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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밍 Feb 04. 2023

세상에 팥죽을 만드는 사람과 먹는 사람만 있다면

'마이코네 행복한 밥상'을 보고



가장 기억에 남은 장면은 아무래도 팥죽이 나오던 장면이었다. 

주인공 키요는 떠나는 사람을 위해 팥죽을 만들어 모두와 나누어 먹는다. 고향에 남은 키요의 친구는 키요의 할머니에게 자신에게도 축하할 일이 생기거든 키요처럼 팥죽을 만들어 달라고 하면서도 그애를 위해서는 언제 만드는게 좋겠냐고 묻는다. 그러자 할머니는 말한다. 키요는 누가 만들어 주는 쪽이 아니라 만드는 쪽이라고. 그래도 괜찮냐고 친구가 묻자 할머니는 빙그레 웃으며 대답한다. 사람은 어떻게 살지 각자 선택하며 사는 거라고. 만드는 쪽이든, 먹는 쪽이든, 떠나는 쪽이든, 보내는 쪽이든. 좋고 나쁘고를 따질 수는 없는 거라고. 


누군가 내게 너는 어느 쪽이냐고 구지 따져 묻는다면 나는 팥죽을 만드는 사람에 더 가깝다고 하겠다. 그러면서도 내심 누군가는 내게 팥죽을 만들어주기를, 내가 만들어준 팥죽 수 만큼은 아니더라도 그래도 내게 어느정도는 돌아와야 하는 그릇도 있어야 하지 않겠냐며 서운해 한 적도 많았다. 그러나 키요의 할머니의 말을 들은 순간 나는 그냥 납득해 버리고 말았다. '아. 나는 팥죽을 만드는 사람이었지. 그렇다면 팥죽을 만들어서 먹이는 사람, 적어도 그렇게 살기로 선택한 사람으로 살아야지' 하며 그간의 서운함이란 있었는지도 모르게 단번에, 단순하게 생각과 마음이 정리되는 것이었다. 아마 그건 드라마 내내 특출난 것 없는 평범한 캐릭터로 그려지면서도 모든 사람을 빛나게 해주는, 그러면서도 스스로 단단하고 행복할 줄 아는 치요에게서 알게모르게 배운 것일테다. 






마이코의 행복한 밥상

이번 달 결제된 넷플리스가 아까워 밥먹을 때나 가볍게 보고자 고른 드라마였다. 처음엔 드라마 썸네일컷만 보고선 너무 일본 색이 짙은 것 같아 망설였는데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최근 연출작이라는 것을 알게되고바로 보게되었다. 


소위 음식이 나오는 힐링계 드라마. 마이코란 게이코, 우리에게 잘 알려진 말로는 게이샤가 되기 위한 견습생으로 전통예술을 연마하는 예능인이면서도 고급 요정에서 돈이 있는 자들만이 부를 수 있는 소위 있는 자들의 예능인이자 화류계사람이기도 하다. 견습생활을 시작하는 것은 보통 중학교 졸업 이후인 16살 부터 18까지로 아무래도 중학교만 졸업하고 견습생활을 시작하는 소녀들이 많아 전통예술의 계승이란 미명아래 미성년자가 술집에서 일하는 것이 허락되는 것이기도 해서 비판의 여지가 많다고 한다. 


드라마 또한 이런 비판에서 자유로울 순 없지만 그럼에도 주인공 두 소녀는 반짝였다. 주변의 엉뚱하면서도 번뜩이는 캐릭터들도 모두 좋았다. 어찌보면 다소 지나쳐 보일 수 있는 상황이나 설정들 임에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특유의 잔잔하고 일상적인 맛이 잘 베어들어 드라마 속에 나오는 음식들처럼 평범하면서도 두고두고 생각날 것 같은, 한 그릇의 따뜻한 가정식같은 드라마였다.


모두와 돈지루를 나눠먹으며 치요는 친구 스미레에게 양파 같은 사람이라며 양파는 볶으면 볶을 수록 단 맛이 나 요리 전체에 풍미를 주는 정말 좋은 재료라고 했다. 사실 나는 이 말이 치요에게 더 잘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어떤 요리에든 들어가고 어떤 요리든 요리 전체에 풍미를 줘서 다른 식재료는 다 떨어진다 해도 양파만은 떨어지지 않게끔 넉넉하게 사게만드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지. 치요같고 양파같고 평범한 가정식 같은 사람 

치요보다 한참 많은 나이가 되었지만 아직도 되고 싶은 사람을 생각한다. 그래도 이 쯤 나이를 먹으니 이제 나도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살고 싶은지 정도는 금방 알 수 있게 되었구나 하는 생각과 동시에 치요 나이때 쯤 쓴 일기장에 단골손님처럼 자주 등장하던 '에너지가 넘쳐서 타인에게도 그 에너지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떠올랐다. 그때는 힘이 없었고 또, 어떻게 해야 힘이 나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으면서도 나를 어떻게 사랑하라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다행히 이제는 안다. '에너지가 넘쳐서 타인에게도 그 에너지를 줄 수 있는 사람'은 바로 키요의 할머니가 말하던 '팥죽을 만드는 사람'이며 '팥죽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팥죽 만들기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걸. 당장은 나를 위해, 팥죽이 맛이 있어지고 만드는데 어느정도 자신이 붙으면 다른 사람들을 불러 맛보여 주겠다. 그렇게 모든건 조금씩 시작한다는 것을. 





이치고이치에

드라마를 관통하던 또 하나의 키워드. 일생에 단 한 번 뿐인 만남. 키요는 요리를 하기 전 재료들에게 잘 부탁한다는 인사를 한다고 했다. 단 한번도 같은 재료였던 적이 없었다며 같은 재료더라도 계절에 따라, 또 사는 가게에 따라 다 다르다며 일생의 단 한번 뿐인 만남이라고도 했다. 나는 곧바로 병원에서 만나는 환자들을 생각했다. 자주 병원에 오는 환자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이치고 이치에, 서로의 인생에서 단 한번 뿐인 만남이다. 특히 부인과 병동에서 만나는 완화치료 환자들의 경우는 더더욱. 보험적용이 되는 완화치료가 끝나고 환자분들이 퇴원날짜를 알리면 우리는 기약없는 작별의 인사를 나눈다. 진심으로 서로의 안녕을 바라며. 


돌고돌아 병원에서 일하게 되었다. 사람을 좋아하고 사람을 위해서 일하고 싶던 것이 결국 여기로 이끈 것 같다. 일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치료사인 나의 몸과 마음의 에너지를 채우고 단련하는 것이다. 특히 아직 언어적으로 부족한 외국인 치료사로서 나는 매일 더 마음을 견고히 한다. 내가 미처 말로 다 전하지 못한 것이 이 사람에게 전해지길. 나는 흔들림없이 무조건 당신을 응원할테니 그런 나의 마음이 당신에게는 조금은 전달되기를. 


결국 치유를 하고, 좋아지고, 인생의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환자 본인의 몫일테다. 미술치료사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더 적어서 그저 같이 그림을 그리고 좋은 시간을 만드는 일 뿐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인생에서 한번의 좋은 경험은 두고두고 살아가는 힘이 되기도 한다. 단 한명의 좋은 사람을 만난 것 만으로 삶의 풍경이 많이 달라지는 것처럼. 모든 사람에게 내가 좋은 사람은 아니겠지만 병원에서만큼은 바라는 바 없이 그저 환자의 안녕을 바라는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한다. 나의 응원이 닿지 않는대도 기꺼이 응원을 나누어 주는 사람. 그럴 수 있을 만큼 에너지가 있고 단단한 사람. 돌아오는 팥죽없이도 기꺼이 남을 위해 팥죽을 쑤는 사람. 한 그릇의 팥 죽도 인생의 처음이자 마지막 팥죽인 것처럼 정성껏 만드는 사람. 


이 마음을 잊지 말아야지. 치요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알려준 것. 

그래서 적어보는 다소 개인적이고도 감정적인 드라마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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