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언제부터 수학을 잘했어요?”
수학을 전공했다면 종종 그렇게들 물어봐요. 어릴 때부터 잘했어요? 좋아했어요? 어떻게 했어요?
글쎄요. 수학을 잘하는 게 아닌 건 확실하지만 좋아하게 된 계기는 있었던 것 같아요.
학습지를 풀었거든요. 매주마다 선생님이 오셔서 스테이플러로 고정된 문제가 가득한 학습지를 주고 가시고, 한 주간 열심히 풀고 나면 함께 풀이하면서 알려주시는 그런 수업 말이에요.
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한 번은 더 고학년의 문제집을 제게 잘 못 주고 가셨던 거예요. 그것도 모르고 저는 제 나름의 방식으로 그것을 풀었지요.
무슨 내용인지, 어떻게 풀었는지도 잘 기억나지는 않아요. 그런데, 그 선생님의 말씀은 기억나더라고요.
“이렇게 생각할 수 있구나? 정답은 아닌데, 그래도 네가 생각을 이어간 아이디어가 참 좋구나. 그렇게 자신만의 방법을 만들어 보렴.”
이후 저는 수학을 공부하면서 제 방법을 만들었어요. 용어도 모르고, 개념도 잘 몰랐지만, 문제를 풀어보면서 말이 되게 식을 연결해 보고, 나름의 방법과 규칙을 논리라는 기본 틀에 맞춰서 전개했었지요.
그렇게 하나, 둘 문제가 풀어지고, 그렇게 내 방법이 된다는 성취감이 형성되면서 수학에 재미를 붙이게 되었어요. 물론, 나중에 교사가 되어서, 아이들에게 수학을 가르치기 위해서 그때 내가 모르고 공부했던 공식, 용어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야 했지만요.
최근에 창업을 했어요.
제조업을 하시던 부모님의 일에 기초해서 판로를 개척하는 일이라고 할까요?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기초부터 차근차근 쌓아가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그런데, 그런 신중함이 가끔은 더 느리게 만들고, 가끔은 더 날카로운 신경을 만드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정석은 무엇인가? 정도는 무엇인가?
정답을 찾기 위한 신중함을 핑계로 오히려 더 느리게 움직이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거든요. 그와 동시에 학창 시절 수학공부가 생각났던 것 같아요.
수학 문제를 풀이하면서 저는 정석이 무엇인가? 정도가 무엇인가? 어떻게 바른 풀이로 접근하는가? 에 대한 고민은 하지 않았거든요. 말 그대로 자유롭게 생각했고, 자유롭게 접근했지요. 물론, 그런 자유로운 생각 또한 문제를 만든 사람의 의도에 따라서 움직이기는 했지만, 가끔은 문제를 만든 사람의 의도와 다르게 문제를 해결했을 때의 그 성취감이란.
어쩌면 저는 정답을 찾았기에 수학을 공부했던 게 아니라 성취감을 느꼈기에 수학을 공부했던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어요.
교사가 되고 아이들에게 수학을 가르치면서 안타까웠던 건, 틀리는 게 두려워서 시도도 못하는 아이들이었어요.
문제에 접근하는 방법은 다양한데, 마치 그 문제를 풀기 위해서 정확한 열쇠를 찾아야 하는 것처럼, 그렇게 고민하다가 결국은 아무런 도입도 못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거든요. 반면, 문제의 접근법은 몰라도 혼자서 이런저런 방법으로 시도하며 단서를 풀어가다가 답을 찾는 아이들도 종종 있었지요.
누가 수학을 더 재미있게 했을까요?
정답을 찾는 것에 너무 혈안이 된 아이들보다는, 자신만의 접근법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논리를 펼쳐서 성취감을 획득한 아이들이었어요. 그런 아이들은 시도와 실패 속에서 만들어지는 시행착오를 두려워하지 않았거든요.
아직은 어울리는 단어가 아니지만, 사업이라는 문제를 풀어가고 있어요.
문득, 제가 너무 정답에 연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꼭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말이에요.
가끔은 그냥 버려두려고요.
가끔은, 너무 개입하며 고민에 고민을 더하면서 정답을 찾는 것에 연연하지 않으려고요.
가끔은, 그냥 버려두고 일이 자유롭게 진행되는 과정을 살피면서 자유롭고 유연한 사고로 접근하는 연습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몸에 힘이 빠지면 잘 다치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저도 그런 연습을 하려고요.
힘을 빼고,
긴장을 풀어주면서,
자연스럽게 일이 변하는 모습을 관찰하며,
그 가운데 사고의 유연함을 찾아야지요.
결국. 무엇을 하든.
우린 행복을 추구하기에 하는 것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