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데 재밌다는 아무 이야기

나의 즉흥적인 아무 이야기를 좋아하는 우리 딸에게 들려 준 오늘의 이야기

by 명란김

"엄마 재밌는 이야기 해줘."

"옵케이!"


옛날 옛날에 백설 공주랑 팥쥐가 살았어요.

어느 날 팥쥐 엄마가 백설공주 아빠랑 결혼을 했어요. 백설공주 아빠가 왕이니까, 팥쥐 엄마가 왕비가 되고 싶었던 거지. 그래서 백설 공주에게 새엄마가 생긴 건데. 이후로 백설공주는 매일매일 힘들었어. 팥쥐 엄마와 팥쥐가 백설공주를 계속 계속 괴롭혔거든. 빨래해라, 설거지해라. 청소해라, 음식 해라. 쉴 새 없이 계속 계속 부려 먹고 막 그런 거야. 그러던 어느 날 팥쥐가 동네잔치에 놀러를 가게 됐어. 그냥 나갈 리 없는 팥쥐는 백설 공주에게 또 온갖 허드렛일을 다 시켰어. "나 오기 전까지 이거 해 놔, 저거 해 놔. 이거저거 이거저거 다 해 놔. 알겠어!" 백설공주는 팥쥐의 너저분한 옷방 정리부터 시작했고, 팥쥐는 룰루랄라 성문 밖으로 나갔어.


그때 어떤 할머니가 팥쥐 앞으로 다가왔어. 짜증이 난 팥쥐가 말했어. "뭐야, 이 할미는?" 할머니가 물었어. "너 어디 가니?" 팥쥐가 답했어. "잔칫집 간다, 저리 안 비켜!" 할미가 또 물었어. "그럼 백설공주는 어디에 있니?" 팥쥐가 답했어. "집에 있지! 집에서 청소해! 아이씨 할미 땜에 늦어버렸잖아!" 팥쥐는 할머니를 확 밀치고 막 달려갔어. 할머니는 달려가는 팥쥐를 한 번 쳐다본 뒤, 성안으로 들어갔어.


할머니는 지팡이를 짚고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성안을 구석구석 뒤지기 시작했어. 백설공주를 찾으려고. 그러다가 저기 한쪽 구석에서 걸레질하고 있는 백설공주를 발견했어. 할머니가 불렀어. "백설공주야." 백설공주가 쳐다봤어. "네?" 할머니가 말했어. "많이 컸구나. 예쁘게 컸어." 백설공주가 물었어. "저를 아세요?" 할머니가 말했어. "그럼 알다마다." 백설공주가 말했어. "저는 처음 보는데. 저를 어떻게 아세요?"


할머니가 빨간 사과를 건네며 말했어. "일단 이것부터 먹고 잠시 쉬렴." 백설공주가 말했어. "맛있어 보이긴 하지만, 지금은 안 돼요. 여기 걸레질 끝나면 저기도 해야 하고, 저기도 해야 하고, 설거지도 해야 하고, 빨래도 해야 하고, 청소 다 끝나면 저녁 준비도 해야 하고, 할 일이 너무 많거든요." 할머니가 빨간 사과를 백설공주 손에 쥐여 주며 연거푸 말했어. "그럼 한 입만이라도 먹어 보렴." 배가 고팠던 백설공주는 침을 꼴깍 삼키며 빨간 사과를 받아 들고 여기저기 눈치를 살피다가 얼른 한 입 베어 먹었어. 사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일만 하고 있었거든. 그런데 갑자기 백설공주가 쓰러져 버렸어. 그러자 할머니가 백설공주를 침대로 옮겨 눕혔어.


그때 이상한 소리를 들은 팥쥐 엄마가 두리번거리며 나타났어. 그리고 할머니와 딱 마주쳤어. 팥쥐 엄마가 물었어. "당신 뭐야?" 할머니가 말했어. "백설공주 어미다." 팥쥐 엄마가 말했어. "뭐라고? 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여길 들어와? 당장 나가!" 팥쥐 엄마가 할미를 확 밀어버렸어. 그때 한쪽 구석에 모여있던 7명의 쪼끄미 쫄병들이 우르르 몰려와 할머니를 척 받아냈어. 처음부터 할머니는 혼자 오지 않았어. 7명의 쪼끄미 쫄병들과 함께 왔었거든.


할머니가 벌떡 일어나 팥쥐 엄마에게 물었어.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어딜 가고 이 큰 성의 일을 백설공주 혼자 다 하는 거지?" 팥쥐 엄마가 말했어. "알 봐야? 이 쪼끄만 것들은 또 뭐야? 내 성에서 당장 나가! 꺼지라고!" 팥쥐 엄마는 아까보다 더 세게 할머니를 밀쳐버렸어. 그때 할머니가 지팡이를 바닥에 탕치니까 젊은 날의 왕비의 모습으로 변신이 됐어. 아까처럼 힘없는 노인이 아니라서 이번엔 넘어지지 않았지. 그러면서 7명의 쪼끄미 쫄병들에게 말했어. "백설공주를 지켜!" 그 말을 들은 7명의 쪼끄미 쫄병들은 백설공주 침대로 우르르 몰려가서 백설공주를 단단히 에워쌌어.


팥쥐 엄마는 깜짝 놀랐어. 힘없던 꼬부랑 할머니가 젊은 날의 예쁜 왕비의 모습으로 변신을 해 버렸잖아. 팥쥐 엄마가 소리쳤어. "당신 뭐야! 귀신이야?" 백설공주 엄마가 말했어. "아니, 난 마녀. 백설공주가 아무 말 안 했나 보구나. 그래서 겁 없이 우리 백설공주를 괴롭혔던 거로군." 팥쥐 엄마는 어이가 없다는 듯 막 웃으며 말했어. "아, 그르세요? 마녀시구나? 녜, 자기소개 잘 들었고요. 이제 그만 끄지세요. 네가 마녀면 나는 산신령이다. 이 괴물아!"


백설공주 엄마가 말했어. "못 믿는구나? 못 믿겠으면 어뜨케 호박마차라도 한대 불러서 태워줘 볼까?" 팥쥐 엄마가 말했어. "하이고, 네가 정말 마녀라고? 네가 마법을 부릴 줄 알다고? 호. 박. 마. 차? 웃기시네! 그래, 어디 한 번 불러서 태워줘 보시든가? 나가! 이 또라이야!" 그러자 팥쥐 엄마 앞에 호박마차가 펑하고 나타났어. 팥쥐 엄마는 완전 깜짝 놀랐어. 호박마차가 금이랑 보석으로만 만들어져서 엄청 휘황찬란했거든. 팥쥐 엄마가 말했어. "뭐야! 정말 호박마차잖아!" 백설공주 엄마가 말했어. "가질래?" 팥쥐 엄마가 말했어. "당연히 가져야지. 이 나라에 있는 건 다 이 왕비 건데!" 백설공주 엄마가 말했어. "그럼 타." 그 말을 들은 팥쥐 엄마는 귀신에 홀린 듯 마차에 올라탔어. 그리고선 마차와 함께 그대로 사라져 버렸어.


그런 후, 백설공주 엄마는 잠들어 있는 백설 공주에게 뽀뽀를 했어. 그랬더니 백설 공주가 잠에서 스르르 깨어났어. 백설공주가 백설공주 엄마를 보고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긴가민가 물었어. "엄마...?" 백설공주 엄마가 답했어. "오야, 아가. 엄마가 너무 늦게 왔지. 미안해." 백설공주는 엄마 품에 와락 안겨서 엉엉 울었어. "엄마! 보고 싶었어. 너무너무 보고 싶었어!" 백설 공주와 백설공주 엄마는 서로를 꼬옥 끌어안고 펑펑 울었어. 7명의 쪼끄미 쫄병들도 함께 기뻐했어.


그때 팥쥐가 돌아왔어. 백설공주는 깜짝 놀라서 벌떡 일어났어. 팥쥐가 백설공주를 불렀어. "야, 백설공주 너 어딨어! 밥 차려! 나 배고파!" 백설 공주와 백설공주 엄마, 그리고 7명의 쪼끄미 쫄병들이 팥쥐에게로 갔어. 깜짝 놀란 팥쥐가 말했어. "이것들은 다 뭐야?" 백설공주 엄마가 신발 한 짝을 팥쥐에게 들이밀며 말했어. "이 신발 주인을 찾고 있는데, 혹시 니가 이 신발 주인이니?" 팥쥐가 신발을 보며 말했어. "어? 어, 그 그렇다! 이리 줘라!" 팥쥐 눈에 엄청 예쁜 유리 구두였거든. 보석이 총총 박힌 크리스탈 구두였어.


백설공주 엄마가 말했어. "그럼 한 번 신어 볼래? 신발 주인이 맞는다면 발에 맞아야 하지 않겠니?" 팥쥐는 신발을 홱 뺏어서 꾸역꾸역 억지로 자기 발을 구겨서 집어넣었어. 백설공주 엄마가 말했어. "어머나 발에 꼭 맞는구나." 팥쥐가 백설공주 엄마에게 말했어. "봐! 내 신발 맞지! 그러니까 내 거야!" 백설공주 엄마가 신발 한 짝을 더 건네며 말했어. "그렇구나. 이것도 마저 신으렴. 그리고 이 신발을 주워서 보낸 사람에게로 가서 그 사람과 결혼하렴. 그 사람과 결혼을 해야 이 신발을 모두 가질 수 있는 거란다." 팥쥐가 말했어. "갑자기?"


백설공주 엄마가 말했어. "아니면, 여기 백설 공주에게 한 번 신겨봐도 되겠니?" 팥쥐가 버럭 화를 내며 말했어. "내 건데, 왜! 싫어!" 백설공주 엄마가 물었어. "그럼 갈 거니?" 팥쥐가 답했어. "좋아! 여기로 데려와서 같이 살면 되지, 뭐!" 백설공주 엄마는 7명의 쪼끄미 쫄병들에게 팥쥐를 그 사람에게 데려다주고 오라고 했어. 그렇게 팥쥐는 그 신발을 신고 7명의 쫄병들을 따라나섰어.


팥쥐는 힘들었어. 사실 발에 맞지 않은 신발을 억지로 신었던 거잖아. 그러니 발이 얼마나 아파. 하지만 벗으면 뺏길까 봐 벗지도 못하고 한참을 걷고 또 걸었어. 그렇게 한참을 걷던 팥쥐 앞에 드디어 으리으리한 성과 왕자가 나타났어. 팥쥐가 말했어. "뭐야? 여기가 훨씬 좋잖아!" 왕자가 팥쥐에게 반지를 건네며 물었어. "나와 결혼해 줄래?" 팥쥐는 날름 반지를 받아 끼고선 기뻐 날뛰며 답했어. "꺄아 아악 보석 반지잖아! 여기가 내가 살 집이라니. 이건 너무 꿈만 같아! 좋아! 좋아!" 팥쥐 뒤에 서있던 7명의 쫄병들도 덩실덩실 기뻐했어. 팥쥐가 7명의 쫄병들에게 말했어. "야! 지금까지 안 가고 뭐 해? 그만 꺼져!" 7명의 쪼끄미 쫄병들은 왕자에게 예의 바른 인사를 하고 백설공주가 있는 성으로 향했어. 팥쥐도 7명의 쪼끄미 쫄병들을 쫓아버린 뒤, 성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돌아섰어.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야? 성이 없어. 왕자도 없어. 조금 전까지 있었던 그 으리으리한 성과 엄청 멋진 왕자가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거야. 성이 있던 자리엔 지푸라기로 지어진 집만 있고, 왕자가 서 있던 자리에는 사람 닮은 황소개구리만 서있는 거야. 소스라치게 놀란 팥쥐가 소리쳤어. "뭐야! 뭐야! 이게 뭐야! 넌 누구야!" 황소개구리가 말했어. "난 너의 신랑이고 여긴 우리가 살 집이지." 팥쥐가 말했어. "아니야! 아니야! 여기 아니야! 너 아니야! 이상해! 이상해!!" 황소개구리가 말했어. "응, 맞아. 아까 네가 모두 오케이 했잖아. 이젠 여기서 나랑 살아야 해. 드루와."


팥쥐는 소리쳤어. "말도 안 돼! 이건 꿈이야! 꿈이라고!" 황소개구리가 말했어. "응, 아니야. 이건 생시." 팥쥐가 소리쳤어. "아아악 아니야! 아니야! 싫어! 싫어! 신발도 필요 없고 반지도 필요 없어! 다 필요 없어! 우리 집에 갈 거야. 우리 집에 갈 거라고!" 팥쥐는 신발을 벗으려고 했지만, 신발이 벗겨지지 않았어. 그런데 자세히 보니 그건 보석 박힌 유리 구두가 아니라 그냥 까만 고무신이었어. 꽃 그림이 그려진 검정 고무신. 반지도 보석 반지가 아닌 그냥 지푸라기로 돌돌 말린 반지였어. 모두 다 팥쥐의 욕심이 보았던 허상이고 환상이었던 거야.


그래서 욕심 대로 신은 신발은 다신 벗을 수 없게 됐고, 그 신발을 신고 간 곳에서는 절대 벗어날 수 없도록 백설공주 엄마인 마녀가 마법을 걸어두었던 거야. 그리고 반지를 한 번 낀 이상 그 반지를 건넨 사람과도 절대 헤어질 수 없도록 마법을 걸어둔 거지.


팥쥐는 매일 울었어.

검정 고무신에 그려진 꽃그림이 지워지도록 매일매일 눈물을 흘리며, 지푸라기 집에서 황소개구리와 함께 늙어갔어. 그러던 어느 날 리어카를 탄 할머니가 집 앞에 멈춰 섰어. 한참 동안 팥쥐를 쳐다보다가 팥쥐에게 말했어. "내가 집을 찾고 있는데 기억이 안 나서 찾지를 못하고 있네. 이제는 늙고 힘들어서 더는 못 가겠고. 보아하니 여기도 멀쩡한 사람 사는 곳 같진 않으니, 나도 같이 삽시다."


팥쥐는 확 짜증이 났어. 할머니에게 소리쳤어. "어후 냄새! 누구 마음대로 같이 살아! 여기 주인 있는 집이야! 내 집이라고! 당장 꺼져!" 그러자 할머니는 리어카에 있던 지팡이를 꺼내 들어 팥쥐를 마구 때리며, 말했어. "어디 어른한테! 버르장머리 없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무슨 말버릇이야! 가서 물이나 떠와!" 할머니에게 실컷 얻어맞은 팥쥐는 엉엉 울며 물을 떠 왔고, 어쩔 수 없이 둘은 같이 살게 됐어.


사실 그 할머니는 호박마차를 타고 사라졌던 팥쥐 엄마였어. 욕심쟁이 팥쥐 엄마의 눈에만 호박마차로 보였던 거고 처음부터 리어카였던 거지. 백설공주 엄마가 팥쥐 엄마를 그 리어카에 실어서 쓰레기 매립지로 날려 보냈던 건데, 거기서 나와 평생을 떠돌아다닌 거야. 성을 찾으려고.


하지만 아무리 돌고 돌아도 찾을 수 없었지. 성 앞을 지나치는데도 팥쥐 엄마 눈에는 성이 보이지 않았어. 백설공주 엄마가 절대 돌아올 수 없도록 마법을 걸어 놨거든. 팥쥐와 팥쥐 엄마는 서로의 욕심 때문에 성도 잊고, 서로가 모녀지간이라는 사실까지 잊은 채, 자기들 천성대로 서로를 끊임없이 괴롭히고 괴롭힘 당하면서 헤어지지 못하고 함께 살았어.


당연히 백설 공주는 행복하게 살았지.

힘든 날이 아주 없었던 건 아닌데, 엄마에게 마법 훈련도 받고, 7명의 쪼끄미 쫄병들과 친구도 되어서 외롭지 않았어. 그리고 모두가 떠나고 혼자 남았을 때도 엄마와 쪼끄미 친구들과의 추억을 떠올리며 당당하고 굳세게 아주 잘 살았어. 자기만의 행복을 만들고, 그것들을 누리면서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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