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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러움의 반란

by 애카이브

민희진이라는 이름을 처음 접한 건 꽤 오래전이었다. 내 또래의 디자인 전공생이라면 누구나 그녀를 보며 한 번쯤 아트디렉터라는 직업을 꿈꿨을 것이다. 그는 SM엔터테인먼트에서 f(x), 샤이니, 레드벨벳 등 수많은 아티스트들의 비주얼 아이덴티티를 구축하며 독보적인 미적 감각을 보여주었다. 그런 그가 하이브로 옮겨 새로운 걸그룹을 선보인다는 소식은 자연스레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민희진이 만든 그룹이라면 분명 무언가 다를 것이다’라는 기대와 함께.


기존 K-팝 공식을 뒤집은 데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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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진스의 첫인상은 충격에 가까웠다. 2022년 7월, 아무런 예고도 없이 공개된 Attention 뮤직비디오는 K-팝이 오랫동안 고수해 온 화려한 데뷔 공식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티저나 멤버 공개 같은 전통적인 마케팅 과정을 생략하고, 마치 이미 존재하고 있던 그룹처럼 자연스럽게 등장한 것이다. 이는 민희진이 지향한 ‘날것 그대로의 자연스러움’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첫 번째 신호였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새로운 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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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진스의 비주얼에는 디지털카메라로 찍은 듯한 거친 질감, 일상적인 공간에서의 자연스러운 모습, 과도하지 않은 스타일링으로 채워졌다. 완벽하게 계산되어 연출된 아이돌의 모습에 익숙한 나에게 이는 낯설면서도 신선하게 스며들었다. 민희진은 그룹에 정형화된 콘셉트를 덧씌우기보다, 멤버 개개인의 자연스러운 매력이 드러나는 판을 깔아주는 전략을 택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뉴진스만의 독자적인 존재감이 확실히 드러났다.


음악이 만든 ‘뉴진스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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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진스의 음악 역시 동일한 톤으로 맞물려 있었다. 당시 K-팝의 주류가 화려하고 과밀한 프로덕션이었다면, 이들의 사운드는 숨 쉴 여백을 남겨두었다. 드라마틱한 고음이나 정형화된 클라이맥스 대신 담백하게 흘러가는 보컬 라인은 ‘있는 그대로의 매력’을 더욱 뚜렷하게 부각했다.


아이돌을 넘어 하나의 작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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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진스를 알아갈수록 그들은 단순히 ‘잘 기획된 아이돌’이 아니라 정교하게 설계된 하나의 작품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희진이라는 확고한 구심점을 중심으로 음악, 비주얼, 브랜딩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유기적으로 협업해 완성된 결과물. 모든 요소가 따로 놀지 않고 ‘뉴진스’라는 이름 아래 하나의 통일된 서사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뉴진스의 등장은 단순한 걸그룹의 출현을 넘어, K-팝 업계가 수년간 공식처럼 여겨온 ‘성공 방정식’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화려한 스펙터클보다는 진정성 있는 자연스러움으로, 계산된 완벽함보다는 날것의 매력으로 대중과 만난 그들의 실험은 성공적이었다. 비록 지금은 복잡한 현실 앞에서 그 발걸음이 멈춰 서 있지만, 민희진이라는 크리에이터와 다섯 멤버가 보여준 가능성 자체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들이 증명한 ‘다른 방식도 가능하다’는 메시지, 그리고 그 진정성 있는 시도 자체가 내가 여전히 그들을 응원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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