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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밭 여행에서 얻은 깨달음

by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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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 있어?"


"팀장된 지 이제 3년 차라 조만간 승진할 수 있는데, 이번에 어린 후배가 팀장이 됐어. "



친구의 목소리엔 억울함과 혼란이 섞여 있었다. 몇 년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고 했다. 그 당시에도 승진 대상자로 거론되던 동기 대신, 또 다른 어린 후배가 승진했다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의 수군거림이 이어졌고, 그 상황 속에서 친구는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감정을 혼자 삼키기가 더 힘들어진 모양이었다.



나는 이야기를 들으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했다. 위로의 말을 건넨다고 해서 속상함이 사라질 리 없었고, 그렇다고해서 그 상사의 의도를 내가 단정 지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말없이 눈밭 위를 걷기 시작했다.



눈 위에는 누군가가 남긴 발자국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아무도 밟지 않은 눈밭에 새겨진 흔적은 마치 작은 작품 같았다. 우리는 그 발자국을 따라 조심조심 사뿐사뿐 걸었다. 넘어질까 봐 신중하게 발을 내디디며, 길을 만들어준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때였다. 뒤에서 또다른 여행자들이 다가왔다. 그들은 우리가 걷고 있는 발자국을 신경 쓰지 않고, 눈밭을 자유롭게 걸어갔다. 발자국은 금세 흐트러졌고, 눈밭은 다시 엉망이 되었다. 나는 잠시 멈춰 그들을 바라았다. 그 순간, 친구가 다시 입을 열었다.




" 차장님 말이야. 혹시 나를 일부러 누르고 있는 걸까?"


"왜 그런 생각이 들어?"


"내가 다음 진급이 차장이거든. 그렇게되면 나는 차장님이랑 같아지는거잖아. 차장님 입장에선 어린 후배들을 빨리 승진시키는 게 더 유리할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럴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직이라는 곳은 때로는 논리와 공정함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사람마다 자신만의 계산이 있고, 그 계산이 때로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설마 그럴까?" 나는 대답 대신 질문으로 돌려주었다. 다시 걷기 시작하며, 나는 눈 위의 발자국을 떠올렸다. 대부분의 사람은 이미 만들어진 발자국을 따라 걷는다. 그것이 안전하고 익숙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 발자국을 무시하고 새로운 길을 만들어간다. 그 과정에서 발자국이 흐트러지고, 눈밭은 엉망이 될 수도 있다.



나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 있잖아...
그 차장님이 정말 그런 의도를 가졌든 아니든, 중요한 건 네가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인 것 같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데?"


" 너만의 발자국을 만들어봐. 누군가 그걸 따라올 수도 있고, 흐트러뜨릴 수도 있겠지만, 결국 중요한 건 네가 걸어가는 길이잖아. 남이 어떻게 행동하든, 네가 네 능력을 키우고 네 길을 만들어가면 되는 거야."


친구는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다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 내가 너무 얽매였던 것 같아. 차장이 뭘 하든, 내가 할 수 있는 걸 해야겠지."


”그럼! 주변에서 알아봐주는 사람들이 있잖아. “



눈이 멈춘 하늘 아래, 우리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눈밭 위에 새겨지는 우리의 발자국이, 언젠가 누군가에게 또 다른 길이 되어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2024년 12월

하얀 눈이 펑펑 내리던 어느 날,

친구와 함께 떠났던 서울 근교 여행지에서

잠시 잊고 있던 일상의 무게가 가벼워지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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