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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 Soom Aug 12. 2024

미련을 없애는 가장 빠른 방법

이별 후 전 애인과 친구로 지낼 수 있을까? 감정이 다 정리되면 그래도 나랑 잘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우리가 그렇게 나쁘게 헤어지지는 않는 것 같아서. 나쁜 사람이 되기는 싫어서. 많은 이별 선언에는 '좋은 친구' 사이로 남자는 제안이 붙는다. 


친구사이로 남자는 제안은 어찌 보면 죄책감을 덜어내기 위한 포장지에 가깝다. '이제 너에게 사랑이 없어. 그러니 모르는 사이로 돌아가자라'는 말을 어떻게 면전에 대고 내뱉을 수 있겠는가. 그러니 이별의 폭탄을 가진 그 말을 친구로 남자는 말로 그럴싸하게 감싸 건네는 것이다. 친구로 남자는 그 말은, 정말로 연인사이를 정리하고 서로의 삶을 응원하는 주변인으로서 존재하자는 합리적인 제안이 아닌 그저 이별을 아름답게 추억하고 싶다는 욕구에 기반한 외침에 가깝다.


많은 커플들이 이별 후에도 여전히 상대방과의 연락을 유지하거나, 그들의 소셜미디어를 지속적으로 확인하기도 한다. 아직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던 습관들이 남아있어 한순간에 끝내기에는 힘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별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완벽한 단절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헤어진 날 이후로도 나와 D는 꽤 오랫동안 팔로우 관계를 유지했다. 카톡과 전화번호까지 처리했지만 어쩐지 그의 계정까지 끊어내지는 못했다. 감정이 정리되고 나면 친구로 남을 수도 있지라는 생각이 한켠에 있었다. 상대도 그러한 듯 내가 올리는 스토리를 항상 확인하고 있었다. 


매번 내 스토리를 보니,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더 나은 나를 보여주어 후회하게 만들고 싶다는 마음도 들었다. 그 마음이 이별 이후 더 나은 삶을 사는 것을 방해하고 있었다는 것은 나중에 알았다. 나는 관계의 끝을 인정하고 이별로 인한 상실감을 회복하기에도 모자란 에너지를 또다시 상대를 신경 쓰는 데에 썼다. 


이별 후 6개월이 지나고 나와 D는 우연히 마주쳤다. 그날 우리는 꽤 긴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서로에게 주었던 상처, 원망의 마음들. 내 안에는 해결되지 못한 감정들이 너무나도 많이 남아있었다. 그렇게도 나에게 상처를 주었던 너였는데, 너와 다시 만날 생각이 전혀 없음에도 그 순간만큼은 다시 연결되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하지만 대화를 마치고 이내 깨달았다.


우리가 이래서 헤어졌지.

그 찰나에 느껴졌던 연결되고 싶다는 마음은

완전히 단절되지 않았기에 만들어진 무언의 소유욕이었구나. 


다음날 나는 그를 소셜미디어 목록에서 삭제했다. 미련의 궤도를 넘어가지 못하고 빙빙 도는 느낌은 내 인생에서 그를 완전히 도려내야 사라질 것 같았다. 


고작 클릭 한번으로 삭제가 되었다. 그가 나의 소식을 더 이상 궁금해하지 않을까 봐, 내가 그의 인생에서 정말로 잊혀져갈까봐 그렇게도 전전긍긍하던 나였는데. 그토록 어려울 것 같았던 단절은 생각보다 별것 아니었다. 무언가를 탁 놓은 것처럼 후련한 마음이 들었다. 일상의 모든 순간에 그를 들여놓지 않기로 결정한 후, 이전까지의 미련이 무색할 정도로 감정정리가 빠르게 되고 있었다.


나는 묘한 해방감과 자유로움을 느꼈다.


이제 그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던 상관없었다. 더 나은 나를 보여줄 필요도, 나를 잊지 못했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없어졌다. 너의 전 여자친구들을 험담했던 것처럼 나를 욕하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의 마음도 사라졌다. 그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 신경을 쓰게 만드는 마음의 족쇄가 풀린 기분이었다. 우리는 과거에 사랑을 했고 서로 상처를 주고받았다는 그 사실 이외에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단절을 통해 비로소 그와의 관계에서 완벽하게 벗어날 수 있었다. 



'우리'라는 말에는 수많은 감정과 기억이 켜켜이 쌓여있다. 좋았던 추억, 마음이 식어갈 때의 아픔, 좌절도, 주고받은 상처들. 연인사이에서 자연스럽게 공유했던 일상과 가까움, 소유하고 싶은 마음들이 뒤엉켜 계속 감정을 만들어낸다. 연인이기에 만들어낸 우리라는 단어는 시간이 지나도 흔적을 남기기 마련이다.


사랑과 우정은 본질적으로 다른 감정이다. 가장 가까웠던 어제의 애인이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내일의 친구가 될 수는 없다. 상대방과 이별 후에도 여전히 상대방을 신경 쓰고,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에 마음을 쓰게 된다면 우리는 여전히 그 관계 속에 머물러 있게 된다. 어제의 애인은 그저 과거의 한 장으로 남겨두는 것이 더 낫다.


그러니 이별 이후에는 완벽한 단절을 선택해 보자. 연결고리를 완전히 끊어내면 우리는 더 이상 그 관계에 얽매이지 않게 된다. 상대방과의 모든 연결고리를 끊어내는 것은 단순히 연락처를 지우고 소셜미디어에서 차단하는 것이 아니다. 마음속에서도 그 사람을 놓아주고 이별 후의 삶을 재정비하는 것이다. 나와 너 사이에 남아있는 우리를 깨끗하게 지우고 다시 나를 내 삶의 중심에 두는 것이다. 이별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이별 후의 삶은 나에게 달려 있다. 이별을 곱씹으며 스스로 마음속에 계속 상처를 낼지, 깨끗이 잘라낸 후 새 살을 돋게 만들어 줄 것인지는 선택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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