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하는 것들의 아우성, 삶의 매 순간 속에 새기는 영원함.
팔월에도 연일 폭염이다.
대차 한가득 택배를 싣고 배송처를 향한다. 퍼즐처럼 반듯하게 맞물린 회색블록 보도 위를 서둘러 지나치는데 나무정자 옆 무성한 나무들 속에서 강렬하게 매미소리가 터져 나왔다.
땡볕에 달궈진 시멘트 블록의 새하얀 열기에 정신이 아찔한데 거친 소나기 같은 매미소리가 어지러이 귓전을 때려대니 발걸음이 흔들렸다. 자그맣고 잔잔히 시작하더니, 대차소리가 다가설수록 녀석들의 울음소리가 더욱더 강렬해졌다.
"드르륵" "드르륵"
"찌지찌찌, 맴 매애앰, 맴맴."
대차소리, 매미소리, 그리고 열대야로 인해서 새벽잠을 설친 탓에 힘겹게 터져 나오는 나의 숨소리가 뒤범벅된 채 온 세상이 빙글빙글 돌아간다. 매미들은 오 년, 길게는 십칠 년을 땅속에 갇혀 지낸다. 그러고는 기껏 한 달 남짓 밝은 햇살아래에서 살아갈 수 있었다. 이런 기막힌 자신의 처지가 억울해서인지 매미들은 밤낮으로 처절하게 울어댄다. 땡볕 아래에서 거친 대차소리 위로 힘겨운 숨소리를 덧얹으며 배송하던 우리는, 한없이 부조리한 이 땅 위에서 그렇게 녀석들과 삶을 향해 아우성치고 저항하는 한 무리가 자연스레 되어버렸다.
사업에 실패하고 회복하는데 7년이 걸렸다. 모든 것을 쏟아부은 것들이 눈앞에서 허무하게 무너져 내리고, 구청에 신고한 지 10분도 채 안되어 손에 쥐어진 폐업증명서 한 장만큼이나 나의 수고로움은 가볍고 허망했다. 깊은 절망감이, 빈곤이 의미하는 죽음 같은 두려움이 거대한 격랑처럼 나의 전부를 뒤덮는 그 순간에도, 이상하게도 살고 싶어 나는 꿈틀거리고 있었다. 무엇을 해야 할지, 어디로 향해야 할지 아무것도 몰랐지만 그저 살아야 한다는, 일생동안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나의 내면 깊숙하게 감춰진 삶을 향한 강렬한 욕망의 실체를 처음으로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식으로든 내가 여기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행동으로 증명하는 것이다. 삶이 야박하고 치졸하게도 그것을 증명할 시간을 단 일분, 일초 밖에 허용하지 않아도 우리는 여기 이렇게 존재함을, 살아있음을 어떻게 하든 동동거리며 알려야 했다. 하챦고 시답잖은 소리라도, 그것이 매미소리가 되든, 택배 대차소리든 내질러야 했다. 그렇게 이 땅 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자신만의 아우성을 내지르며 살아내고 있었다.
매미들이 또 울어댄다. 땡볕 아래에서 더 강렬했던 녀석들의 울음소리가 깊은 적막에 뒤덮인 새벽녘에도 들리는 순간, 삶을 향한 애착이 이토록 강렬한 걸까 하는 생각에, 그만 목이 메이고 한없이 숙연해진다.
아무리 온몸을 팔토시와 얼굴가리개, 그리고 챙 넓은 모자로 가려도 강렬한 햇살은 나의 피부를 아프게 했다. 하지만 그런 통증보다 더 강렬하게 나를 아프게 하고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이 존재했다. 내 곁, 가까이에서 각자의 삶을 향한 강렬한 애착으로 뿜어내는 타인들의 몸짓과 아우성이다.
외부에서 들려오는 무수한 몸짓과 소리들에 반응하면서 내 안에 생겨나는 감정들과 그것들이 불지피고 피워내는 수많은 생각의 격랑들이 날카로운 고통의 가시가 되어 나의 피부 속 깊이 박힌다.
애써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려 '억압'하고, 때론 서운함을 격한 감정으로 '표출'하고, 어떤 때는 저 멀리 나의 시선을 돌려 '회피'하며 애써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서로 다른 아우성들이 충돌할 때마다 우리는 서로에게 깊은 상처를 주고받으며 멀어져 간다. 그렇게 받았던 상처, 과거의 상처는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쉽게 아물지 않는다.
택배를 마친 후 끙끙 앓는 아내의 목에 파스를 붙여주던 나는 힘들지 않냐며 우리가 가는 이 길이 맞는 걸까라며 안쓰럽고 미안한 마음을 담아 물었다. 아내는 "사람보다 차라리 날씨와 싸우며 사는 이 삶이 오히려 더 마음 편하고 홀가분할 수도 있다"라고 대답했다.
택배 하는 7년 동안 우리는 사람들이 아니라 비바람, 폭염, 추위 등 하늘과 싸우듯 상대하며 그 속에서 오히려 더 많은 것을 깨달아가는지도 모르겠다. 수시로 변하는 기후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우리에게 닥친 상황들에, 롤러코스터 같은 변화에 적응하고 순응하는 법을 하나씩 어렵게 체득해야 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사람과 상황에 눈길을 주지 않고 그저 우리가 상대할 하늘과 현실에 집중하며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을 즐기고 음미하는 법을 배워가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끝없는 절망과 암담함이 엄습할 때마다 곁에 있는 서로를 꼭 부여 쥔 채로 가족이라는 존재가치를 나날이 새롭게 깨달아 가면서 말이다.
어쩌면 우리는 온몸으로 평범한 일상의 매 순간마다 삶의 영속성을 새겨 넣는 법을 아주 서서히 알아가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9월이 가고, 10월로 접어들자 매미소리는 이제는 아득히 사라졌다.
하지만 삶을 향한 열망들이 느껴지는 순간이면 나의 귓가에는 매미소리가 다시금 들려온다. 삶을 향한 강렬한 아우성이, 평범한 일상의 시간 위에 고귀한 <삶의 흔적>들을 영원히 새겨 넣으려는 그 동동거림이 강렬하게 다가선다.
또 매미가 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