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윌리엄스의 장편소설 <스토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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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말부터 일요일과 공휴일에도 일을 한다. 평소처럼 일요일 아침에 택배를 하러 나선 나에게 전날까지 읽던 책 한 권이 따라붙었다.
그는 책을 펼쳤다...
그는 손가락으로 책장을 펄럭펄럭 넘기며 짜릿함을 느꼈다...
짜릿한 느낌은 손가락을 타고 올라와 그의 살과 뼈를 흝었다...
손가락에서 힘이 빠지자 책이 고요히 정지한 그의 몸 위를 천천히, 그러다가 점점 빨리 움직여서 방의 침묵 속으로 떨어졌다.
숨을 거둔 그의 가슴 위로 스러져 어두운 바닥으로 사라진 책을 마주하듯, 나는 깊은 먹먹함에 휩싸여 읽던 책표지를 가만히 쓰다듬었다.
편안한 삶이란 과연 무엇일까?
딸 그레이스는 죽어가는 아버지 스토너 곁에서 말한다.
"아버지가 가엾어요. 편안한 삶이 아니었잖아요, " 그는 잠시 생각해 본 뒤 입을 열었다. "그랬지. 하지만 나도 편안한 삶을 원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암으로 인한 극심한 통증 속에 죽어가면서 65세의 스토너는 계속 반복된 질문을 한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그는 자신에게 물었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그는 생각했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그는 다시 생각했다.
우리는 항상 세상에게서 실제로는 있지 않은 것, 세상이 원한 적이 없는 것을 늘 기대하며 산다.
스토너는 우정을 원했다. 친밀한 우정을 나눌 두 친구를 얻었다. 그중 한 친구는 그 존재가 알려지기도 전에 무의미한 죽음을 맞이했다.
그는 혼자 있기를 원하면서도 결혼을 통해 다른 사람과 연결된 열정을 느끼고 싶었다. 그래서 아내 이디스를 만나 열정을 느끼기도 했지만,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둘 사이의 열정은 사늘하게 죽어버렸다.
그는 사랑을 원했으며, 실제로 사랑을 했다. 하지만 불륜이라는 비도덕적이고 세속적인 시선과 압력 속에 사랑을 포기하고 진정으로 사랑하는 여인 캐서린을 떠나보내야만 했다.
그는 또한 가르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실제로도 대학교수가 되었지만, 거의 평생 동안 무심한 교사였음을 그 자신도 알고 있었다. 언제나 알고 있었다.
자신의 생이 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과연 그랬던 적이 있기는 한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자신도 모르게 떠오르곤 했다. 이런 의문은 늘 슬픔도 함께 가져왔다. 하지만 그것은 그 자신이나 그의 운명과는 별로 상관없는 일반적인 슬픔으로 늘 가슴 밑바닥을 적시고 있었다.
그는 고지식하리만큼 성실하게 살면서 자신의 삶을 관조하며 지혜를 생각했지만 오랜 세월의 끝에서 발견한 것은 오직 <무지>뿐이었다. 다양한 지식과 배움까지도 무익하고 공허하며, 궁극적으로 배우려는 무수한 몸부림 같은 시도에도 우리의 삶이란 변하지 않는 무(無)로 쪼그라드는 사실만을 확인할 뿐이었다.
존 윌리엄스가 쓴 장편소설 <스토너>는 1965년도에 출간된 뒤 거의 50년이 흐른 뒤에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소설 속 주인공 스토너 역시 살아생전에 결코 주변 사람들의 관심 영역 밖의 삶을 살았다.
학자로서 명성도, 교육자로 학생들의 인정도, 사랑에도 성공하지 못했다. 그저 눈앞에 펼쳐진 수많은 인생의 난관들을 조용히 인내하고 참아내며 산다. 사람들은 그런 그의 삶을 "실패"로 낙인찍고 슬프고 불행한 삶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작가는 그의 삶은 아주 훌륭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가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나은 삶을 살았던 것은 분명합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그 일에 어느 정도 애정을 갖고 있었고, 그 일에 의미가 있다는 생각도 했으니깐요."
스토너는 지독스레 그의 삶 속에서 고통을 주는 악의 무리들(아내 이디스, 동료교수 로맥스, 학생 찰스 워커)을 오로지 권태와 무관심한 태도로 저항할 뿐이다. 삶의 상황들은 스토너는 계속 참기만 하는데 그들은 승승장구할 뿐이다.
우리의 실제 삶이 그러하듯 상황을 반전시켜 주는 극적인 요소는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작가는 스토너의 삶이 행복했다고 한다. 보편적으로 우리가 지닌 행복관이나 편안한 삶에 대한 시각과는 전혀 다른 풍경의 또 다른 세상이 있음을 작가는 보여준다.
내 삶이 살만한 가치가 있는 걸까. 서글픈 의문에 휩싸인 채 스토너는 저녁강의를 마친 뒤 연구실에 돌아와 홀로 책상에 앉았다. 열린 창문을 통해 겨울밤의 침묵을 듣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그는 창가에 꼼짝도 않고 앉아 있는 몸에서 자신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 순간 모든 것이 그러니깐 그 하얗기만 한 풍경과 나무들과 높은기둥들과 밤과 저 멀리의 별들이 믿을 수없을 만큼 작고 멀어 보였다. 마치, 그것들이 무(無)를 향해 졸아들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이상할 정도로 내키지 않는 안도감을 느끼며 다시 책상 위의 불을 켰다.
삶 속에서 편안함이란 삶을 향한 우리의 기대를 접을 때, 그리고 우리가 기대하는 것들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순간에야 비로소 우리의 메마른 가슴을 촉촉하게 적시 운다.
그제야 우리는 안도하며 눈앞에 펼쳐진 이런저런 삶의 일더미들을 헤집고 처리할 힘이 생긴다. 모질고 부당하게 핍박해 오는 삶의 모든 시련들에 맞서 스토너가 그랬던 것처럼 권태와 무관심으로 흘려버릴 용기를 가지게 된다.
내 삶은 살만한 가치가 있는 걸까.
철저하게 잊히고 묻히는 아웃사이드 인생이라는 서글픔과 고통이 피워 오르는 순간에도,
휴일배송을 하는 일요일 이른 아침나절이지만 나는 한줄기 위안과 평온함을 진하게 느꼈다.
삶의 모든 고통과 삶을 향한 모든 기대들이 무(無)를 향해 졸아들고 사그라지기를, 한없는 평안함만이 마음속에 가득하기를 갈망하면서 그의 책을 영면에 든 스토너의 가슴 위로 조심스레 되올려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