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를 꿈꾼다면.
열정을 가진 선배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어려움이 생기면, 문제를 마주하면,
먼저 연락드려서 도움을 청하는 어른이고,
어떤 요청에도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어쩌면 부모 이상으로 도움을 주는 어른입니다.
교직의 시작점에서 그 어른을 만났고,
교직을 하면서 그분의 행동과 선택을 항상 마음에 담고 있었으며,
판단의 기준이 그분이었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그분이 퇴직을 하시던 해에.
제 길도 사라진다는 생각에,
저 또한 교직을 그만하겠다는 선택을 하게 되었고요.
오늘.
그분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본인도 이타적인 삶을 즐기고 있으며,
때문에 교직을 잘 보냈다는 이야기를 하시면서
자신을 누구보다 사랑하며 키워주신 부모님께 감사한다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곧, 70을 바라보는 어른께서.
자신을 사랑하며 키워준 부모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회상하며 눈을 붉히시더군요.
순간 떠오른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기적으로 자란 어른들.
베풀지 못하는 어른들.
욕심이 가득한 사람들.
그들은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사람들일까요?
“내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났어요? 왜 다들 나보고 그러는데요?”
부모의 이혼, 그리고 아버지께 양육비를 받고, 어머니와 살았지만 방치된 삶을 살다가 전학을 왔던 A의 말이었습니다.
양육비 명목으로 아이를 맡았지만, 어머니는 하나뿐인 아들에게 그렇게 정을 주지 않았어요.
며칠간 아이가 집에 들어오지 않아도 어머니는 신경 쓰지 않았어요. 집에 먹을 음식이 없어서 아이가 굶어도, 엄마는 집에 들어오지 않았지요.
이런 상황을 알게 된 아빠는 아이를 데리고 왔어요.
저는 담임으로 아이를 만나게 되었고, 상담을 하던 중 아이가 뱉은 말이었어요.
너무 안타까웠어요. 아이에게 무슨 죄가 있는지.
무책임한 부모 때문에 아이는 왜 이런 어려움을 겪어야 했는지.
그렇지만.
오랜 시간 교육현장에서 정말 많은 아이들을 만나다 보면, 생각보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굳건하게 버티는 아이들을 종종 마주하게 되거든요.
의문이 생겼어요.
사랑받지 못한 환경에서 자라지만,
잘 되는 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아이들은 무엇이 다른가?
반대로.
사랑받는 환경에서 자라지만,
이기적으로 자라는 아이와, 이타적으로 자라는 사람은 무엇이 다른가?
정답을 정의하기는 어렵겠지요.
그렇지만.
그런 생각은 들었어요.
자신에게 주어진 여건을 저항 없이 수용하는 사람과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사람의 차이라고 할까요?
내 환경이 좋지 않기 때문에 난 그런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어라고 생각하는 사람과, 내 환경이 좋지 않기 때문에 나는 어떤 부분의 돌파구를 찾고, 그것을 위해서 노력해야 해.라는 사람의 차이가 아닐까 생각해 봤어요.
글쎄요.
저의 고정관념이 될 수도 있겠지만요.
저는 그런 생각을 하거든요.
배움은 삶의 마찰력을 만드는 힘이라는 생각을 말이에요.
본능적으로 삶은 좋은 방향이든 나쁜 방향이든 흘러가게 되지만, 배움이라는 것은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삶을 주의 깊이 살피면서 혹여 나쁜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게 중심을 잡아주고, 나쁜 방향으로 흘러간다면 주의 깊이 살피면서 좋은 방향으로 조금씩 방향을 틀어가게 하는 돛이라는 생각을 하거든요.
때문에 배움은.
어른이고, 아이고 할 것 없이 우리가 쉼 없이 추구해야 하는 가치라는 생각을 하지요.
지식 말고 배움 말이에요.
어쩌면 지혜라는 단어가 더욱 어울리는 그것 말이에요. 그것을 조금 더 포괄적으로 저는 배움이라고 표현하고 싶더라고요.
배움.
우리의 삶을 조금은 더 좋게 만드는, 어쩌면 가장 기본적이고 가장 근본적으로 추구해야 할 가치가 아닐까요?
배운 사람은 다른 삶을 살아갈 힘이 있습니다.
아니, 배우는 사람은 다른 삶을 영위할 자격이 있다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