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혜영의 <리코더>
작년 12월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하루를 건너면서, 어떤 날은 시간 단위로 일어났다. 빠르게 우리 사회가 일상을 되찾기를 바라면서 매일 뉴스를 챙겨 보았다.
내용마저 의심하게 되는 암울한 뉴스들이 연달아 보도되던 시기였다. 그래서인지 연말의 참사는 더 충격적이었던 것 같다. 우리 사회에서 일어난 몇 차례의 충격적인 참사들을 목격하면서 들었던 의문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편혜영의 단편소설 <리코더>에는 우리 사회에서 ‘종종 벌어지는 사고’에서 살아남은 두 사람, ‘수오’와 ‘무영’이 등장한다.
이들이 고등학생이었을 때, 소수 인원이 남아 강당 청소를 하던 중 건물 지붕이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한다. 사고 현장에 있었던 무영은 부상 없이 곧 빠져나오고 수오는 콘크리트에 깔렸으나 가벼운 타박상을 입는다.
다만 수오와 함께 콘크리트 더미에 깔렸던 또 다른 친구는 목숨을 잃게 된다.
이십여 년의 세월이 흐른 후, 감리 회사에 재직 중이던 수오에게 유사한 사고가 다시 일어난다. 수오가 비교적 안전하다고 판정을 내린 건물에서 외장재가 떨어져 나가 밑에 있던 환경미화원이 생을 마감한 것이다.
그러나 후자의 사고는 수오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소설에서 묘사하는 사고는 언젠가 뉴스에 보도되었을 법한 유형의 일들이라 익숙했다. 사람의 안전, 어떻게 보면 목숨보다는 다른 이유가 우선시 되면서 벌어지는 사건사고들.
그러한 이유들로 인해 끔찍한 사회적 참사가 일어나기도 한다. 특히 2000년대 이후에 일어난 수차례의 참사들은 기억에 강렬히 남아 있다. 참사의 원인을 확인하고 이에 분노하면서도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데 얼마간 참여했기 때문일까.
그러나 그런 일련의 과정들이 반복되면서도 그 빈도는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잦아지는 것만 같다. 당최 이해가 되지 않는다.
<리코더>는 서스펜스 장르로, 사고를 수습하던 수오가 실종되고 그의 행방을 추적하는 과정이 중심 사건이 된다. 경찰이 수오의 집에 얹혀살던 무영을 비롯한 주변 인물들을 조사하면서 그가 사라진 이유가 드러난다. 수오의 실종은 과거의 사고와 관련이 있었다.
강당 건물이 무너지는 사고가 일어났던 당시, 수오와 어떤 한 친구가 콘크리트 더미에 깔려 고립된다. 훗날 수오는 고립된 그곳에서 친구와 끝말잇기를 했다는 사실을 무영에게 밝힌다.
"그게 마지막 말이었어."
딴생각을 했다고 자백하듯 쳐다봤지만 수오는 힌트를 주지 않고 "항아리 다음에 말이야" 하며 웃었다.
"차라리 이름을 부를걸."
다시 만난 이래로 수오가 그토록 울적해 보인 적은 처음이었다.
(... 중략... )
수오는 구조되기 직전까지 무너진 콘크리트 벽을 사이에 둔 친구와 끝말잇기를 했다는 것을 무영에게만 말했다. 그 친구가 무슨 말이든 계속해야 한다고 겁먹은 수오를 달래서 시작됐다. 차례가 여러 번 바뀌었고, 수오가 '더'로 시작하는 낱말을 말할 차례였다.
"더러운 세상."
수오가 대뜸 소리쳤다.
"더럽게 재수 없어."
수오가 다시 소리쳤다.
수오가 친구와 끝말잇기를 했다는 고백과 작품의 제목으로 짐작하건대, 사고로 죽은 친구의 마지막 말은 '리코더'였음을 알 수 있다.
무너진 건물 더미 아래서 구조된 수오는 평소처럼 학교를 다니고 아무런 문제 없이 살아온 듯했다.
그러나 실상은 친구의 유언이 되어버린 말을 잊지 못했고, 그때 소리를 지르지 말고 그의 이름을 불렀어야 했다며 후회한다. 이 후회가 이십 년 뒤의 고백이라는 점에서 수오는 친구를 구하지 못하고 자신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을 오랜 시간 간직해 왔으리라 추측할 수 있다.
자신의 업무상 실수로 인해 누군가가 죽음에 이르렀다는 일련의 사건을 특히 수오와 같은 인물은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게 그가 지고 있던 죄책감은 자신의 모든 것들을 내려놓게 만들었다. 결국 그는 집과 돈을 무영에게 내어주고, 스스로 납치극을 꾸며서 사라졌던 것이다.
인재로 인한 비극, 이로써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사회적 참사에는 국가나 기업이 져야 할 사회적 책임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몇몇 참사와 관련해서는 풀리지 않는 의혹, 석연치 않은 해명, 책임 소재를 떠넘기는 작태 등을 종종 목격했다. 책임을 져야 할 이들이 문제 제기나 이견을 정치적 공세로 치부하고 사실 관계를 밝히는 데는 미적거렸다.
시간이 흘러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지고 진상 규명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면 그 사회적 책임은 어떻게 되는 걸까. 제 역할을 하지 않는 이들이 내다 버린 책임이 사라져버리기 전에 그 일부라도 개인으로서 질 수는 없을지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간 희생자를 추모하고 뉴스를 살피며 분노하면서도 나와는 이 참사들이 직접적인 관련은 없다며 거리를 두었던 것은 아닌지.
참사가 발생하고 사상자가 숫자로 환원되는 과정에서 받게 되는 충격과 경각심은 응당한 개선을 요구한다. 그렇게 개선된 변화를 누리는 것은 희생자들에게 갚지 못할 빚을 지는 일일 것이다.
또한 참사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이들에게 어떠한 기대조차 걸 수 없는 상황임을 감안하더라도, 지속적으로 분노하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 나로서는 상황을 개선할 권력이 없는 개인이므로 후속 조치들에 끈질기게 관심을 가지기라도 해야겠으나 자신 있게 그러했다고 말하지는 못하겠다. 결국 또 다른 참사가 발생할 때까지도 이전과 다름없는 현실이라면, 이는 희생자들에게 얼마간의 죄를 짓는 짓이다.
지나 온 참사들에 대해 직접적인 관련은 없을지라도, 우리 사회 구성원이라면 아무련 관련이 없다고는 못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리코더’를 잊지 못하는 죄책감에 다가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비록 이런 마음가짐이 미치는 영향이 가시적인 것이 아닐지라도, 사회적 책임을 방기한 파렴치한들이 단죄되기까지 보다 인내심을 갖고 지켜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럼으로써 사회적 참사를 예방할 수 있는 기반이라도 만들어지기를 바라게 됐다.
<리코더>가 인상 깊은 또 하나의 이유는 ‘수오’의 죄책감, 이 부담스러운 정서를 공유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수오가 실종 상태로 집에 돌아오지 않는 동안, 무영은 수오의 집에 머무르면서 과거 사고의 여파에 머무르지 않으려고 한다. 그저 수오가 스스로 사라진 이유를 이해하면서 그의 주변에 머무르는 것으로 소설이 마무리된다.
무거운 죄책감으로 힘겨워하는 누군가의 곁을 지키는 것처럼, 상처를 공유하는 이들이 서로를 보듬어 주는 노력을 엿볼 수 있었다. 어떤 충격적 사건, 그로 인한 암울한 기억과 정서를 공유하고 있는 이 시대의 우리들에게도 필요한 위로의 자세일 것이다.
(이미지 출처: 경향신문,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로 슬픔 잠긴 대한민국…전국서 추모행렬 이어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