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표, 32일
비가 그렇게나 오더라고요.
아이와 도서관에 가려 했는데, 비가 많이 와서 그런지 집콕을 선택하게 되었어요.
뭐 할까? 고민하다가, 아이와 함께 영화를 봤어요.
자동차를 좋아하는 아이에게 딱 어울리는 영화.
트랜스포머 1편.
그 영화를 처음 봤을 때가 기억나더라고요. 영화를 보면서 자동차가 변신하고, 비행기가 변신하고, 거대한 로봇이 움직이는 그래픽에 매료되어, 집에 오는 길 내 눈에 보이는 모든 차들이 어쩌면 로봇으로 변할 수 있는 것 아닐까 하던 두근거림 말이에요.
아이에게도 그런 느낌이 전달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지요.
그렇게 영화를 봤어요.
그런데 말이에요.
영화를 보면서, 그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더라고요.
미국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상. 미국 우월주의.
물론, 이전에도 그런 이야기는 많았지만 트랜스포머라는 영화를 처음 봤던 시기에는 그런 생각보다는 그저 화려한 그래픽에 눈이 가서 다른 건 보이지 않았었나 봐요.
생각해 보면 그런 게 많아요.
보이는 것이 세상의 전부이고, 보이는 것으로 세상을 판단하는 사람들. 그런 가치들 말이에요.
어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그저 멍하게 시간을 때우다가 잠들었지요.
그렇게 힘이 없더라고요.
부모님과 일을 하면서 그런 경험을 많이 해요.
아니, 그런 상황에만 노출되어 있어요.
교직에 있으면서 경제적인 이득보다는 정신적인 성취, 만족감, 뭐 그런 정서적인 부분이 삶에 많은 영향을 줬거든요. 사실, 교사라는 직업이 그래요. 아이들과 호흡이 잘 맞으면 참 즐겁고 행복하거든요. 일이 쉽다는 뜻은 아니지만, 노력하고 고민해서 아이들이 긍정적으로 변하는 모습을 본다면 그동안의 수고가 모두 보상받는 느낌을 얻거든요.
따로 계산하지 않아도 정해진 급여는 나오는 것이고, 시간이 지나면서 연차가 쌓이면 급여는 조금씩이지만 올라가거든요. 물론, 그 급여의 폭이 큰 것은 아니지만 말이에요.
그런데, 부모님과 일을 하면서는 그게 아니더라고요.
일이 힘들고 어렵다기보다는, 일에 있어서 제가 추구하는 가치와 부모님께서 추구하는 가치의 차이라고 할까요?
제 경우는 일이 진행되면서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힘을 모아서 풀어내면 되고, 성과도 중요하지만 함께 하는 사람들의 관계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 그리고 팀이 된 우리가 무엇을 이루어가는 성취의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부모님의 경우는 과거부터 일을 하던 방식을 고수하다 보니 그렇지 않거든요.
문제가 발생하면 그것을 한 사람에게 이유를 탓하게 되고, 수익이 발생하더라도 그것이 불편하면 자르고, 변화로 인한 성취보다는 이전의 습관이 유지되는 것을 더 선호하시거든요.
나쁘다는 의미는 아니에요.
기존의 제조업은 그랬으니까요.
어제와 같은 상품을 만들고, 작년과 같은 품질의 상품을 만들어야 하고. 문제가 발생하면 원인을 지적하고 다시 그러지 않게 해야 했으니까요.
그런 과거부터 일을 대하는 습관이 지금까지 이어진 것이고, 그런 습관이 가족에게 그대로 전달되었으니까요. 그분들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삶을 살아오면서 그렇게 형성된 것이지요.
저는 그 모습을 배우고 있고요.
이런 모습은 좋은 것이니 수용하고, 이런 모습은 나쁜 것이니 고쳐야 하고.
문제는.
사람은 이성적이지 않다는 것이에요.
비논리적이지요.
식사 후 잠깐의 산책, 일과 후 산책, 한 주간에 3번 정도는 근력운동. 등등.
아무리 계획을 잡아도, 그 순간의 피로와, 그 순간의 정신적 우울감 등등의 이유로 이성적으로 아무리 좋은 선택이라 하더라도 행하지 않고, 편리를 찾는 게 인간의 본성이거든요.
저 또한 그렇다는 것이지요.
부모님과 함께 하면서, 좋은 것은 배우고, 나쁜 것은 나중에 그러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한다면 이성적으로 어떻게 하더라도 제게 이득이 되는 것이니 충분히 수용할 수 있어야 하는데, 머리로 되지만 마음으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런 이유로,
쉼표. 어제는 하루를 쉬어갔어요.
오늘 아이와 영화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영화를 보면서 그때는 못 봤던 것을 지금은 볼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내가 성장한 이유도 있을 것이고, 식견의 변화도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마치, 어린 시절 읽던 동화책을 성인이 되어 다시 읽으며 삶의 원리를 깨닫게 되는 것처럼 말이지요.
부모님과 일을 하면서, 온전히 가족하고만 일을 하면서 경험하지 않아야 할 갈등도 많이 경험하게 되고, 저 스스로를 노출시키고 싶지 않은 정서적 영역에 저를 노출시키는 경우도 많이 생기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이것도 지금의 식견이기에 그렇게 느끼는 것일 수도 있겠지요? 시간이 지나고, 조금 더 성장하고, 제가 볼 수 있는 게 더 많아지면 지금의 상황을 다르게 해석할 수 있게 되겠지요?
생각해 보면 말이에요.
저는 항상 제가 다 컸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 등등 말이에요.
언제든 그 시점의 저는 제가 잘 알고, 잘하고 있고, 잘 판단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어른이 되고, 교사가 되어서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 시절이 제 모습이 보이더라고요. 나도 그때는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나도 그때는 내가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나도 그때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며, 논리적이고, 감성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마치 저와 상담하는 그 아이들처럼 말이지요.
어쩌면 지금도 그런 것 아닐까 싶어요.
글을 쓰는 지금의 시점에서 저는, 제가 잘 알고 있고, 뛰어난 역량이 있고, 많은 것을 할 수 있는데라고 생각하고 있을 수도 있지요.
그래서 답답함이 많고, 불만이 많고, 힘들어하고 말이에요.
시간이 지나서 지금보다 더 성장하고 식견이 넓어지면, 그때가 되어서 지금을 돌아보면 지금은 보이지 않은 무엇들이 그때는 보이게 될까요? 그때는 지금보다는 조금 넓은 눈으로 세상과 삶을 볼 수 있게 될까요?
지금은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그때는 보이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