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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보다 중요한 건 미완성의 용기

by 기공메자

<작가의 생각 한 줄>

“성공이 삶의 목적이 아니라면, 우리는 미완성인 자신을 믿는 용기부터 배워야 한다.”


나는 36년 동안 소방관으로 살아왔다. 그 시간은 불길과 연기, 구조의 절박함 속에서 생사를 가르는 결단을 내려야 하는 나날이었다. 단 한 번의 실수도 허락되지 않는 현장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단 하나였다. 지금 이 순간 내게 주어진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최선으로 대응하는 것이었다. 그 순간의 선택이 누군가의 삶을 바꾸기 때문이다.


정년퇴직 이후, 나는 글을 쓰는 작가로 또 다른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불을 끄던 손에 펜을 쥐고 살아간다는 것은 전혀 다른 세계였다. 그러나 놀랍게도 삶은 언제나 같은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왜 자꾸 완성을 꿈꾸는가. 꼭 성공해야만 존재의 의미가 있는가.”


세상은 끊임없이 성공을 강요한다. 더 많이 소유하고, 더 높은 자리에 올라야 하며, 누군가가 부러워할 만한 업적을 이루어야 한다고 말한다. 스스로를 증명하기 위해 끝없이 달리게 만든다. 그러나 그 길의 끝에는 지친 얼굴이 있고 숨 쉴 틈을 잃어버린 마음만이 남는다.


나는 소방관 시절에도 완벽함을 추구하려 노력했다. 그러나 현실은 언제나 그 완벽함을 비웃었다. 화재는 매번 다른 양상으로 번졌고, 사고는 예상치 못한 방향에서 찾아왔다. 현장에선 오로지 배우고 적응하며 다시 나아가는 것만이 해답이었다.


지금의 삶도 다르지 않다. 글을 쓰는 하루는 늘 미완성이다. 오늘 쓴 문장은 내일 보면 부족하고, 다시 고치고 다듬고 싶은 마음이 올라온다. 이 불완전함은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였다. 완벽함은 멈춤이고, 미완성은 움직임이었다.


많은 이는 이렇게 말한다. “언젠가는 완성된 인생이 올 것이다.” 그러나 나는 수많은 죽음을 마주하며 깨달았다. 인생은 완성되는 순간이 아니라 어느 날 마지막 숨을 쉬는 그 순간을 끝으로 마침표가 찍힌다.


완성은 죽음의 언어이고, 미완성은 삶의 언어이다. 우리가 걷고, 실수하고, 다시 일어나며 배우는 동안 인생은 계속 수정되는 원고처럼 이어진다. 그 모든 과정은 결코 실패가 아니라 살아 있다는 증거이다.


완벽함을 좇는 순간 우리는 자신을 잃는다. 남의 기준으로 만든 목표, 남의 시선에 의존한 성취, 남의 인정에서 비롯된 기쁨은 결국 모래성과 같다. 비가 오면 무너지고, 바람이 불면 흔들린다. 그러나 작은 일상 속에서 발견하는 기쁨, 소소한 행복을 놓치지 않는 삶은 결코 깨지지 않는다.


나는 현장에서 수많은 마지막 순간을 지켜보았다. 그때마다 느낀 것은 단순했다. 사람은 “무엇을 이루었는가”보다 “어떻게 살았는가”로 기억된다. 불안 속에 움켜쥐며 살아간 사람보다 마음의 평화를 품은 사람의 얼굴은 마지막 순간에도 고요했다.


우리는 늘 성공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성공”이라는 단어는 끝없이 기준을 바꾼다. 회사에서 성공하면 재산을 더 원하고, 재산을 얻으면 명예를 원하며, 명예를 얻으면 남의 인정을 원한다. 완벽함은 끝이 없다. 그 길은 스스로를 끊임없이 불행하게 만드는 무한 루프이다.


반면 미완성의 삶을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자신의 속도를 찾는다. 넘어져도 괜찮고, 실패해도 괜찮으며, 천천히 걸어도 결국 제자리에 도착한다. 성공은 목적지에 도착하는 일이 아니라 내가 내 발걸음으로 걸어온 길을 사랑하는 일이다.


나는 이제야 깨닫는다. 삶은 끝내 미완성이며, 그 미완성 속에서 우리는 이미 충분히 존귀한 존재이다. 인생은 완전을 향해 달려가는 경주가 아니라 지금의 나를 살아내는 들숨과 날숨의 연속이다. 오늘의 나는 또 하나의 미완성 단락을 써 내려간다. 그 문장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기를 바라며, 불완전함 그대로의 나를 기꺼이 받아들인다.


<독자에게 전하는 메시지>

지금의 당신이 미완성이라도 괜찮다. 완벽함을 향한 끝없는 추구보다 오늘의 한 걸음을 온전히 살아내는 사람이 결국 가장 먼 곳까지 도달하게 된다.


<이웃의 공감 댓글>

작가님, 제 마음을 불러세우는 구절이 많아서 내면에서 무어라, 무어라 말을 걸어옵니다. 성공을 했는지, 얼마나 높이 올라갔는지, 이것이 삶을 판단하는 기준이라면 저는 아마 저 멀리 뒤편에 있을 것 같습니다. 육아를 시작하며 일을 쉬는 동안, 동기는 같은 직장에서 팀장급으로 승진해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친정어머니가 가까이 있어 아이를 전적으로 케어해 주었기에 일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거든요. 하지만 동기를 만나러 갈 때마다, 그 동성은 늘 일에 치여 표정이 어두워 보여 마음이 짠했습니다. 만약 제가 아이를 낳지 않았거나, 육아라는 과정에서 부딪치는 갈등 속에서 제 내면을 바라보지 않았다면 아마 저 역시 더 어두운 얼굴로 살아가고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감히 말하자면, 세상의 잣대는 발로 걷어차고 오직 내면의 소리를 들으며 살아가고 있느냐는 질문이 주어진다면 망설임 없이 “네.”라고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누군가는 내면을 바라보고 살아간다고 해서 무슨 수가 생기느냐고 반문하겠지만, 그럼에도 ‘나를 모두 소진하면서까지 해온 일’에는 의미가 없었음을 몸으로 깨달았기 때문이겠지요. 작가님, 저를 깊이 돌아보게 해주신 글, 그리고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해주신 글,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비록 세상이 말하는 성공과는 거리가 먼 자리와 위치일지라도, 그럼에도 개의치 않고 오늘의 순간들을 즐겁게 만나고 감사히 살아가겠습니다. 작가님, 오늘도 감사합니다.


<작가의 답글>

따뜻한 글 나눠주셔서 제가 오히려 위로를 받습니다. 세상의 잣대와 비교가 아닌 내면의 소리를 따라가는 용기 있는 걸음이 정말 귀하고 아름답습니다. 말씀처럼 오늘의 순간을 감사히 살아내는 그 모습이야말로 진짜 성공이라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친동생 같은 소중한 글친구가 되어주셔서 언제나 감사히 생각합니다.


<작가노트>

이 글은 소방관으로 살던 시간과 작가로 살아가는 지금을 연결하며, 완벽함을 향해 달리던 과거의 나를 내려놓고 미완성의 자신을 받아들이게 된 과정에서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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