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어요.
아니, 정기적으로 만나는 친구예요.
저녁을 먹기에는 늦었고, 그렇다고 차를 마시기에는 어정쩡해서, 인근에서 가볍게 맥주 한 잔을 나누며 이야기를 했어요.
그 친구가 하는 사업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제 일의 진행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지요.
평생을 자식을 보면서 살아오셨던, 어느덧 노인이 된 어른에 대한 이야기를 말이에요.
그 친구는 부모님, 아니, 어머님께 죄송함이 많았어요.
일찍이 아버지께서 떠나시고, 어머니께서 가족을 모두 양육하셨거든요.
친구는 그런 어머니께 잘해 드리고 싶었어요. 그러기 위해서 빨리 성공하고 싶었고, 실제로 성공이라는 문턱에 가까이 갔었어요. 그리고 어느 순간, 영광이 손에 잡힌다고 생각했을 때, 그것이 연기처럼 떠나게 되었어요. 연기처럼 떠난 성공은, 그저 존재했다가 사라진 신기루가 아니라, 실체를 보여주면서 투자했던 모든 것을 빼앗아 갔어요.
연기보다 더 나쁜 존재였고, 신기루보다 더 영향력 있는 증발이었어요.
제 친구는 그럼에도 그런 어려움을 이겨낸 힘 있는 녀석이에요. 강한 사람이지요. 그렇지만, 성공이 떠나가며 만든 폐허를 다시 복구하는 과정에서, 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았고, 어머니는 어느덧 인생의 어느 후반부를 바라보시고 있음을 알게 되었지요.
그런 모습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지요.
그런데 사람 마음이 참 이상해요. 잘해 드려야지 하면서도, 어머니와 가까이 있으면, 걱정과 염려 어딘가에서 나오는 이야기가 잔소리처럼 들려오고, 자식에 대한 사랑이 간섭으로 느껴지는 순간이 많더라고요.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습관적으로 툭툭거리고, 지나고 돌아오면 다시 마음이 아프고.
저도 그렇거든요.
부모님과 함께 일을 하면서 자주 그런 마음을 느껴요.
걱정과 염려가 잔소리로 들리고, 간섭으로 다가오고, 가벼운 말이 비수처럼 다가오기도 하지요.
간섭이 없으면 무관심으로 느껴지고, 관심을 두면 간섭처럼 느껴지고.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저도 모르게 날카로움을 느끼고 말이에요.
어디서부터 마음이 잘 못 된 건지는 모르지만, 이상하게 자주 의견 충돌도 일어나고요.
친구와 이야기를 했어요.
참, 힘든 거리라고 말이지요.
부모님과의 의견 충돌에서 말이에요.
부모님께서 언성을 높일 때 자식의 언성이 높아져도 시간이 지나면 기분이 좋지 않고, 부모님께서 언성이 높아질 때, 자식이 참고 들어도 그 나름 기분이 좋지 않고, 자식의 의견이 강할 때, 부모가 그냥 그것을 수용해도 기분이 좋지 않고 말이에요.
그건 자식만이 느끼는 기분이 아니라 부모 역시 동일할 것 같아요.
가족.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 했던 존재지만,
때로는 내 인생 최대의 걸림돌이 될 수도 있고,
때로는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내 편이 될 수도 있고,
때로는 유일한 안식처가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가장 지옥 같은 환경의 주인이기도 하고요.
어려워요.
자식이 부모를 대하는 것도 어렵지만,
부모가 자식을 양육하기도 어렵지요.
가족이라서 어려운 그런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생각을 했어요.
가족이 가장 좋으면서 가장 어려운 이유는,
가장 가깝다는 이유로 가장 소홀하기에 그런 것 아닐까 하는 생각 말이에요.
가깝다는 핑계로 온전하게 소통하지 않으니, 가깝다고 느끼지만 어쩌면 가장 멀리 있는 존재가 될 수도 있거든요.
가까우니 나를 이해하겠지라고 생각하지만, 가깝기에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거든요.
저는 요즘 아이에게 그런 이야기를 자주 하고 있어요.
가까우니까 더 존대해야 하고, 친하니까 더 조심해야 한다고 말이에요.
지식은 배우면서 자랐는데,
지혜를 배우지 못하고 자랐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가족이라는 기본 구성원이 소통하는 방법을 알게 된다면, 사회는 조금은 더 건강하게 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