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표 34번째
아버지께서 수술을 받아야 하셨어요.
그렇게 큰 수술은 아니라고 했지만, 대학병원에서 며칠 입원을 하셔야 했지요.
8년을 다니던 직장에서, 처음으로 연차를 신청했습니다.
병원 입원수속, 잔잔한 심부름, 퇴원수속 등등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코로나 기간이라서, 그 기간에는 수업도 없었고 학교 업무에 지장을 줄 일도 없었지요.
그런데.
거절당했습니다.
한 번 더 생각해 보고 오라고 하더라고요.
돌아가서 생각했습니다.
가정에 일이 있어서 연차를 쓴다는 게 잘 못 된 일인가?
무엇을 다시 생각하라는 말인가?
하루가 지나고, 다시 이야기를 했습니다.
정말 생각도 못했던 말이 나오더라고요.
“네가 간다고 뭐가 달라지나?”
그 말을 듣고 순간 필름이 끊어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었지요.
얼마나 그렇게 있었는지 모르지만, 제가 가만히 있으니 힐끔 저를 보더니 그러면 연차를 쓰라고 하더군요.
연차를 쓰면서도 마음이 좋지 않더군요.
제 기준에서 직장이란 제가 희생당하고 부속화 되기 위한 공간이 아니라, 일을 통해서 사회에서 내가 내 가정을 지킬 힘을 만들어가는 공간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 직장이라는 공간이 정작 내 가정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내가 그곳에 가지 못하게 한다는 것에 직장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게 된 것 같았어요.
아마, 그때부터로 기억합니다.
함께 정을 나누던 학교라는 조직에서 나는 그저 부속이고, 어떤 교감은 존재하지 않으며 그 관계를 계속 유지할 필요가 없다고 느낀 것은 말이에요.
그 일이 있고, 1년을 더 지내고 학교를 나왔군요.
“당신은 우리 가족이니까..”
라는 말을 듣고
“아니요, 저는 이제 그만하려 합니다.”
라는 말을 했었지요.
아마, 그때 이미 마음이 떠난 것 같았어요.
성을 쌓기는 힘들지만 무너지는 건 순간이라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학교라는 조직도 제게는 그랬던 것 같아요.
오랜 시간 신뢰를 만들고 쌓았지만, 작은 몇몇의 말로 인해서 쌓인 탑은 한순간에 무너지게 되었지요.
말.
가장 하기 쉬운 게 말이고, 가장 위험한 게 말이라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시간과 정성을 들여서 신뢰를 만들고, 순간의 말로 그것을 무너뜨리는 경우가 많지요.
그냥.
인터넷의 어떤 글을 보다가, 문득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그냥.
그 일을 두서없이 적었네요.
얼마나 글을 쓰고, 써야지,
마음에 남겨진 무거움들이 모두 털어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