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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만장했던 나의 40대:최고의 날은 아직 오지 않았다

아들아, 딸아, 내일의 너희에게 보내는 열한 번째 편지

by 하늘을 나는 백구

사랑하는 아들과 딸에게.


지난 편지에서 30대의 치열함을 이야기했지? 오늘 들려줄 나의 40대는 한마디로 '파란만장(波瀾萬丈)' 그 자체였단다. 하늘 높이 날아오르기도 했고, 생각지도 못한 늪에 빠져 허우적대기도 했던, 롤러코스터 같은 시간들이었지.


하지만 미리 말해두마. 아빠는 그 험난했던 시간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 시간들이 나를 깎고 다듬어 지금의 단단한 나를 만들었기 때문이야.


높이 날아올랐지만, 지키는 법을 몰랐던 시절


40대 초반, 아빠는 그야말로 펄펄 날아다녔단다. 학원장에, 인터넷 강의에, 보습학원 강의까지 하며 정말 많은 돈을 벌었지. 통장에 돈이 쌓이는 재미에 힘든 줄도 몰랐어.


하지만 그때의 나는 '돈을 버는 법'은 알았지만 '돈을 관리하는 법'은 몰랐던 것 같다. 들어오는 대로 쓰기 바빴고, 미래를 위한 대비보다는 현재의 풍요에 취해 있었지. 결국 자잘한 빚을 정리하고 우리 가족이 살 집 한 채를 장만하고 나니, 거짓말처럼 벌이가 예전만 못해지더구나. 인생에는 항상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다는 것을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단다.


친구를 돕다 맞은 유탄, 5년의 소송


그리고 시련은 예고 없이 찾아왔어. 친구를 돕고자 함께 시작했던 학원 일이 꽤 잘 되었는데, 친구가 다른 사람들의 꾐에 빠져 사기를 당하면서 기나긴 소송전이 시작되었단다. 나는 그저 친구를 믿고 도왔을 뿐인데, 그 유탄을 고스란히 맞게 되었지.


무려 5년이 넘는 시간이었어. 법원을 드나들며 피가 마르는 듯한 고통을 겪어야 했지. 수입은 줄어들고, 흰머리는 늘어가는데, 참 희한하게도 마음만은 늙지 않더구나. 몸은 40대 중반을 넘어가는데 마음은 여전히 20대 청년 같아서, 그 괴리감이 나를 더 외롭게 만들기도 했단다.


어려움이 닥칠수록 몸을 움직여라


그 긴 터널을 지나오며 내가 터득한 생존법이 있단다. "어려울수록 가만히 있지 마라."

나는 이를 악물고 다짐했어. 상황이 안 좋을수록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나고, 몸을 더 부지런히 움직였지. 도저히 할 일이 없는 날에는 도서관에 가서 책이라도 읽고, 원고라도 썼어. 멍하니 앉아 걱정만 하고 있으면 불안이 나를 집어삼킬 것 같았거든. 신기하게도 무언가에 몰입하고 땀을 흘리니, 죽을 것 같던 그 어려움도 조금씩 가시더구나.


내 뜻대로 되지 않았던 '학교' 로의 복귀


40대 후반, 나는 학교로 돌아가고 싶은 미련에 충남에 새로 생긴 유명 기업 재단 고등학교에 지원을 했단다. 결과는 최종 합격이었지. 기쁜 마음으로 거주지를 알아보려는데,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어.


그 학교 사무국장이 서울까지 나를 찾아와서는 "선생님과 함께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라고 통보하더구나. 이유인즉슨, 기존 교사들의 반발 때문이었어. 채용 과정 중 조별 PPT 발표 때, 내가 했던 발표를 보고 당시 교무부장이 위기감을 느꼈던 모양이야. "정신이 없어서 제대로 못 했다"는 내 말에 "그게 못한 거냐"며 쏘아보던 그 눈빛이 복선이었지.


그는 훗날 교감이 되어 학교를 이끌어야 하는데, 사교육계에서 날고 기던 내가 들어오면 자신의 입지가 좁아질까 두려웠던 거야. 그래서 다른 교사들을 부추겨 "사교육 출신은 안 된다, 그를 뽑으면 우리가 나가겠다"며 으름장을 놓았다고 하더구나.


교육청 장학사로 있는 선배는 "명백한 불법이니 법적으로 따져보자"라고 했지만, 나는 포기했어. 이미 5년 넘게 소송에 시달려온 터라, 또다시 싸움을 시작할 에너지가 없었거든. 억울했지만 툭 털어내고, 다시 국어 전문학원 원장으로, 강사로 내 길을 묵묵히 걸었단다.


나의 최고의 날은 아직 오지 않았다


사랑하는 아들과 딸아.

나의 40대를 돌아보며 어느 점쟁이는 그러더구나. "죽을 팔자인데 살아남은 게 다행이다."라고. 하지만 나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내가 살아남은 건 운이 좋아서가 아니야.


나는 믿는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정말 귀하고 큰 것을 주시기 위해 나를 단련하고 계신다는 것을. 쇠는 뜨거운 불에 달구어지고 망치로 두들겨 맞을수록 더 단단한 강철이 되지 않니? 나의 40대는 바로 그 '단련의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꿈을 꾼다. 내 인생의 최고의 날은 아직 오지 않았다고. 너희도 살면서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노력한 만큼의 보상을 받지 못할 때가 있을 거야. 그때마다 기억하렴. 그것은 끝이 아니라, 너희를 더 귀하게 쓰기 위한 준비 과정일 뿐이라는 사실을.


여전히 꿈꾸는 청년의 마음으로 살고 있는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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