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코스 카잔차키스 민음사
작년에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고 독후감을 썼는데, 너무 책 밖의 배경만 정리한듯하여 두번째 독후감을 썼습니다. 이번에는 조르바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귀인’과 ‘자유’의 관점에서 정리했습니다.
귀인貴人.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귀인을 만난다. 귀인은 경제적인 부를 안겨주거나, 생각의 폭을 넓혀 자기만의 틀을 깨고 나올 수 있게 도와준다. 『그리스인 조르바』의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에게 알렉시스 조르바는 후자에 해당하는 귀인이다. 그는 「작가의 말」에서 조르바를 ‘게론타’라고 말했는데, 이는 발칸반도 북쪽에 있는 아토스산의 수도사들이 ‘영적 지도자’를 표현하는 단어이다. 귀인이자 영적 지도자 조르바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바람이 쌀쌀한 피레우스 항구에서 ‘나’는 조르바를 처음 만났다. ‘나’는 친구와의 이별을 회상하고 있던 참이다. 카프카스 지역에서 그리스 동포가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며 스타브리다키스는 ‘나’에게 행동을 요구했다. 하지만 ‘내’가 잠자코 듣고만 있자 친구는 떠났다. ‘나’는 용기를 내지 못했고 친구가 나를 떠난 것은 필연이었다. 어쩌면 친구와의 이별이 조르바와의 만남을 가능하게 했을지도 모른다. 친구와 함께 있었다면 조르바는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나중에 조르바는 그날 본 ‘나’의 모습을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카페 구석에 점잖게 앉아, 몸을 떨 듯 웅크리고 황금 표지의 조그마한 책을 읽고 있는 걸 보고는, 글쎄 잘은 모르겠지만, 당신이 수프를 좋아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던 거지, 이유야 알 길이 없어요. 그저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던 것뿐이오.” 유일한 친구 스타브리다키스도 떠나고, 남은 친구라고는 책밖에 없는 외로운 ‘나’에게 조르바는 헤르메스가 보내준 귀인이다. 작가는 헤르메스가 조르바를 보내주었다고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아테네에서 헤르메스 거리를 걷고 있었다던 꿈 대목을 보면 두 사람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라 헤르메스가 정해놓은 운명을 의미한다고 해석했다. 그러면 왜 음식은 수프여야 했을까? 유럽인에게 수프는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음식이기 때문일 것이다. 조르바는 세상에 겁먹어 떨고 있는 젊은이에게 용기라는 이름의 따뜻한 수프를 권한 셈이다. 이렇게 두 사람은 운명적으로 만났다.
알렉시스 조르바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이다. 광산에서는 열심히 갈탄만 생각하고, ‘나’와 있을 때는 즐겁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여자와의 정사도 좋아하고 여자의 마음도 잘 읽는다. 젊은 시절 카바레 가수였던 늙은 오르탕스 마담을 기쁘게 해주기 위해 그녀의 전성시대를 그림으로 표현하고, 그녀가 좋아할 선물을 하며 마담을 위해 재미난 행사도 준비한다. 마담의 죽음을 끝까지 지키며 눈을 감기고 마담의 앵무새도 챙긴 이가 조르바이다. 또 이라클리온에서 만난 어린 밤무대 여가수 롤라를 위해 머리를 까맣게 염색한다. 조르바의 여든 살 할머니는 누군가 불러줄 세레나데를 기다리며 밤마다 머리를 빗었단다. 할머니의 영향을 받은 조르바는 여자란 나이와 상관없이 갈대이고 도자기 꽃병이라며 소중하게 생각한다. 가부장적 질서 속에서 여자 위에 군림하는 크레타 남자들과 비교되는 조르바이다.
전쟁에 참전하면서 애국이라는 이름으로 터키인이라면 모조리 죽이고 귀를 모으고 다 불태우던 조르바였다. 그러나 자신이 죽인 불가리아 유격대원의 아이들이 고아가 되어 맨발로 구걸 다니는 것을 보며 전쟁의 참상을 깨달았다. 결국 맹목적으로 믿었던 것들-조국이나 민족 같은 것-의 가치에 의문을 품고 전쟁터에서 도망쳤다. “국가가 존재하는 한 인간은 한낱 짐승, 그것도 잔인한 짐승으로 남을 거요. 하지만 나는 거기서 탈출했소.” 누구보다 시대를 앞서고 있었던 그에게는 국가·종교보다 멋진 녹암(綠岩)이 더 소중했다. 조르바의 인간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열린 자세는 조금씩 ‘나’에게 스며 들어간다. 조르바가 해주는 맛있는 음식처럼···.‘나’는 사회주의에 대한 환상이 있어서 광산을 성공시키면 노동자들과 공동체 사회를 만들 꿈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조르바는 ‘내’가 광산에 오는 것을 싫어한다. 광산에 와서 노동자들에게 책임지지 못하면서 쓸데없이 사회주의니 뭐니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를 하기 때문이다. 광산은 실패하고 재산을 모두 잃은 후에야 결국 ‘나’는 뜻밖에 해방감을 맛보았다. 역설적이게도 그 실패가 ‘나’의 공동체에 대한 의무에서 해방감과 자유를 느끼게 했고 어떻게 맹목적인 필연에 대적해야 하는지 깨닫게 했다.
‘나’와 조르바는 크레타에서 헤어진 후 각자의 길을 갔다. 둘은 간간이 편지를 주고받으며 자신의 안부를 전한다. 시간이 흘러 5년 후에 ‘나’는 베를린에서 조르바의 전보를 받았다. “아주 멋진 녹암 발견. 즉시 오기 바람. 조르바” 당시의 베를린은 엄청난 기근과 인플레이션의 고통 속에 시달리고 있던 터라 그런 시절에 한갓 아름다운 것을 보러 오라는 조르바를 못마땅하게 여기며 가지 않았다. 조르바는 “당신은 붓에 매달려 살아가는 사람이오. 가엾은 영혼, 당신도 한 번쯤은 아름다운 녹암을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러지 못하는구려.”라는 편지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편지를 보내지 않았다. 5년 전, 크레타에서 헤어지기 전날에 조르바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보스는 자유롭지 않아요. 당신이 묶인 줄은 다른 사람들의 줄보다 좀 더 길어요. 당신은 마음대로 오고 가니 자유롭다고 생각할지 모르죠. 하지만 당신은 그 줄을 잘라 버리지 못해요.” 조르바가 예견했던 것처럼 ‘나’는 끝내 ‘자유’롭지 못함을 스스로 증명한 셈이 되었다. 알렉시스 조르바는 평생 떠돌아다니며 많은 풍파를 견디며 가난한 노동자로 살다가 마침내 마그네슘 광산의 맥을 찾아냈고, 부자가 되었다. 젊은 부인을 두었으며 아들도 낳았다. 세르비아에 정착한 후 침대에 누워 편안히 죽음을 맞이한다. 연락을 끊었던 조르바는 죽어가면서 ‘나’에게 산투르를 선물로 남겨 자신의 죽음을 알린다.
카잔차키스는 「작가의 말」에서 조르바와 크레타에서 보낸 시간을 기록했다고 했다. 또 다른 자료에는 조르바는 카잔차키스가 펠로폰네소스 광산에서 만난 노동자라고도 한다. 조르바는 실존 인물일까? 실존 인물 여부와 무관하게 ‘나’와 조르바와 스타브리다키스는 모두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와 교집합이 있다. 카잔차키스는 한때 사회주의에 심취하였다. 앞에서 썼듯이『그리스인 조르바』의 ‘나’도 광산 채굴에 성공하면 코이노니아Koinonia(협동, 친교, 공동체)를 만들려는 꿈이 있었다. 작가의 꿈이 ‘나’에게 투영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 와 조르바가 방문했던 아토스산의 수도원도 카잔차키스가 방문한 적이 있고, 조르바가 게릴라로 참전했다던 발칸전쟁에 카잔차키스도 자원하여 참전하였다. 이런 점들을 살펴보면 ‘나’와 조르바는 작가의 또 다른 모습으로 보인다. 소설 속의 또 한 명의 등장인물인 스타브리다키스는 카프카스 지역에 고통받는 그리스인을 구하는 특사의 역할을 맡았는데 이 또한 카잔차키스가 실제로 행한 일이다.
카잔차키스는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국가를 위한 일에 목숨을 걸었던 스타브리다키스를 죽게 만든다. 이것은 큰 의미가 있다. 스타브리다키스를 죽임으로서 젊은 시절의 자신도 함께 죽였기 때문이다. 카잔차키스는 오스만 튀르크 제국 지배를 받던 크레타에서 태어나 독립된 그리스 아테네에서 법학을 공부하면서 조국과 민족에 눈을 떴을 것이다. 30대의 카잔차키스는 큰 애국심을 가지고 발칸전쟁에도 참전하고 스타브리다키스처럼 카프카스에 특사로 파견되기도 했다. 조국을 위해 고군분투하던 그였다. 그런 그가 『그리스인 조르바』에서는 조르바의 입을 통해 그런 것들은 다 필요 없다고, 조국 · 민족 · 종교 · 도덕심 · 가치관 등을 따르지 말라고 말한다. 그렇게 자기 마음속에서 웅크려 떨고 있는 스타브리다키스를 죽이고 조르바의 세계를 창조한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살펴보면 카잔차키스는 여러 등장인물을 통해 자신 내면에 존재하는 여러 유형의 인간 간의 갈등을 대립 또는 조화롭게 배치하여 자신의 과거를 정리하고 화해하고자 했을 거라 생각된다.
「작가의 말」에서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자신의 영혼에 족적을 남긴 사람으로 네 명을 말했다. 고대 그리스의 서사시인 호메로스, 프랑스의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 프로이센(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 그리고 알렉시스 조르바이다. 그는 존경하는 그들을 『그리스인 조르바』에 담았다. 먼저 호메로스를 오마주했다. 부활절에 춤을 추는 젊은이들과 리라 연주자의 모습은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에서도 나오는 장면이고, 크레타에 살았던 ‘나’의 외할아버지가 마을에 새로 온 나그네를 찾아 대접한 후 살아온 이야기를 듣는 모습과 비슷한 구절이 『오뒷세이아』에 두 번 나온다. 베르그송과 니체가 바라는 인물은 ‘직관적인 경험’을 중시하여 새로운 삶의 의미를 찾은 ‘초인’인 알렉시스 조르바 그 자체이다. 조르바가 정말로 실존 인물이라면 카잔차키스는 매료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또한 조르바와 ‘나’의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그리스인 조르바』는 크레타에 대한 장엄한 서사시이기도 하다. 크레타의 꽃과 나무, 바다, 바람, 음식, 계절, 민요, 설화, 역사 등 많은 것을 소개한다. 카잔차키스의 자연에 대한 은유는 뛰어나며 크레타의 풍습에 대한 묘사는 섬세하다.
그는 「작가의 말」에서 “나의 삶에 큰 은혜를 베풀어 준 것은 여행과 꿈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크레타에서 헤어지기 전에 조르바가 장난스레 양의 등뼈를 보고 예언한다며 긴 여행 괘가 보인다고 했고 그 말을 ‘내’가 받아 그 긴 여행의 종착지는 무덤이 가득한 대지라고 말했다. 카잔차키스는 결국 중국 여행 중에 백혈병이 악화되어 세상을 떠났다. 마치 그때의 말이 예언이 된 것처럼.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무덤은 크레타 이라클리온의 외진 언덕에 덩그러니 있다. 그의 삶을 대변하는 삐딱한 십자가와 세 줄의 묘비명. 조르바가 외치던 ‘자유’로 카잔차키스는 그의 생을 짧게 정리했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