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생각 한줄>
"질문하는 사람만이 자기 삶의 방향을 다시 그릴 수 있다."
삶에는 정답이 없다. 누구도 우리의 인생에 정확한 해답을 내려줄 수 없고, 누군가의 답이 곧 내 답이 될 수도 없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정답을 찾아 헤매는 일이 아니라, 올바른 질문을 던지는 태도였다.
나는 오랫동안 소방관으로 살아왔고, 지금은 글을 쓰는 작가로 네 번째 삶을 살고 있다. 태어나며 첫 번째 삶, 연탄가스 중독 후 두 번째 삶, 차량 20미터 추락 사고 후 세 번째 삶, 그리고 뇌출혈을 딛고 다시 일어난 네 번째 삶. 수많은 위기 속에서 나에게 남은 것은 ‘정답’이 아니라 깊은 ‘질문’이었다.
“나는 왜 이 길을 선택했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무엇을 남길 것인가?”
이 질문들은 내 삶을 흔들었고, 동시에 나를 지탱해 주었다. 나는 그 질문들 덕분에 다시 살아갈 이유를 찾고, 방향을 고칠 수 있었다. 질문은 우리 자신을 마주하게 한다. 매일 바쁘게 살아가며 회사 일, 가정사, 사람들 사이의 역할에 휩쓸리다 보면 정작 자신에게 질문하는 시간을 잃어버리기 쉽다. 그러나 진짜 성장은 자기 자신에게 묻는 순간에서 시작된다.
“나는 지금 행복한가?”
“오늘의 선택은 내 삶을 어디로 이끌고 있는가?”
“나는 어떤 가치를 지키며 살고 있는가?”
이 작은 질문 하나가 삶의 방향을 바꾼다. 질문이 없는 하루는 표류하는 배와 같지만, 질문이 있는 하루는 나침반을 손에 쥔 것과 같다. 질문은 고전 속에서도, 타인과의 소통에서도 발견된다. 공자, 맹자, 아우구스티누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이들의 글은 답을 주기보다 질문을 던지게 한다.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물음이 마음 속에 깃들 때, 삶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또한 온라인에서 만난 이웃들과의 대화는 예상치 못한 질문을 불러온다. 내 글에 달린 댓글 하나가 새로운 통찰을 깨우고, 타인의 고민을 들으며 나의 삶 역시 조용히 돌아보게 된다. 질문은 혼자서도 할 수 있지만, 누군가와 함께 나눌 때 더 깊어지고 단단해진다.
그러나 결국 가장 중요한 질문은 ‘매일 나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타인의 언어를 빌리기 전에, 고전을 펼치기 전에, 먼저 나에게 묻는 사람만이 자신의 길을 잃지 않는다.정답 없는 세계에서 확실한 길을 찾는 방법은 단 하나, 질문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질문은 삶을 흔들지만, 동시에 삶을 세운다. 질문은 나를 넘어뜨리지만, 결국 다시 일으켜 세운다. 오늘 하루, 스스로에게 단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보자.
“나는 지금 제대로 살고 있는가?”
그 질문 하나가 여러분의 삶을 더 깊고 의미 있게 만들어 줄 것이다. 나는 오늘도 1~2개의 질문을 적으며 나만의 정답을 찾아가고 있다. 여러분은 어떤 질문을 던지고 있는가?
<독자에게 전하는 메시지>
질문은 내면의 길을 밝히는 가장 작은 등불이다. 그 등불을 들고 하루를 걷다 보면, 어느 순간 나만의 길이 선명해진다.
<이웃의 공감 댓글>
주진복 작가님, 저도 작가님께서 하시는 질문을 거의 매일 스스로에게 던지며 지내는 듯합니다. 알 수 없는 질문, 정답이 없는 질문, 누구에게 물어보기 어려운 질문들. 결국 그 답은 제가 스스로 찾아갈 수밖에 없는 듯합니다. 언젠가 함께 만나 이런 질문에 관해 이야기 나눌 수 있다면 작가님 말씀처럼 정말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독서 모임도 함께 할 수 있다면 더없이 기쁠 것 같습니다. 늘 품고 있던 제 바람을 가을 바람에 실어 살짝 흘려 보냅니다. 오늘도 작가님의 질문과, 작가님의 말씀과, 작가님의 마음과, 작가님을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작가의 답글>
님의 따뜻한 마음이 담긴 글에 저도 깊은 울림을 받습니다. 정답 없는 질문을 품고 살아가는 그 과정이 결국 우리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 주는 것 같아요. 언젠가 함께 모여 책과 삶, 그리고 질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날이 오길 저도 바래 봅니다. 늘 응원과 사랑을 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작가노트>
이 글은 나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들을 차분히 되짚으며 쓰게 된 글이다. 정답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언제나 ‘바르게 묻는 힘’임을 다시 깨닫는 시간이었다. 돌아보면 내 삶을 지탱해 준 것도 결국 그 질문을 놓지 않으려는 태도였다. 앞으로도 계속 질문하며, 그 물음 속에서 더 깊은 나를 발견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