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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에 머무는 시간

by 하은수

뒷산엘 오른다. 점점이 봄꽃이 핀 것 같아 멈춰 서 본다. '야생의 위로(에마 미첼)'로 들어가는 한 페이지이다. 에마 미첼은 25년간 우울증을 앓다가 책 제목 그대로 야생에서 위로를 받아 자연을 기록하게 된 박물학자이다. 그가 그랬듯이 이 길을 걸으면 마음이 낫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조금 더 깊숙한 곳에는 단풍나무가 숨어 있다. 서로 어깨를 겯고 이따금 남실바람에 잔파도를 일운다.


남천의 푸른 잎과 열매, 저 멀리 단풍의 홍조. 트리가 없는데도 있는 것 같고 선물박스랄지 리본이랄지, 붉은 모포 혹은 친친 감긴 반짝이 전등도 보이는 것 같다. 자연이 만들어낸 성탄절 파사드이다. 연말이면 화려하게 반짝이는 서울의 유명 백화점 것에 못지않다. 이곳은 부산의료원 뒤뜰로 연결되는 산책로이다. 우리 집 뒷산과 가까이 있는 줄을 지난달에야 알았다. 가끔씩 휠체어를 탄 환자와 보호자가 여기까지 오르기도 하는데 그 장면을 만날 때면 병원은 백색의 겸허함을 건네주는 곳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건강에 대한 감사함일 것이다. 오늘은 아무도 없고 대신 색색이 환희에 찬 음악이 들린다. 조로롱 조로로롱. 붉은 열매가 새처럼 지저귄다. 반토막 나버린 의 지난 일 년도 저 축제에 초대된다. 할 만큼 했다. 수고했다.


난간에 걸터앉아 건넛산을 바라보면 제법 으슥한 산경이 펼쳐진다.


먼 곳까지 찾아가서 보는 풍경의 격조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손 뻗을 수 있는 가까운 곳에서 산은 다정하게 나름 맵시를 갖추고 있다. 숨죽인 적막. 12월의 풍경이 나에게 내린다. 아름다운 풍경 속에 있으니 이승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만개한 벚꽃 아래 서면 이승인지 저승인지 헷갈린다던 하이쿠가 내 것을 도둑질했다고 느끼곤 했다. 그때는 똑 그렇게 비현실적인 시간을 맞았으므로. 그런데 오늘 이 나무들 아래서는 내가 이승에 있다는 것이 확고해진다. 살아 있어 이들을 눈에 둘 수 있다고 심장이 말한다. 다가 올 나목의 시간이야말로 본질적인 삶의 시간이기 때문일까.


집에 내려가면 페르난두 페소아와 이어령의 책이 와 있을 것이다. 건강이 회복되자 불안과 노년의 죽음에 대한 인상이 오히려 증폭되었었다. 밑줄 그어 가며 그들의 가르침에 귀 기울이겠지만 굳이 책이 아니어도 이미 마음은 한 꺼풀 가벼워졌다. 이승에 살아있다는 것이 감사하다면 그 밖의 무엇이 더 필요할까.





가을을 느끼기 시작하던 무렵 태순이와 이곳에서 찍은 사진을 뒤적인다. 기록하는 습관을 잃어버린 시간은 '온데간데없는 시간'이 되어 버리는구나. 주섬주섬 그때 기억을 더듬어 본다. 살뜰함이 일어야 뭐든 행할 수 있다. 아직은 천천히 기다려 본다.


이때는 푸르렀구나


털머위꽃이 한참 피어있었다
낙엽이 더 쌓인 날. 치마입은 태순이



저 멀리 꿈같이 단풍 든 나무. 열심히 걸어 가서 그 아래 서 보았지만 정작 느끼긴 어려웠다. 큰 키에 매달린 단풍을 한참 올려다 보느라.




산 냄새 밴 솔방울 몇 개 챙겨 와 에마 미첼의 책과 함께 두어 본다. 밤이 되어 내 옆에서 산이 잠든다. 바람이 제법 겨울답게 불기 시작한다.

지난 겨울, 한강 작가의 서점에 가서 선택한 책꾸러미에서 만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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