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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아시스의 서사는 어떻게 완성되는가

by 애카이브

오아시스의 재결성은 거대한 작용과 반작용을 불러왔다. 그 소식을 듣고 뭉클하지 않았던 록 음악 팬이 있었을까. 아니 뭉클하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그건 충격에 가까운 사건이었고, 일생에서 흔치 않은 종류의 특별한 감동이었다. <헤어질 결심>의 서래였다면 “마침내”라고 입을 뗐을 것이다. 술에 취해서 내뱉은 변덕 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 사실을 알았을 때 마음에 차오르던 뜨거운 파도.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사건이 일어났으니 이건 기적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럴 때가 아니라면 언제 ‘기적’이라는 말을 또 쓰겠는가.

머리가 좀 차가워진 다음에야, 나는 사건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나는 그들의 재결성의 이유에 대해 세 가지 가설을 제시하고자 한다.


하나, 돌연한 깨달음.

어쩌면 깊은 고뇌와 숱한 망설임 끝에 내린 결정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냥 수면 위로 빈 병이 떠오르듯 불쑥 떠오른 생각일 수도 있다. 밴드 해체로부터 20년에 가까운 세월이 흘렀기에 충분히 그럴 법한 얘기다. 충분한 시간이 흘러, 미움이 자기도 모르는 새에 소진되어 버렸을 수도 있다. 미지근한 물속의 비누처럼, 오래된 미움이 조금씩 녹아 없어진 것이다.

리암이야 오래전부터 재결성을 하고 싶다고 밝혀왔으니, 열쇠는 노엘에게 있었다. 나는 그가 머릿속으로 재결성을 결심했을 순간을 내 멋대로 떠올려본다. 평소와 다르지 않은 어느 아침. 머리에 뜨거운 물을 맞다가, 양치를 하다가, 혹은 쉐이빙 폼을 뺨에 바르고 멍하니 거울을 보다가 불현듯 이런 생각이 스쳤을지도 모른다. ‘어라, 합치는 것도 나쁘지 않겠는데.’ 조금 허무할 수도 있겠으나, 이것도 실로 오아시스스럽지 않은가?


둘, 한탕 챙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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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것조차 거대한 팝 음악 비즈니스의 일부일지도 모른다. 이쯤에서 다시 떠올리는 불후의 어록, “우린 존나 예전에 끝났어. 돈 때문에 하는 거지”의 연장선상에 있는 기획일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노엘이든 리암이든 혼자 할 때보다는 둘이 할 때 더 큰돈을 벌 수 있지 않나. 낭만주의자에게는 매트릭스의 빨간약 같은, 자본주의적인 진실인 셈이다.

자본주의는 이미 우리 마음의 가장 내밀하고 깊은 곳까지 침범했다. 진정성이 자본에 오염된 것은 오래전의 일이다. 그러나, 이건 너무나 비루하고 볼품없는 진실이지 않나. 만약 당신이 아직까지 사람의 진심이란 걸 믿는 사람이라면 말이다. 그들의 재결합을 진심으로 바라왔던 사람이라면, 어딘가 모욕당했다는 기분마저 느낄지도 모르겠다(물론 어떤 사람들은 돈 때문이든 뭐든 합치면 그만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역시 오아시스 팬 같다).


셋, 서사를 완성하려는 갈망.

노엘은 67년생이다. 곧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다. 몸은 여기저기 고장 나기 시작하고, 창작 능력도 한창때만 못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한참 전에 인생의 반환점을 돌았다는 뜻이다. 끝, 그러니까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시기다.

인생의 유한함을 깊이 의식한 사람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누구나 자기 삶의 작가가 된다는 말이다. 노엘은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삶에 미결의 서사가 남아 있다는 것을. 그리고 이 서사를 이어서 쓸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자기 자신뿐이라는 것을. 그러니 오아시스의 재결성은, 위대한 서사를 내 손으로 완성하겠다는 형제의 결단인지도 모른다.

하나 짚고 넘어갈 것은, 먼저 재결성을 원했던 것은 리암이었다는 사실이다. 그가 평생토록 존경했던 존 레논은 마흔의 나이에 총에 맞아 죽었다. 오랜 시간 위대한 예술가의 삶과 죽음에 대해 숙고하던 리암은 자기 삶의 유한성에 대해 형인 노엘 갤러거보다 더 일찍 깨달았을 것이다. 그가 일찌감치 ‘As You Were’ 같은 다큐멘터리를 통해 자신의 지난날을 회고했던 것도 그런 이유였을지 모른다.


For what it's worth

부질없을진 모르지만

I'm sorry for the hurt

상처 준건 미안해

I'll be the first to say, "I made my own mistakes"

나 먼저 "실수한 건 나였다"라고 말할게

- For What It’s Worth -


우리는 인생을 하나의 통합된 이야기로 이해한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말은 그가 가진 이야기를 사랑한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아시스라는 이름의 서사는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오아시스가 위대한 밴드라면, 그것은 서사의 위대함을 뜻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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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만든 오아시스라는 서사는 시대를 바꾸어놓았고, 우리 감수성의 영원한 일부가 되었다. 리암 갤러거가 맨체스터 경기장 테러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한 공연에서 ‘Don’t Look Back in Anger’를 부르는 장면을 떠올려 보자. 아버지의 폭력과 가난한 삶이라는 어둠 속에서 피어난 형제의 노래들은, 시대의 어둠을 비추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음악이 되었다. 오아시스라는 서사는 그들만의 것이 아니다. 한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함께 써나가는 역사이기도 한 것이다.

화난 채로 뒤돌아보지 말라. 갤러거 형제는 화해를 완성함으로써 스스로 그 말을 지켰다. 그들은 깨달았을 것이다. 위대한 서사를 완성하는 것은 오직 사랑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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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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