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톤 Sep 01. 2022

기억에도 댐을 세울 수 있다면

언제까지나 그 자리에 있어주길

밥보다 잠이 중요했던 열여덟의 나는 종종 저녁식사를 거르고 기숙사에 들어가서 30분 정도 자곤 했다. 그날은 방에 나 혼자였고, 불을 끄고 안대로 눈을 덮었다.


이후의 기억은 드문드문 끊겨있다. 룸메이트 한 명이 세탁된 옷가지를 들고 벌컥 문을 열었다가 내가 자는 걸 보고 다시 나가는 듯한 소리를 들었다. 아직 잠들지 않았다고 미처 반응하지 못하고 다시 눈을 감았다. 의식이 들었을 때는 어둠 속에서 희미한 빛이 보이고 무언가를 질겅질겅 씹는 소리가 났다.


육포인가? 고기를 좋아하지 않는 나와 달리 룸메이트 둘은 종종 맛있게 육포를 먹곤 했다. 몸을 일으켜서 어기적 어기적 옷장 너머 룸메이트의 책상으로 다가갔다. 다짜고짜 내 앞에 내밀어진 나무꼬치 하나.


"떡볶이 먹어."


그렇다. 둘은 떡볶이를 먹고 있었다. 대한민국 학생들의 영원한 1순위 간식, 떡볶이.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다는 분도 있지만 사실 나는 떡볶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매운걸 못 먹는 게 첫 번째 이유이고, 원래 씹는 속도가 느린 편인데 가래떡은 오래오래 씹어야 해서 먹다 보면 턱이 아파지는 게 두 번째 이유이다. 아니, 다 떠나서 그냥 떡볶이라는 음식이 맛있게 다가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날 먹은 떡볶이는 진심으로, 맛있었다. 멍하게 나무꼬치를 받아 들고 비닐봉지에 담긴 떡볶이를 바라보니 그 옆에는 기름에 젖은 튀김 봉투와 귤 한 봉지까지 놓여 있었다. 떡볶이 프랜차이즈들이 경쟁하는 세상 속에서 오랜만에 맛본 시장 떡볶이였다. 내 입맛에는 너무 매웠는데도 맛있었다. 매워서 눈물이 그렁그렁한 나에게 우유를 내밀어준 룸메이트가 있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훈훈한 시장 인심 덕분에 셋이서 떡볶이 1인분을 나눠먹고도 배가 불렀다. 기숙사 반입 금지인 떡볶이와 튀김의 잔해를 후다닥 치우고, 유일하게 합법(?)인 귤을 만지작거리며 우리는 낄낄거렸다. 그날의 기억은 룸메이트가 한 입 베어문 '왕'새우튀김 사진 한 장에 고이 담겨있다.


한 학기마다 룸메이트가 바뀌고, 매번 좋은 친구들을 만났지만 나는 유독 이때의 방을 좋아했다. 2021년 늦여름부터 가을, 겨울을 거치며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때때로 밤을 새웠다. 기숙사에서의 마지막 날에는 새벽 세 시까지 대화를 나누고 게임을 했다. 침대에 눕고 곧이어 숨소리를 내며 잠든 룸메이트들과는 달리, 언제나 예민해서 잠드는데 오래 걸리는 나는 그날도 쉽게 잠들지 못했다. 박스 몇 개 속에 정리되어 버린 익숙한 풍경들을 바라보며, 나는 다시 몸을 일으키고 휴대폰 손전등을 켰다. 일기장에 두서없이 이런저런 글자들을 내뱉었다. 더 잘해줄걸, 더 챙겨줄걸, 왜 더 둥글게 대하지 못했을까,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할걸, 그리고


'나중에 지금 이 순간이 너무 많이 그리울 것 같다'


이 한 문장을 적는 순간 하천이 범람하듯 기억들이 떠밀려왔다. 중간고사가 끝나고 같이 노트북으로 영화를 보던 일, 작은 조각 케이크 위에서 포크 세 개가 부지런히 움직이던 일, 체험학습 전날 다 같이 얼굴 팩을 붙였던 일, 시험 전날 한 침대에 모여 문제를 풀던 일 등등.


이미 많이 흐려진 기억 속에서 저항 없이 떠내려가면서도 계속 뒤를 돌아보았다. 강물을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좋았던 순간들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기억에도 댐을 세울 수 있다면 나는 지금 이 순간에 당장 세울 텐데.


그 이후로 나는 '사진'이라는 댐을 하나씩 세웠다.


원래도 사진 찍는 걸 좋아했지만 그전까지는 최상의 순간만을 담았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사시사철 회색 후드집업을 입었고, 기숙사에서 대량으로 세탁된 생활복은 길이가 줄어들거나 이곳저곳 해지기 일쑤였다. 잠이 모자라 얼굴을 꾸미기도 귀찮은 매일매일은 단정함도 챙기기 어려웠다.


그런 나의 3년을 회색빛으로만 기억하고 싶지는 않아서 사복을 입을 기회가 생기면 나름 열심히 꾸몄다. 자연 속이든, 유명한 카페든 예쁜 공간들을 찾아다녔고 그 속에서 사진을 찍었다. 그 과정은 자연스럽지 않았다. 사진 속에서 나는 언제나 '적당히' 미소 짓고 있었고, 같은 장소에서 백여 장씩 찍은 후 가장 괜찮은 사진을 골라내는 피곤한 작업이 이어졌다. 내 친구들 중에는 사진 찍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친구들이 많아서 같이 찍은 사진보다 독사진이 점점 늘어났다.


사진이 '댐'이 된 이후로는 구도, 빛, 색감 전부 다 무시하고 찍었다. 나중에 이 사진을 보았을 때 내가 얼마나 행복했는지, 누구와 함께했고 무엇을 했는지 알 수 있다면 충분할 것 같았다. 이런 내 생각을 말했더니 친구들도 자신의 흔적은 남기겠다며 사진을 꼭 한 장씩은 같이 찍어 주었다.


그렇게 담은 사진 속 나는 편안해 보였다. 눈꼬리는 웃음을 머금은 채 가늘게 휘어졌고, 고르지 못한 토끼 이빨이 다 드러나게 활짝 웃었다. 인물 사진만 찍던 예전과는 달리 소소한 사진들도 하나 둘 쌓여갔다. 수업시간에 옆자리 친구가 노트에 끄적인 낙서, 가장 좋아하던 수업에서 책상 위로 빛이 들어오던 순간, 복도에서 오며 가며 친구들이 쥐여주던 작은 초콜릿들 모두 차곡차곡 카메라 속에 '찰칵' 소리와 함께 저장되었다.


이렇게 3년간 쌓아온 댐은 약 1,700개. 내 기억들이 너무 빨리 흘러가지 않도록 막아주기도 하지만, 힘들 때 기억을 꺼내볼 수도 있게 해 준다.


그때의 룸메이트들과는 올해 초에 또 한 번 사진을 찍었다. 졸업앨범 사진을 찍는 날에, 교복을 입고 운동장에서 함께한 사진. 셋이서 부둥켜안고 환하게 웃는 그 사진을 나는 이따금씩 꺼내보며, 그때의 행복을 빌려 오늘을 살아간다.

이전 11화 토요일 아침의 감자 수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