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가 72시간 내내 나를 쫓는다면, 어떤 장면이 나올까.
화려한 클라이맥스는 없을 테고, 그냥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는 하루들의 나열이지 않을까 싶다.
문 앞에 놓인 천 더미, 꺼지지 않는 노트북 화면, 그리고 쌓여 있는 메가리카노 플라스틱 쓰레기.
요즘 내 일상은 밤과 낮이 뒤섞이고, 숨 쉴 틈이 없다. 그래서 이 72시간을, 다큐 3일처럼 기록해 보고자 한다.
오전 10시, 충무로 골목. 서문을 발주하기 위해 인쇄소에 들어섰다. 처음 맡기는 주문이라 설명을 들어도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불친절한 응대까지 겹치니 하루의 시작부터 버겁다. 누구나 처음은 있는데, 세상은 종종 불친절하다. 어찌어찌 완성된 인쇄물을 들고 동대문시장으로 향했다. 두 팔 가득 천을 들고 나오니, 늘어진 천처럼 내 어깨도 축 늘어지는 듯하다.
오후 6시, 급히 끼니를 때운 뒤 회의를 시작한다.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대화 속에서, 나는 점점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조차 모를 때도 많다. 새벽이 밝아와도 회의는 계속되고, 몸은 기계처럼 움직이며 정신은 점점 흐려진다. 결국 동이 틀 무렵, 겨우 세 시간 눈을 붙인다.
오늘은 플리마켓이 열릴 카페에 방문해서 콘텐츠 촬영으로 아침을 시작한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잠시나마 숨을 돌리게 한다. 테이블 위에 천을 펼치고, 손수 만든 소품들을 올려두며 구도를 잡는다. 카메라 앵글을 확인하고 다시 치우기를 몇 번이나 반복한다. 영상 속 웃음은 밝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피곤한 얼굴을 숨기기 위한 연출일 뿐이다. 오늘도 반복되는 회의 사이사이, 문득문득 한숨이 새어 나온다. “인생이 왜 이럴까.” 스스로도 알 수 없는 질문을 내뱉으며, 한숨으로 마음을 달래는 수밖에 없다. 하루는 그렇게 무거운 숨소리로 채워진다.
낮과 밤의 경계가 사라진 지 오래다. 눈을 감아도, 다시 뜨면 여전히 같은 공간 같은 풍경. 하지만 그 사이사이에 작은 숨구멍이 있다. 이제는 누워있는 것만 봐도 웃긴 하은이, 음식 앞에서 진심으로 행동하는 승현이, 기계처럼 내뱉는 한마디도 귀여워 보이는 희주, 바보처럼 웃는 예은이, 나의 한 마디에도 웃어주는 효주까지 친구들이 주는 에너지 덕분에 버틸 수 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끊임없이 나에게 질문을 던진다.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게 무엇일까’ ‘이 길이 내게 행복을 주는 걸까’ 아직도 답을 내리지 못한 채 질문은 늘 그림자처럼 따라붙는다.
다큐 3일은 결말을 강요하지 않는다. 나의 72시간은 성공의 순간으로 마무리되지도, 파국으로 끝나지도 않는다. 그저 계속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이 글을 읽는 누군가도 지금 비슷한 시간을 보내고 있지 않을까 싶다. 밤을 새우고, 회의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내 선택을 의심하는 사람. 우리 모두 각자의 카메라에 잡히지 않은 숨소리를 가지고 있다. 오늘은 그 숨소리를 들여다본 하루였다. 그래도 나는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 다만, 좋아하는 일이 나를 갉아먹지 않게끔 속도를 조절할 줄 아는 내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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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