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처음 가보는 장소를 찾다가 지도를 잘못 보고 길을 잃은 적이 있는가? 버스나 지하철을 잘못 타 외딴곳에 내려본 적은? 혹은 여행지에서 계획 없이 발이 이끄는 대로 걷다가, 난생처음 마주한 풍경 앞에 멈춰 선 적은?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은 그런 순간을 겪는다. 처음엔 당황스럽고, 등에 식은땀이 흐르지만, ‘어떻게든 되겠지’, ‘다시 돌아갈 수 있겠지’ 하는 마음을 먹고 나면, 세상 그렇게 아름다운 길도 없다.
원래 가던 길로 갔다면 보지 못했을 골목, 우연히 마주친 다정한 카페, 사진으로는 담기지 않는 풍경들. 헤맬 때에만 보이는 것들이 분명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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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의 많은 대학 시절을 ‘헤맸다’.
무얼 하고 싶은지 몰라 막연히 들어온 행정학과, 끌리는 마음 하나로 시작한 방송국, 영화가 찍고 싶어 무작정 떠난 교환학생까지. 이정표 없이 걸었던 날들의 연속이었다.
그 많은 선택의 순간을 지나고 난 후나는 ‘너무 많은 시간을 헤맸다’고 생각했다.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무작정 나섰지만, 결국 어느 순간, 내가 붙잡았던 모든 일에 흥미가 사라졌다.
그때 느꼈다. 이 모든 시간은 도대체 무엇을 위한 것이었을까. 나는 헤매는 데 청춘을 쏟은 것만 같았다.
그런데, 올해 처음 광고를 시작하며 비로소 알게 되었다. 헤맨 만큼, 내 땅이었다. 그동안 쌓아온 조각들이 결국 어디선가 모습을 드러냈다.
행정학에서 배운 시선은 사회 문제를 바라보는 안목이 되었고, 방송국에서의 밤샘과 협업은 팀워크가 생명인 이곳에서 빛을 발했다. 영화를 배우며 얻은 영감은 어느새 광고 속 한 장면의 감정으로 녹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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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은경의 인터뷰를 읽으며, 이런 문장이 떠올랐다.
“길을 잃은 줄 알았던 시간들이 사실은 나를 데리고 걷고 있었다.”
그녀는 아역 시절부터 ‘최고’라는 말속에 갇혀 있었다고 했다. 그러다 그 무게를 내려놓고, 비로소 자신만의 속도로 걷기 시작했다고.
나도 그랬다. 어떤 분야에서든 최고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그 욕심이 내 열정을 잠식하고 있었다.
이제는 내려놓게 되었다. 잘해야 한다는 마음보다, 좋아서 하는 마음으로. 헤맸던 시간을 부정하지 않고 껴안는 것, 그것이 진짜 나를 찾는 과정이었다.
헤맸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 헤맨다는 건 멈춰 있는 게 아니라, 나에게 맞는 길을 스스로 탐색하는 행위다.
‘헤맨 만큼 내 땅’ — 이 문장은 결국, 내가 살아온 모든 시간들을 사랑하겠다는 다짐이다.
길을 잃은 줄 알았던 순간들 속에서, 나는 나의 길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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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