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생각을 정리하다가 생각이 딴데로 빠져 기독교적 사고관으로 다시 생각해봤습니다.
Godot는 구세주인가? God + ot.
① 그리스도교에서 예수는 ‘어린 양들을 보살피는 선한 목자’이다. 양의 우리를 열어 어린 양들에게 잠자리를 준다. 심부름꾼으로 보낸 양치기와 염소치기는 예수가 보낸 천사들일까? 블라디미르는 심부름꾼 아이에게 고도의 수염 색깔을 묻는다. 가브리엘 천사장에게 하나님의 외모를 물어보듯이.
② 생소뵈르 시장으로 럭키를 팔려던 포조는 시력을 잃었다. 럭키가 아니면 그를 시장으로 안내할 수도 없으니 결국 럭키를 팔지 못한다. 설사 시장에 내놓는다 해도 말을 못 하는 늙은 럭키를 살 사람이 없을 것이다. 갑작스러운 시력 상실은 사람을 물건처럼 팔려던 포조에게 주는 신의 징벌이었을까?
③ 십자가에 매달린 두 도둑 중에 예수를 믿은 자는 구원받았다. 종교의 의미가 퇴색되던 시대에 사뮈엘 베게트는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구원해 줄 ‘구세주’가 오기를 기다려라... 라는 메시지를 독자와 청중에게 던진 것은 아닐까?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극 중에서 수시로 ‘고도를 기다려야지’‘참, 그렇지’를 반복한다. 마치 ‘오, 주여’또는 ‘아멘’을 외치듯이.
④ 다른 언어로 쓰인 네 명의 등장인물 이름도 예수와 성경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블라디미르는 일단 현명한 통치자이니 예수를 나타내고, 타라곤은 기독교인들이 예루살렘으로 성지순례를 떠날 때 신발에 타라곤 가지 한 개씩을 넣고 출발했다고 한다. 체력을 증진해 주는 식물이라 먼 길에 필요한 허브이다. 물이 귀한 고대 서아시아에서는 우물은 중요한 의미이다. 성경에서 우물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과 영적 풍요의 상징을 담고 있다. 행운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예수를 만나 구원받는 거 자체가 행운이다.
사뮈엘 베게트는 삶은 지배하는 것은 고통이라 하였다.
p137 (블라디미르) 우리는 다행히도 그걸 알고 있거든. 이 모든 혼돈 속에서도 단 하나 확실한 게 있지. 그건 고도가 오기를 우린 기다리고 있다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