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영업종료
01. 영업종료
2024.7.1 월요일
어느덧 일년의 딱 절반이 지났다. 여느때처럼 출근한 나의 눈가가 오늘따라 유난히 더 퀭했다. 피곤으로 뻑뻑해진 눈을 꾹 감으며 사무실의 시원한 공기에 흐르는 땀방울을 날려보냈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잠시동안 마음껏 누리다 이내 뜨거운 커피를 잔에 가득 채워서 자리로 돌아오니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눌러둔 컴퓨터가 어느새 밝은 화면으로 나를 반겼다. 그야말로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시작된 일상, 문득 어제의 모든 것들이 그저 꿈같이 느껴졌다. 내 몸의 모든 감각이 낯설게 느껴지는, 현실감 없는 그 낯선 감각에 무심코 엄지손가락을 이빨로 깨어물었다. 엄마의 카페가 끝났다. 그 나지막한 한줄의 사실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아서 머릿속으로 계속해서 같은 질문을 되뇌었다. ‘정말 엄마가 이제 카페를 안한다고?’ 끝없이 이어지는 질문에 나는 푹신한 의자 등받이에 머리를 기대며 어제의 하루를 천천히 곱씹기 시작했다.
어제는 엄마의 카페의 마지막 영업일이었다. 카페가 팔리고 나서 조금씩 비워내던 카페를 어제는 남김없이 정리해야 했다. 넘겨주기로 한 최소한의 기구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물품을 정리해야 했는데 분명 며칠에 걸쳐 꽤나 많은 짐을 미리 정리했음에도 정말이지 짐들이 끝도 없이 나왔다. 그동안 정이 많이 든 단골손님들이 마지막 날이라고 찾아주신 덕분에 분에 넘치는 축하를 받았다. 아쉬움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일 정이 많이 든 손님들과 하루 종일 인사를 나누는 통에 더 정신없었던 우리는 마감시간이 다 되어서야 간신히 카페를 거의 비우는 데 성공했다. 이제 남은 것은 냉장고에 든 우유 10통과 약간의 소스들 그리고 양손 가득 받은 꽃다발과 선물들뿐이었다. 마지막 영업일인 일요일에는 비가 왔는데 선선한 날씨 탓에 이전 주말까지만 해도 불티나게 팔린 스무디 종류가 거의 나가지 않았다. 덕분에 지난 주 우유가 부족해 급히 마트에 파견되었던 것과 다르게 고스란히 남은 우유는 당근마켓의 판매글을 통해 새로운 주인을 찾아갔다. 남은 우유 덕분에 처음 올려본 판매글은 시간도 늦은 터라 누가 사갈까 싶었다. 다행이도 첫 판매를 축하한다는 문구가 뜨기 무섭게 바로 구매를 원한다는 메세지 몇개가 날라왔다. 우리 카페를 사랑해주던 단골 손님이 구매자가 되어 부리나케 달려오셨다. 무려 우리가 막 이 카페를 인수했을 때부터 찾아주셨던 분으로 이제는 기억도 잘 나지 않는 그 당시 같은 건물에 있던 교회 이야기를 엄마와 나누었다. 엄마와 옛날 옛적 이야기를 꽃피우던 구매자 손님은 아쉬움에 마지막 커피를 한 잔씩 마시고 가려고 가족들을 모두 데려왔다. 마지막까지 참 운이 좋았다 싶어 감사함을 담아 팔지 못한 새 상품들까지 넉넉하게 얹어드리던 때 마침 아마 마지막 손님일 기다리던 단골 손님이 카페를 방문했다.
"그동안 저희 엄마 도와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괜찮을 줄 알았는데. 막상 그 한 문장을 입 밖으로 내뱉고 나니 목소리의 끝이 형편없이 떨려왔다. '엄마도 안 오는데 주책이다 정말' 울컥한 목소리를 티내지 않기 위해 괜시리 목을 가다듬은 내가 그 한 마디를 황급히 마치며 따로 챙겨두었던 샌드위치와 사과쥬스를 방송국 아저씨에게 내밀었다. 그 손님을 엄마와 나는 종종 '방송국 아저씨'라고 부르고는 했다. 말 그대로 방송국에서 일하시는 분으로 퇴근 후 거의 매일 엄마 카페에 들려 혼자만의 휴식 시간을 즐기다 가고는 하셨다. 밤 늦게까지 혼자 일하는 엄마가 늘 걱정이었는데 든든하게 자리를 지켜주실 뿐만 아니라 혼자 마감을 하는 엄마를 위해 카페 야외에 있는 테이블을 마감시간이 되면 소리없이 정리해주고 떠나시고는 했다. 가끔 엄마를 대신해 내가 카페 마감을 도와주던 날에도 괜찮다는 만류에 불구하고 어김없이 정리를 해주시고 소리없이 떠나시고는 했다. 비가 많이 내리던 여름밤, 우산까지 챙겨주고 떠나셨던 날의 감사함이 아직도 생생했다. 그 작은 도움 하나가 혼자 마감할 때 얼마나 든든하던지. 늘 감사했던 오랜 단골손님인 방송국 아저씨가 평소 잔잔하던 표정과 다르게 오늘은 밝게 웃었다. 건네받은 샌드위치에 감동어린 표정을, 안 오시는 줄 알고 걱정했다며 너스레를 떠는 엄마에게 진한 아쉬움이 묻어나는 미소를 지으며 방송국 아저씨는 이제 힐링할 장소가 없어졌다고 그렇게 아쉬움을 털어내셨다. 나는 그 두 사람이 인사를 나누는 장면을 두 걸음 뒤에서 물끄러미 지켜보다 먹먹해진 마음을 달래며 홀로 포스기 앞에 섰다. 그렇게 내가 마지막 날의 영업종료 버튼을 눌렀다.
“그동안 고생하셨습니다.”
우리 카페는 건물 윗층에 있는 어린이발달센터의 사장님이 이어받게 되었다. 바리스타 수업으로 커피만들기 경험도 시켜주고 싶고 학원에 방문하시는 학부모님과 아이들에게 커피를 대접하고 싶다는 사장님께서는 새로운 카페의 시작을 위해 이곳저곳을 뜯어 고치기로 결심하셨다. 당장 내일부터 시작될 공사에 마지막 모습을 점검을 하러 온 새로운 사장님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엄마의 낡은 지갑에 오래도록 달려있었던 열쇠를 이어받았다. 원래부터 마치 그 지갑의 하나의 부품처럼 걸려있었던 열쇠를 어떻게 빼야 할지 몰라 허둥대던 엄마를 대신해 내가 무사히 열쇠와 지갑을 분리했다. 그렇게 내 손을 떠난 열쇠가 곧장 새로운 주인의 주머니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두 눈에 고스란히 담아내던 엄마는 어딘지 모르게 허전해진 낡은 분홍 지갑을 손에 꼭 쥐고 나와 함께 카페를 나왔다.
아직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기 전이라 밤에는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카페에서 열심히 일하느라 땀에 젖어 얼굴에 달라붙어 있던 머리칼이 시원하게 불어오는 밤바람에 기분 좋게 흩날렸다. 횡단보도 앞에 선 우리는 신호등이 바뀌길 기다리면서 그렇게 뺨을 스치는 선선한 바람을 제대로 만끽했다. 하루를 카페 안에서 고된 노동을 하며 보낸 후 엄마와 함께 하는 퇴근길에 바라본 청명한 밤하늘의 유난히도 밝은 달빛이 우리의 피곤한 어깨 위로 사뿐히 내려앉았다. 덕분에 양손 가득 들고 있던 짐이 무거웠음에도 금새 집에 도착했다. 가족 전체가 카페에 붙잡혀있던터라 하루종일 혼자 있었던 강아지가 꼬리를 세차게 흔들며 반겨주었다. 하얗고 보드라운 털을 마구 흐트러트리며 강아지에게도 카페의 영업종료 소식을 전했다. 카페까지 산책겸 엄마를 종종 함께 마중나갔던 우리 강아지도 아마 많이 아쉽지 않을까 그리 상상해보며 내가 낄낄거렸다. 지친 몸을 이끌고 그러나 조금은 상기된 얼굴로 엄마와 나 그리고 먼저 짐을 가지고 집에 와있던 아빠까지 서로가 서로의 고생을 치하했다. 마지막 영업까지 정말 고생했다며 이제 자유인이 된 엄마와 하고 싶은 것이 많다며 엄마의 자유를 애써 밝은 목소리로 축하하던 나는 그대로 소파 위로 쓰러졌다. 물을 먹어 축 늘어진 빨랫감마냥 쇼파 위에 널부러져 무거워진 다리에 휴식을 선사하고 있으려니 거실 한쪽의 아직 정리하지 못한 채 쌓여있는 짐더미가 눈에 들어왔다. 무질서하게 쌓여져 있는 짐 무더기의 가장 윗쪽으로 엄마가 고이 챙겨둔 영업신고증과 사업자등록증이 올려져있었다. 스프링처럼 튕겨져나간 나는 두 서류가 담긴 파일을 양 손에 집어 들었다. "엄마 그래도 살면서 사업도 해봤네. 엄마가 우리 집의 유일한 사업가야!” 라는 말과 함께 이것도 추억이라며 사진을 찍기 위해 예쁜 배경을 찾아 거실 곳곳을 돌아다녔다. 그나마 깔끔한 벽 앞에서 핸드폰 카메라 앱을 열고 렌즈 앞에 서류를 들이밀었다. 살면서 몇번이나 다시 들춰볼지 모르는 사진인 것을 안다. 그러나 무려 첫 영업의 시작을 알렸던 영업신고증 아닌가! 엄마는 그런 나를 보며 그걸 뭘 사진을 찍냐며 한 소리를 했다. 내일 필요하다며 다시 돌려달라는 서류들을 미련없이 엄마의 손에 들려보내며 손가락으로 액정 툭툭 건드렸다. 금새 밝아진 화면 속으로 ‘~에 따라 영업의 신고를 수리합니다.’는 어려운 법령과 영업 신고가 되었다는 문구 그리고 그 아래 선명하게 찍혀있는 숫자가 눈에 들어왔다. ‘2017년 4월 21일’ 우리가 그 카페를 시작한 게 벌써 8년하고도 2개월 살짝 넘는 시간이 지났구나. 머릿 속에서 착착 계산된 8년이라는 숫자가 너무 커서 그대로 훅 다가와 내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기 시작했다.
"엄마, 그동안 고생 많았어."
혼자 카페를 운영하며 고군분투해온 엄마의 8년의 세월을 생각하니 마음이 다시금 울렁거렸다. 카페 사장님하면 생각나는 이미지처럼 알바생을 두고 우아하게 커피를 판매하는 그런 모습이었으면 좋겠지만 실상 엄마는 홀로 카운터를 뛰어다니며 땀에 젖어 꼬불거리는 머리칼과 고단해보이는 얼굴로 매일을 말 그대로 ‘해냈다.’ 아침에 카페를 여는 시간부터 저녁에 카페를 닫을 때까지 창살 없는 감옥처럼 그곳에서 손님들을 맞이하고 한가할 때는 꾸벅거리며 지루함을 견디고 견디다 좁은 안쪽 공간에서 배고픔에 허겁지겁 끼니를 때웠다. 그렇게 해낸 8년의 시간이 마침내 오늘 그 끝을 맞이했다. 엄마가 앞으로 카페라는 좁은 공간에서 벗어나 어디든 갈 수 있고 또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이 새삼 사무치게 감사했다. 언니는 엄마가 한 평생 고생한 것이 너무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엄마의 이 작은 일상을 되찾기에 너무도 많은 시간과 가슴아픈 순간들이 흘렀다. 그동안 카페라는 장소에 묶여 50대였던 엄마가 60대가 될 때까지 8년이라는 시간을 고스란히 그곳에 바쳤다는 생각에 가슴이 절로 먹먹해졌다.
한 계절이 지나면 수많은 가게들이 사라진다. 그곳에 새롭게 생겨난 다음 가게들도 채 일년을 버티지 못하고 어느새 금방 또 다른 장소가 된다. ‘ 언제 없어졌대? 언제 여기가 미용실이 됐지?’ 라는 생각을 아마 다들 한번쯤 해보지 않았을까. 자영업의 길은 결코 쉽지 않았다. 동네에 새롭게 생기는 카페들에 걱정으로 잠들지 못하던 밤들을 아직 선명히 기억한다. 새롭게 공사하는 장소가 있으면 그곳을 지나치며 카페가 아니기를 진심으로 빌었다. 그러다 카페와 관련된 기계나 카페라는 문구를 발견하게 되면 우리는 둘 다 말을 잃었다. 그때 밀려오던 더 이상 견딜 수 없을것만 같은 그 절망감은 우리의 발목을 잡고 끝없는 바닥으로 한없이 끌어내렸다. 동네에 2층짜리 화려한 베이커리 카페가 들어서고 보이던 단골손님들이 몇 없어졌다며 담담한 목소리로 읊조리던 엄마의 음성과 표정은 며칠 밤을 내 꿈속을 악몽처럼 장악했다. 돌덩이를 올려둔듯 무거워진 마음까지 무서웠던 그 밤들의 기억이 시간이 꽤 흘렀음에도 선명하게 마음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카페를 하면서 다른 어려움도 수없이 많았지만 어쨌든 8년이라는 시간동안 한 동네에서 꿋꿋이 버텨왔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진심으로 엄마에게 존경한다고 말하고 싶다. 비록 대박이나고 돈을 많이 벌면서 성공적으로 버텨온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동네에서 꾸준히 찾아주시는 단골손님들을 계속 끌어오고 주말에 교회 손님들의 사랑을 받게 된 것은 모두 엄마의 노력덕분이었다. 엄마의 진심이었고 정성이었고 끈기와 절박함을 알고 보답해주신 많은 손님들덕에 8년간의 시간을 그곳에서 버텨왔다. 물론 엄마의 말처럼 혼자서는 할 수 없었던 일이다. 제 커리어를 쌓겠다는 욕심에 내 모든 것을 내팽겨치고 엄마를 도와주지는 못했지만 나는 한점의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모든 시간을 참아냈고 최선을 다했다. 또 느리지만 묵묵히 끝까지 지켜준 아빠와 멀리서 언제나 엄마를 걱정하고 응원해주는 언니 그리고 군복무 중에 짧은 휴가 기간 동안 조금이라도 짬을 내 카페를 도와주었던 기특한 막내동생까지. 엄마의 모든 시간을 바쳐 희생 위에 위태롭게 세워진 카페를 온 가족이 모두가 손을 잡고 지켜냈다. 여기에 응원해주시고 사랑해주셨던 많은 단골 손님들 덕분에 끝까지 버텨낼 수 있었다.
“엄마, 카페에서 행복한 기억이 더 많아? 아니면 힘든 기억이 더 많아?”
엄마는 이제 다 지난 일이니 행복한 추억으로만 모든 순간을 기억하고 싶다고 한다. 엄마는 카페에서 많이 행복했고 또 그만큼 많이 아팠다. 소중한 인연들을 만났고 많은 것을 이뤄냈으며 때로는 현실에 수없이 좌절하기도 했다. 여전히 퇴근길에 조금 더 먼길로 돌아 저녁거리를 들고 카페를 찾아가야 할 것 같다. 그러다 카운터에서 바쁘게 일하고 있던 엄마가 나를 발견하고는 활짝 웃으며 반겨줄 것만 같다. 언젠가는 희미해져 몇 점의 추억 조각으로 남을 뿐인 엄마와 함께 한 고생스러운 행복한 기억들이 사무치게 그리운 날이 오겠지. 종종 걸음으로 카페를 누비며 남겼을 엄마의 수만개의 발자취와 에어컨 바람에도 불구하고 송골송골 맺히던 구슬땀까지 엄마와 카페의 모든 순간을 이곳에 담고자 한다. 지금도 착실하게 흘러가고 있는 시간 속에서 희미해질 엄마의 순간들이 이곳에서 더디게 흘러가기를. 엄마처럼 힘든 시간을 홀로 묵묵히 견뎌내고 있는 그 모든 이들을 위해 어둠 속 한자락의 빛처럼 자그마한 위로가 되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