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애경 국민학생이 되다.
교문을 들어서니 커다란 느티나무가 떡하니 버티고 서서 오래된 낡은 강당과 나란히 정문 옆을 지키고 있다.
그 풍경을 봄 아침햇살이 샤방하게 비쳐줘도 애경에게는 무섭기만 하다. 강당 맞은편 건물 일층이 교실인데도 불구하고 넓은 운동장을 삥 돌아 교실로 뛰어 들어간다. 친구들은 이미 교실에 앉아 있을 것이다. 입학식을 한지 며칠이 지났지만 매번 등교 때마다 느티나무와 강당 뒤에 숨어있는 커다란 그림자가 애경이를 빨아 땡길 것 같은 소름 끼치는 으스스함이 사라지지 않는다.
무사히 도착한 1학년 3반 교실 복도에서 가뿐 숨을 고르며 신주머니에서 실내화를 꺼내며 진정시켜 본다. 하지만 터질듯이 질주했던 심장은 어쩔 줄을 모르고 쿵쾅댄다. 교실의 앞 문을 열고 바로 앞 책상 위에 몸뚱이만 한 책가방을 올리고 의자에 앉는다. 또래에 비해 키가 월등하게 작은 애경에게는 당연한 자리배정이었다.
왼쪽 가슴에 매달려있는 손수건을 땡겨 한쪽으로만 머리핀을 꽂아 톡 튀어나온 이마의 땀을 닦아낸다. 허겁지겁 뛴다고 흐트러졌을 짧은 단발머리를 손가락으로 정리한다. 옷매무새를 나름 야무지게 정돈하고 주변을 둘러본다. 이미 반친구들이 다 앉아있다. 다행히 선생님은 아직 오지 않으셨다. 그 모습을 짝꿍 지대범이 안쓰럽게 쳐다본다.
학교의 교실 건물은 삼층짜리 두동으로 나누어져있다. 반마다 애들은 60명이 훌쩍 넘는다. 교문을 들어서면 바로 강당이 보이고 그 맞은편에 저학년의 교실이 있고 뒤쪽 건물은 고학년의 교실이다. 뒤쪽 고학년 건물과 담벼락 사이에는 춘식이 오빠가 말한 변소가 있다. 커다란 느티나무가 어김없이 변소 옆을 떡하니 장승처럼 지키고 서서 학교가 어마어마한 옛날에 지어졌음을 알려주었다.
느티나무는 학교 곳곳을 지키고 있다. 쓰레기 소각장 옆에도, 운동장 끝 담장 주변에도 하늘을 가리는 느티나무가 있다. 입학 전 동네 춘섭이 오빠가 학교 변소에는 6.25 때 죽은 학도병들이 달걀귀신이 되어 똥통 안에서
" 빨간 종이 줄까 파란 종이 줄까. “
하며 물어보니까 절대로 변소에서는 오줌만 싸지 똥을 싸면 바로 똥통 안으로 끌려 들어간다고 알려주었다. 작년에도 2학년 여자애가 끌려 들어가서 똥독이 오지게 올라 학교를 오랫동안 못 나왔다며 집에서 미리 싸고 가라고 친절하게 예방책까지 알려주었다.
아직 연필도 제대로 잡을 줄 모르는 애경에게 학교는 온통 귀신들의 놀이터 같다. 부침개 한 장만큼이나 큰 느티나무 잎사귀가 바람에 시끄럽게 흔들릴 때면, 마치 귀신들도 ‘빨간 종이 줄까 파란 종이 줄까’ 하며 흔들어 대는 소리 같았다.
강당이라는 곳은 물에 젖어 썩어가는 뿌리없는 나무처럼 낡은 창틀과 커다란 문이 압도적인 게 저기 안에도 귀신이 사는 게 분명할 것이다. 동네 뒷산 굿판하는 할매집과 맞먹을 정도로 무섭다. 방심하다가는 커다란 강당 문이 삐이~걱하고 열리면서 애경을 확 땡겨 잡아먹을 것이다.
애경은 국민학생이 된 즐거움보다는 뭐든지 다 크고 오래된 학교 안의 새로운 세계가 긴장되었다. 교문을 기점으로 이 세계에서 저 세계로 순간이동이 된 느낌이라고 할까, 은하철도 999 철이의 ‘기차가 어둠을 헤치고 은하수를 건너면~ 우주 정거장’ 이 아닌 학교 정거장에 도착한 기분이랄까,
아무튼 작은 약쟁이 동네에서 태어나고 자란 애경이에게는 학교는 엄청나게 새로운 세계임이 틀림없다. 그 세계를 무사히 빠져나오면 집까지 또 뛰어가야 한다. 현실 속에 어린 동생들이 늦은 점심을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무더운 여름이 되니, 느티나무도 더운지 조용했고, 매미들만 요란스럽게 떠들어댔다. 넓은 잎사귀가 빼곡하게 박혀있는 느티나무는 바람도 없는 땡볕의 그늘이 되어 학생들의 놀이터가 되어주었다.
시월의 느티나무는 바싹 말라 누레진 잎사귀로 다시 색종이 타령을 하며 흔들어댔다. 다행스럽게도 지난 여름 용기를 내어 그늘을 몇 번 빌려서 놀았던 애경은 이제 느티나무 따위는 우습다. 그리고 으스스했던 강당도 두려움이 아닌 호기심의 대상으로 변했다. 단 변소에서는 아직 똥을 눌 용기는 없다. 깡충한 단발머리에 쪽 째진 눈매와 다부지게 쏙 베인 보조개의 작은 소녀 애경은 그렇게 학교가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었다.
약쟁이 동네는 퀘퀘한 한약재를 말리고 찌는 냄새로 동네가 마치 뒷방 할배 냄새처럼 찌린내와 쓴내가 가득한데, 학교에 오면 또래의 친구들과 공부하는 것도 신나고, 애경이를 공주처럼 받들며 매번 분홍소시지 반찬을 갖다 바치는 짝꿍 지대범도 있어서 좋다.
바닥에 닿을 것 같은 커다란 신주머니와 작은 몸뚱이를 흔들어대는 큰 책가방을 메는 날은 작은 약쟁이 동네에서 새로운 세계로 이동하는 신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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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학 첫날, 작은 인형처럼 생긴 짝꿍에게 마음을 홀딱 뺏겨버린 지대범이 분홍소시지를 짝꿍의 철도시락 뚜껑 위에 올려준다. 읍내에서 한약재 도매상을 하는 지대범의 할아버지 덕분인지, 지대범은 맨날 소시지 반찬이다. 애경은 연분홍색 소시지를 당연한 듯 받아먹으며 지대범에게 조용히 속삭인다.
“ 니 강당 가봤나? ”
“ 아니, 와? ”
“ 거는 뭐 하는 덴지 모르나? ”
“ 응 모른다 와? ”
“ 기냥 궁금해 갖고, 기냥 억시로 궁금타. 뭐 하는 덴지 함 보고 싶다. “
“ 그라믄 이따가 같이 가 보까? ”
“ 진짜로? ”
“ 어, 내 같이 가주께. ”
“ 오야, 이따 꼭 가치 가재이. ”
“ 어, 알았다. ”
지대범이 강당 창문에 매달려 안쪽을 보려고 용을 써본다. 건드리면 바스락 부서질 것 같은 썩은 창문틀과 종이로 발라진 유리창으로 가려져 강당 안은 잘 보이지 않았다. 찢어진 종이 창틈사이로 아이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이 살짝 보이는 것 같다. 그리고 혼나는 건지, 기합소리인지, 아님 그냥 질러대며 노는 소리같기도 한 함성과 함께 경쾌한 똑딱똑딱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안을 들여다볼 수 없는 애경을 위해 대범이 틈 사이로 겨우 보이는 것을 혼잣 말처럼 늘어놓았다.
“ 쟈들 머 하는고? 저건 뭐지? 손에 뭐 들고 쳐 대는데? 이야~ 신기한데? 공 놀이인가? 그래 공놀이 하는갑다. 이야 재밌겠네. ”
“ 어데? 니는 잘 보이나? 나는 얼름거리기만 하고 한 개도 안 빈다. ”
“ 글라? 나는 잘 비는데. ”
고작 반뼘 큰 지대범은 으슥대며 강당 안 상황을 신나게 중계해 주었고, 애경은 그걸로라도 대충 귀신이 사는 집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만족해야 했다.
‘ 근데 쟈들은 무슨 공놀이 하는고? ‘
궁금한 건 궁금했지만 애경은 이미 늦은 동생들의 밥을 챙겨주러 집으로 뛰어가야 했다. 신주머니가 여전히 땅에 끌려 뛰는 게 불편하다. 아빠는 금방 키가 클 거라고 했는데 아직도 땅에 끌리는 게 싫다. 키가 똑같았던 대범은 쑥쑥 자라고 있는데 말이다.
똑딱똑딱 강당 안에서 들려왔던 소리가 집으로 뛰어가는 길의 행진곡처럼 반복적으로 귓가에 울려 퍼졌다.
신주머니는 여전히 땅에 끌리는 것 같은데, 애경은 어느새 키 작은 3학년이 되어 새로웠던 세계, 학교 생활을 즐기는 소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