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난나야 Oct 23. 2024

후회없는 삶속에서의 무지함

무지와  용감  그리고 그 댓가

오늘 날씨는 땀이 약간 생길 정도로 따가웠습니다. 영호는 지인들과 미팅을 하고 이동하는데 덥다고 느꼈습니다. 요즘엔 기온이 떨어져서 덥다는 표현을 한다는 게 드문 일입니다. 영호는 가슴속의 답답함을 덜고 싶어 집으로 향해 가던 방향을 순간 다른 쪽으로 돌렸습니다. 가끔 가는 양재에 있는 곳에 가서 기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집이 편안하고 쉬고 싶은 공간이었는데 이제는 들어가기 싫은 곳이 되었습니다. 영호는 28년간 본인의 모든 것을 쏟아부었고 정성을 들였지만 결국 뜻대로 되지 않고 될 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한번 깨진 그릇은 다시 이어 붙이기도 힘들지만 제대로 된 완성품이 될 수 없음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영호는 남편을 생각하거나 얼굴을 보면 답답하고 거리감을 두고 멀어지고 싶어 졌습니다. 이전에는 이 정도로 싫음의 크기가 크지 않았는데 지금은 모든 것이 싫어졌습니다. 남편이란 남자는 글자 그대로 남의 편인 사람입니다. 남편은 본인이 가정적이지도 않고 가족을 돌볼 생각도 없는 것을 알면서 왜 결혼을 했을까? 28년 동안 몸도 시간도 온갖 정성을 바쳐온 영호의 삶은 무엇일까? 영호는 28년이 지난 어느 날 대화 중에 남편의 입에서 본인은 "가정적이지 않은 남자"라고 말할 때 표현은 안 했지만 큰 충격이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영호는 살아오는 동안 '남편이 왜 저럴까?' 하는 이해할 수 없는 수많은 상황 때마다 의아스럽고 까도 까도 알 수 없었습니다. 뿌연 안개가 자욱하고 선명하지 않아 부부로 살면서 베일에 싸인 듯 애매모호했던 것이 궁금했는데 이제야 답을 얻었습니다.

드디어 남편이란 사람에 대해 물음표로 남았던 것이  뭔지 알게 되었습니다. 영호는 그동안 남편이 있으나 없는 것과 같이 살았어야 했던 것을 알고 나니 너무나 허무하고 가슴이 아팠습니다. 몇 년 후면 60세가 된다는 사실에 영호는 너무나 당황스럽고 끔찍했습니다. 영호는 남편과 달리 28년 동안 가정을 지키겠다는 일념과 가족을 보호해야 한다는 책임감과 같은 희망고문에 빠져서 지나치게 미련을 갖고 집착해 온 시간들이 허공에 흩어지면서 서러웠습니다. 하지만 누군가의 지시가 아닌 영호가 스스로 선택하고 노력한 살이니 그만한 가치는 있고 두 딸이 있어 보람을 느꼈습니다. 영호는 잠시 생각했습니다. 5년 정도라도 일찍 결혼생활을 종지부 찍었다면 영호의 인생은 달랐을 것입니다. 만약 영호가 혼자라면 새로 남자를 만나는 것보다 자유인으로써 심적으로 편안한 생활을 했을 것입니다. 영호는 너무 먼 10년도 아닌 3년 전으로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남편과 다시 합가 하기 전으로만 돌아가도 좋을 것 같았습니다. 그 당시에 영호는 남편이 그전과 다르게 변하고 달라진 줄 알았습니다. 남편과 조금씩 소통이 되고 영호의 말에 남편이 귀를 기울여 들으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망을 느낄 때까지 그렇게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아주 짧은 시간뒤에 남편이 본연의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을 때부터 영호는 입을 막았습니다. 영호는 또 떠올려봅니다. 남편과 합가 하는 날, 모든 짐들을 챙겨서 옮겨야 하는데 남편은 준비성도 없었고 영호의 손길이 더 많이 갔습니다. 남편은 기거한 공간을 사는 동안 청소를 하지 않아 엄청 지저분했습니다. 영호의 손길을 도움 받아 남편의 짐을 옮기려고 하는 순간 감정이 확 올라오면서 심란했었습니다 뭔가 먹먹하고 답답하면서 잘못하고 있는 것과 같은 생각이 찰나에 지나갔습니다. 그 당시의 그 감정은 영호의 몸이 미래를 예측했던 것 같았습니다. 남편의 짐을 옮겨놓고 늦은 저녁식사 후에 캄캄해진 공원을 우리는 산책했었습니다. 남편과 함께 손을 맞잡고 걸으며 얘기도 재밌게 나눴습니다. 갑자기 비가 내렸지만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에서 비가 멈출 때까지 둘이서 기다렸습니다. 영호는 그런 시간들이 좋았고 지속적으로 자주 그런 시간이 주어질 거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영호의 기대와 예상과는 다르게 손잡고 다정한 모습으로 산책하는 시간은 오지 않았습니다. 영호의 남편은 주말이라도 출근하듯이 일찍 외출해서 저녁에 들어오는 것이 일상생활이었고 습관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토록 가족과 함께할 시간을 무시하고 본인만의 스타일로 강한 루틴이 있는 줄 영호는 전혀 몰랐습니다. 남편이 혼자 생활하면서 시간을 보내기 위해 주말에 열심히 취미생활을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영호의 예상과는 아주 다른 방향으로 빗나간 남편의 일상에는 가족이 없었습니다. 영호는 남편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얘기를 나누고 싶어서 여러 가지 제안을 여러 차례 했었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주말에 출근하듯 즐기는 생활을 하기 위해 주중에 하루만 밤 9시부터 취침시간까지 영호에게 아니 가족에게 할애하겠다는 남편의 말에 영호는 말문이 막혔습니다. 어이가 없고 기가 막혀서 더 이상 뭐라고 할 수가 없멌습니다. 영호가 볼 때 남편은 가정사든 얘기가 곤란할 때면 자리를 회피하거나 만취가 되어 귀가하는 등으로 피하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사람관계라는 게 가족이라도 지속적으로 만남을 갖고 얘기도 나눠야 소통이 원활해지고 서로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면 좋은 관계 유지에 도움이 되는데 영호의 남편은 그러한 기회조차 만들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영호는 제대로 된 가족관계를 만들어 보려고 남편과 두 딸의 사이에서 신경 쓰며 노력을 했었습니다. 그 과정 속에서 상처도 받고 좌절도 하며 슬픈 시간들이 있었지만 희망을 놓지 않고 긍정적으로 기회를 갖고자 했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인지 영호는 스스로 알고 깨달았습니다. 영호의 생각과 노력만으로 이 가정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뻐저리게 느꼈습니다.

영호는 외로움과 쓸쓸한 감정이 폭발하듯 확 올라올 때면 어디든지 떠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혼자 훌쩍 가볍게 떠난다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머릿속에서만 전국여행 또는 해외여행이 뱅뱅 돌았지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하고 스트레스만 받았습니다. 일이라도 열심히 하면 여행을 갈 수 있는데 영호는 몸과 마음이 모두 바닥까지 내려가서 무기력하고 의욕이 없었습니다. 영호에게 가장 소중하고 귀한 것이 가정이었고 가족이었는데 그것이 무의미해지고 28년간의 생활고로 심신이 모두 허물어져 일어설 힘이 없었습니다. 남편은 영호에게 매달 생활비를 준 적이 없어 어떡하든 무엇을 해서라도 생활비를 벌어야만 했습니다. 두 딸과 생활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억지와 깡으로 약한 몸을 강한 체력인 듯 착각하고 지나치게 움집이며 살았기에 모든 에너지가 빠지니 무기력으로 사람들 만나는 것조차 못하게 되어 침대에 누워 있거나 눈물이 흘러내려도 그냥 두고 영호는 그런 자신을 바라만 보았습니다. 영호는 당장이라도 모든 것을 정리하고 싶었습니다. 빨리 집이 매도계약되면 다른 인간관계도 모두 정리하고 훌쩍 떠나고 싶었습니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새롭게 인생을 살고 싶었습니다. 무슨 일이라도 하면 사는 데에는 지장을 없을 것이라고 영호는 생각했습니다. 결혼할  남자이고 남편이라면 가정에 대해서도, 자녀들에 대해서도, 또 미래에 대해서도 아내와 함께 하는 시간을 만들고 얘기를 나눠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가정에 대한 스토리를 만들고 희망을 만들어서 행복한 가정을 이루려고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지 못한 남성들이 많다는 게 현실이고 영호처럼 힘들게 사는 여성들이 많은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영호는 긍정적으로 남편과 여러 차례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어렵게 만들어서 대화를 시도했었습니다. 그러나 말이 너무 통하지 않아 속만 더 상하고 마음의 상처만 받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영호는 점점 말수가 적어지고 어느 날부터 말을 안 하게 되었습니다. 영호는 웃음이 사라지고 의욕도 떨어져서 우울증을 앓게 되었습니다.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아야 하지만 영호는 결혼초부터 지금까지 스스로 감정조절하며 견뎌내고 있었습니다 그런 영호에 대해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영호는 혼자 있을 때 자신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을 삼키면서 슬픈 시간을 지냈습니다. 무기력해진 몸이 누워 있기를 윈 하면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원래 영호는 부지런하고 활동적이라서 밤에 잠자는 시간 외에는 바닥에 누워있지를 않고 무언가를 하며 활동적이었습니다. 영호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싫어져서 피하기만 했습니다. 영호는 몸의 기운이 없으니 말하는 것도 싫고 웃는 것도 싫어졌습니다. 어느 날은 너무나 외롭고 쓸쓸해서 눈물만 흘릴 때도 있었습니다. 왜 그렇게 외롭고 가슴이 아픈지 몰랐습니다. 영호는 28년의 결혼생활 기간 동안 그 자체가 외로움이었습니다. 영호가 항상 밝게 웃고 활발하게 긍정적으로 생활하니까 행복한 줄만 알고 질투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슬픈 속마음도 모르고 말입니다. 영호는 가정에 대한 상황과 어려움 등의 스토리를 남편과 대화하며 풀어가고 싶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좋은 일이나 힘겨운 일들도 마음 편하게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남편이길 원했습니다. 하지만 영호의 남편이란 사람은 늘 외부로 돌아다녔습니다. 평일에는 새벽에 출근하고 밤 9시 넘어서 들어오거나 아니면 만취가 되어 밤늦게 들어왔습니다. 영호의 남편에게는 가정집이 아니고 하숙집이었습니다. 영호는 가정부이고 보모이면서 무보수로 일하는 고용인이었습니다. 영호는 젊은 나이의 시간들과 인생을 그렇게 보냈습니다. 그 누구도 그렇게 살라고 하지 않았으니 변명할 수도 없습니다. 가정이라는 의미에 지나치게 집중했고 집착한 결과가 영호에게는 아픔이 되었습니다. 스스로 책임의식과 무의미한 희망을 갖고 살았으니 영호는 누구라도 남탓할 수가 없었습니다. 혼자서 있을 때 생각하면 할수록 화가 났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영호가 선택하고 결정하여 행동한 것이고 소중한 두 딸을 얻었으니 감사하다고 여겼습니다. 28년 전 결혼하고 바로 임신한 첫아이를 시댁식구들 때문에 멀리 보냈을 때 심한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때 뒤도 돌아보지 말고 이혼을 했다면 후회가 덜 되었을까? 시댁 식구들에게 호의를 베풀었다가 피 터지는 가족들 간의 싸움판을 보고 영호는 큰 충격을 받았고 임신한 줄 모르고 신경안정제 등 여러 가지 약을 복용하여 어쩔 수 없이 의사의 권유로 첫아이를 보내야만 했습니다. 지금은 편안해졌지만 영호의 꿈에 와서 볼에 뽀뽀를 하고 떠나는 아이에게 미안하여 한동안 잊지 못하고 눈물을 삼키며 슬펐습니다. 지난 과거에 집착하면 할수록 더 힘든 것은 영호이니 잊어버리려고 했었습니다. 항상 다시 새롭게 희망을 갖고 긍정적으로 시작할 때마다 과거의 흔적과 시간들을 모두 잊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영호가 잊으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자꾸 떠오르게 하는 사람은 남편이었습니다. 영호는 결혼을 결정할 때에 30년은 미혼으로 혼자의 삶을 살았으니 남은 인생은 둘이 되어 행복한 가정을 꾸리려고 생각했었습니다. 영호는 결혼 전에 연애라는 것을 거부하고 안 했던 결과일까? 결혼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결정한 것이 실수였을까? 그 이유는 알 수가 없지만 결과는 영호가 슬픈 결혼생활을 했다는 것이다! 1997년 어느 봄날에 긴 생머리를 위로 끌어올려 묶은 영호의 모습은 어리게 보였고 그것이 남편과의 첫 만남이었습니다. 영호는 친구가 일 년 이상 지속적으로 소개팅을 주선하여 미안해서 남편과 레스토랑에서 첫 만남을 했었습니다. 영호는 첫 만남에서 호기심도 없었고 또다시 만날 생각도 없었습니다. 그날 이후에 매일 연락하는 남편의 전화를 거절하지 못했던 영호는 자주 만남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대화할 때에 소통이 잘 되는 것 같았고 서로 공부하려는 의식이 있어서 삶이 진보적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결혼을 결정했습니다. 영호는 첫 만남을 하고 불과 74일 만에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그날은 장마기간이라서 비가 많이 내렸습니다. 결혼식날에 비나 눈이 내리면 잘 산다는 말이 있는데 과연 맞을까요? 아주 짧은 연애를 하고 너무나 빠른 결혼식은 영호의 인생에서 크나큰 실수였습니다. 그때는 영호가 인지도 못하고 의식하지 못했던 것이 있었습니다. 연애도 모르고 남자에 대해서도 몰랐던 영호는 예의가 있고 배려가 있는 사람을 알 수 없었습니다. 연애 기간 동안에 보인 남편의 언행을 보고 영호가 인지하고 판단력이 있었다면 결혼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영호는 몰라도 너무 모르는 순진 파였고 무지했던 것입니다. 그것을 한참 뒤에 인생을 살아보고 나서야 영호는 알았습니다. 남자가 상대방을 위해 주고 인간적으로 인정하고 배려해 주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아야 했는데 영호는 몰랐습니다. 결혼 전부터 영호의 남편은 여자에 대해 배려도 없고 무지했다는 것을 시간이 너무나 흐른 뒤에 알았습니다. 무지하면 힘들게 살아야 한다는 것도 겪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영호는 씁쓸하고 또 씁쓸함에 눈을 감아버렸습니다. 이미 흘러가고 지나간 세월들을 탓할 수도 없고 그런 것이 아무 소용도 없다는 것을 영호는 인식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알면서도 은연중에 또다시 떠올리게 되는 것이 사람인가 봅니다. 영호는 다시 눈을 지그시 감았습니다. 그리고 심호흡을 크게 했습니다. 바른 자세로 복식호흡을 하면 심신이 안정되었습니다. 영호는 심란하거나 불안하고 힘들 때면 호흡법을 하곤 했습니다. 녹음이 깔린 공원 산책의 매력에 빠져 심신을 안정시키기 위해 매일 걷기 명상을 하기도 했습니다. 영호는 여러 가지 방법을 찾아서 나름 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배움에 대한 갈증이 있어서인지 새로 배우거나 강의 참여 등에 관심어 있어 끊임없이 공부했습니다. 틈새시간을 활용하여 많은 자격증을 취득하고 다양한 분야에 활동력을 넓히기도 했습니다. 영호는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과 시간 속에서 최선을 다하여 삶에 충실했기에 슬픔은 있겠지만 후회는 없었습니다. 아무 일 없이 무사히 하루를 보냄에 감사하다는 생각을 오늘도 영호는 했습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 돈과 행복이 정비례일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