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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캐스트 Nov 06. 2024

또 누수라고요?

Part23. 아래아랫집의 가해자 찾기

장마와 함께 느닷없이 찾아온 누수를 해결한 지 딱 1년이 지났다.


구글아, 안 알려줘도 돼...


구글 포토에서 '1년 전 추억'이라며 알려줄 때만 해도 남편한테 캡쳐본을 보내며 이게 벌써 1년 전이라며 웃고 넘길 때였다.

(작년 : 누수가해자가 되었습니다)




띵ㅡ동
관리소예요.



여느 때처럼 작은 방에서 업무를 보고 있던 날, 관리소에서 찾아왔다. 노이로제 걸릴 것 같은 그 단어, '누수'를 언급하시며..


말씀하신 내용은 이렇다. 7층 세탁실 천장에서 물이 흥건히 떨어져 피해를 봤으며 8층으로부터 물이 샌 점은 확인했으나, 8층 천장에도 물자국이 있어 9층인 우리집도 확인차 방문하셨다는 것.


한숨부터 나왔다. 아니 작년엔 거실 쪽 베란다에서 누수가 나더니 이번엔 세탁실이라고요...? 아니 여기는 여름만 되면 누수가 나나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상했다. 작년 누수와는 다른 점이 있었다. 작년엔 누수 전 날 우리집 베란다 바닥에 물이 찼었던 전조증상(?)이 있었다. 하지만 세탁실은 아무런 증상이 없었을뿐더러, 구축아파트라 바퀴벌레 나오는 것이 무서워 하수구에 세탁기 노즐과 함께 트랩을 설치해 완전히 막아두었다. 또한 세탁실은 건식으로 사용하고 있고 바닥 물청소를 해본 적도 없다. 게다가 누수가 일어났다는 날짜 앞뒤로 세탁기를 돌린 적이 없었다. 

2년 연속 누수의 억울함을 담아 관리소 직원 분께도 설명을 드렸고 잠시 살펴보시던 관리소 직원분도 여긴 바닥이 메말라있다며 아랫집과 다시 얘기해 보신다며 돌아가셨다.


그럼에도 왠지 모를 불안함이 있었다. 누수라는 것이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배수관 안쪽이나 타일 안쪽에 크랙이 있을 수도 있고 육안으로 확인하기 힘든 여러 가지 변수가 있기 때문이다.


퇴근 후 돌아온 남편과 함께 혹시 몰라 최근에 들은 운전자보험 약관을 살펴봤다. 작년엔 보험이 없어서 자비로 모두 지출했지만 올해는 다르다. 운전자보험에 일상배상책임보험을 추가했기 때문!

신나게 보험 약관을 펼친 지 2분이 지났을까. 신남은 바로 절망이 되었다. 보험 시작 3개월 이후부터 배상 적용을 받는다고 쓰여있어 아직 만 2개월인 우리는 적용이 어렵다는 것.. 우리 뭐 누수랑 원수 됐니..?




3일 후 관리소에서 다시 방문하셨다. 7층의 누수 원인은 8층이 확실하지만, 8층의 누수자국의 원인을 다시 보셔야 한다고. 한 분이 우리집 하수구에 물을 보내고 다른 한 분이 아랫집 세탁실 천장을 보시며 실험(?)이 시작됐다.

다섯 바가지쯤 들이부었을까. 아래층에서 이제 그만해도 된다는 싸인을 보내셨다. 물 한 방울도 떨어지지 않았다고 했다.


그제야 긴장이 풀렸는지 아랫집에선 왜 우리집을 물고 늘어졌는지 궁금했다.


"아랫집에서 말한 누수 사진 좀 보여주세요."

- 주방 천장부터 자국이 있는데 기름 자국인지 물 자국인지 정확하지 않고 오래전에 생긴 자국처럼 생겨서 최근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그럼 왜 저희 집을 보자고 하신 거예요?"

- 7층에서 지금도 계속 피해를 보고 있어서 빠른 조치를 원하는데 8층에서 본인들도 천장이 젖었다고 공사를 미루고 있어서 확인이 필요했다.



8층 이웃님, 작년 일 기억 안 나시나요..

저희 집에는 추석 전에 처리해야 한다고 빠르게 조치해 달라고 하셨으면서, 왜 이번엔 빨리 처리 안 하시나요. 그리고 왜 일어나지 않은 누수를 만드시나요.





놀라고 억울한 건 둘째치고 뭐 어쨌든 결론적으로는 다행인 일이다. 하마터면 2년 연속 누수가해자가 될 뻔했다. 아랫집도 작년의 조마조마했던 우리 마음을 조금은 헤아리지 않았을까.


구축아파트에 살면 언제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하나 보다. 이제 곧 찾아올 겨울엔 작년의 난방비 폭탄을 대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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