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성'을 상실한 채 서로를 갉아먹는 삶.
'택배'를 주제로 발랄한 소비자들이 토론 중이다. 솔깃했다. 마켓터, 교사, 학생, 마트직원 등 다양한 직업과 연령대의 토론자들이 '주 7일 배송'을 주제로 솔직한 의견을 주고받았다. 그녀들은 "빠른 택배"가 주는 편의성은 중독될 만큼 매력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빨리 도착했지만 한동안 그대로 나뒹구는 택배상자 너머로 짙은 그늘이 드리워진 노동현실이 언젠가부터 불편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직장에서 바쁘게 일하고 밤늦은 시간 퇴근해서 가벼이 스마트폰 '터치' 한 번으로 필요한 상품을 주문하니 다음날 이른 새벽에 누군가 물건을 놓고 가는 인기척 소리를 듣거나, 장보기가 귀찮을 만큼 지친 자신을 대신해서 누군가가 조그만 한 점이 되어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실시간 배송하는 모습을 스마트폰 화면으로 지켜보면서 문득 이런저런 회의감이 생겨났다는 토론자들의 대화 가운데 한마디가 인상 깊게 와닿는다.
일에 지쳐버린 우리 자신이 또 다른 누군가를 지치게 만들며 그렇게 살아간다는 불편한 실상을 문득 자각하던 그 순간에 절로 터져 나온 속 깊은 한탄은 아니었을까. 참여한 토론자 중 누군가가 이렇게 질문한다.
"택배를 굳이 이렇게 빨리 받아야 하는 이유가 있는 걸까요? 이게 옳은 걸까요?"
요즘 빠른 '배송속도'는 소비시장에서 고객을 향한 기업들의 <진정성>을 상징한다. 고객이 무엇을 원하든 지금 당장, 또는 내일 새벽이라도 문 앞에 대령할 정도로 전심을 다하며 무한한 충성심을 가진 기업임을 의미한다. 손가락 터치 한번만큼 가벼운 나의 욕망에도 낮과 밤, 새벽을 가리지 않고 즉각 반응하며 찾아오는 택배상자는 감탄을 넘어 감동스럽다.
하지만 이런 기업들의 보여주기식 <진정성> 앞에서 관용이란 결코 없다. 택배의 배송속도가 빨라질수록 택배기사들의 생명수 같은 휴식은 점점 소멸한다. '주 7일 배송'과 '빠른 배송'의 원조 격인 쿠팡에서는 최근 5년간 19명의 노동자들이 죽었다. 2024년 5월 28일 쿠팡 남양주 2 캠프에서 심야에 3차례 씩 왕복하며 배송하다가 숨진 4남매의 가장 고 '정슬기'씨(41)씨가 표현한 것처럼 "개처럼 뛰어다니며 배송"해야 하는 상황이 이제는 쿠팡을 넘어 모든 택배회사의 택배기사들에게 현실로 성큼 다가왔다.
빨라지는 배송 속도만큼 나날이 강해지는 택배노동의 강도를 요즘 체감하고 있다. 당일배송율, 사진전송, 시간 내 배송 등등 나날이 쿠팡처럼 택배하고 실행해야 하는 요구사항들은 점점 더 늘어간다. 반면에 휴일, 휴식 등 한숨을 돌릴 여지는 점점 줄어들면서, 곧 우리에게도 '7일 배송'이 현실로 다가올 것이다.
쿠팡에게 택배시장 1위 자리를 빼앗긴 CJ대한통운이 올해부터 '7일 배송'을 선언했다. 언론에는 CJ택배기사들의 '주 5일 근무 보장', '복지혜택 확대' 등을 대대적으로 홍보하지만 택배현장에서 들려오는 것들은 10일 내내 근무하고 한 달에 두 번 정도밖에 못 쉰다는 암울한 소식뿐이다.
휴일 문 앞에 놓인 CJ대한통운 택배기사가 두고 간 택배상자를 물그러미 내려다봤다. 우리는 지금 서로를 갉아먹는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에 이내 가슴이 착잡해진다.
감동적인 '빠른 배송'의 실상은 기업들이 한층 더 소비자들이 돈을 더 쉽게 쓰도록 택배기사 등 노동자의 삶을 갉아서 잘 꾸며놓은 <브랜드 마케팅>에 불과하다. 그런 사실에도 불구하고 설득당한 소비자들에게 옳고 그름은 의미가 없다. 그저 소비에만 몰두하며 충실할 뿐이다. 끊임없이 소비욕망을 자극하는 기업의 잘 꾸며진 <진정성>이라는 무대 위에서 소비를 통해서 자신의 존재가치를 발견하고 증명하려 애쓸 뿐이 다. 문득, 드는 생각이 있다.
우리가 그토록 찾고 갈망하던 진정한 나 자신, <진정성>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진정성>이란 '자신의 진실에 따라 사는 것'이다. 진정성은 우리를 이리저리 밀어내거나 끌어당기는 외부의 힘에 맞서며 삶의 중심을 잡게 해주는 우리에게 아주 소중한 개념이다. 하지만 우리는 자신에게 무엇이 진짜인지를 제대로 구별하지 못할 정도로 혼란한 수렁 같은 세상 속에 내던져져 있다.
오늘날 세상을 지배하는 자는 진실하거나,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아니다. 세상을 지배하는 자는 <진정성>을 사실적으로 능수능란하게 꾸며 낼 줄 아는 이들이다. 그들이 자기 자신을 속이고 다른 이들에게 그럴싸하게 보이도록 잘 꾸며서 마구 쏟아낸 <진정성>의 범람 속에서 우리는 방향을 잃은 채 표류하다가 익사할 지경에 이르렀다.
영국의 저널리스트이자 문화비평가인 '에밀리 부를'은 "자신의 소유욕을 무한하게 충족시킬 수 있다고 설득하는 자본주의 세상 속에서는 우리는 길을 잃고 어느 것이 진짜이고 가짜인지를 알 수 없게 된 채 불안에 떨며 산다"라고 지적한다. 그 불안감은 지금의 나는 진짜가 아니라는 집착으로, 나중에는 '진정한 나'를 찾아야 한다는 강박증이 되어 우리를 삶의 벼랑 끝으로 몰아세운다.
<진정성>이 넘쳐나지만 <진정성>이 상실된 모순의 세계를 살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는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해 꿈을 꾸며, 모든 것을 서슴없이 시도하려 한다.
하지만, <진정성>을 꾸며서 연기하는 이들에게 의지하기를 주저하지 않고,
그리고 타인에게서 나 자신을 발견하려 잔인하게 진정성을 보여줄 것을 요구하고 집착하는 우리들이
과연, 살아가는 동안 '진정한 나'를 찾을 수 있고 '순수한 나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가능은 한 걸까.
그래도 세상에는 무엇이 옳은지를 고민하며 사는 한줄기 빛 같은 목소리들이 있어 슬며시 다시 희망을 가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