기까지 하죠. 디지털 세상에만 있어서 주변상황을 모르는 것일까요? 아니면 폭풍이 지나간 자리에서 살아남은 안도감일까요? 그것도 아니면 앞으로 닥칠 무지막지한 삶의 변화를 인지하면서도 기술의 요람이 제공하는 안락함으로 현실적 문제를 외면하려 하는 것일까요? 여러분도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위의 세 작품은 마지막 컬렉션 ‘Future Relics(미래 유물들)’에 다시 등장합니다. 형태는 그대로지만 세월이 흘러 금이 가고 갈라져 있습니다. 이 조각상들이 유물이 되어 전시장에 보존된 콘셉트인 것으로 보이는데 신비롭고 장엄한 배경음악과 어우러져 독특한 감성을 느낄 수 있습니다.
미래 유물들(Future Relics)은 현대의 오브제를 미래의 시각으로 바라본다는 점에서 대니얼 아샴 작가의 ‘허구의 고고학(Fictional Archeology)’을 떠올리게 합니다. 또 Secondary Space(두 번째의 우주) 컬렉션의 경우 대니얼 아샴 작가의 NFT작품 ‘Eroding and Reforming Floating Sculptures’와 분위기와 콘셉트가 매우 비슷하죠.
두 아티스트는 모두 네덜란드 기반의 모코 뮤지엄(Moco Museum)에서 전시 경험이 있으며 NFT아트 마켓 플레이스 니프티게이트웨이에서 민팅을 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서로의 작품을 잘 알고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