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준범의 어두운 과거
[얘들아! 이러지 마!] [얘들아! 이러지 마!] [돌려줘] [돌려줘] 킬킬거리는 아이들 틈에 영희가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분주하다.
영희를 에워싼 일진 녀석들의 이번 타깃은 영희로 정해진 듯하다.
영희의 말을 계속 따라 하던 녀석이 슬슬 흥미를 잃었는지 가지고 있던 영희의 가방을 내동댕이치고는 발로 ‘툭’ 걷어찼지만, 여전히 돌려줄 마음은 없어 보였다.
[그러니까 무릎 꿇고 빌어 보라고~] [이러지 마!~] [안 되겠다.. 얘들아!~ 이 고아 년 버릇 좀 고쳐줘야겠다.] 킬킬거리던 학생 중 두 명이 영희 뒤로 돌아가더니 양손을 하나씩 잡은 뒤 공사장 안쪽으로 조금 더 깊숙이 들어갔다.
발버둥 치던 영희의 오른쪽 신발이 벗겨졌지만, 누구도 주워줄 맘은 없어 보인다.
오히려 뒤따라오던 미진이 뒤집어진 채 나뒹굴던 외로운 영희의 신발을 건물 밖으로 힘껏 걷어찼다.
[야! 이영희 네가 뭘 잘못했는지 몰라?] [왜? 이래….] [야! 내가 물어보잖아! 이게 죽으려고... 야! 그냥 좀 맞자 맞다 보면 기억나겠지.] 그때였다. 무리 중 유일한 남학생이었던 준범이 소리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만해!] [아이 깜짝이야. 야! 넌 또 뭐냐?] [그만하라고] [하~ 뭐냐 너 제랑 사귀냐?] [그만하자] [이것들이 쌍으로 미쳤나! 같은 고아라고 마음이 끌리냐? 그런 거야? 정신 차려 이 새끼야] 앙칼진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사방으로 흩어지자, 어둠 속에 숨어있던 또 다른 무리가 준범을 에워싼다.
준범이 아무리 싸움꾼이라 하더라도 족히 서른 명은 넘어 보이는 상대를 그것도 무장이 돼 있는 상대를 혼자의 힘으로 감당할 순 없는 노릇이다.
[야! 박준범 계속 떠들어봐!] [야! 신명희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라. 나! 박준범이야!] [하하! 하하하! 그래서? 그래서 뭐? 야! 개준범이 너도 죽고 싶지!? 그런 거지? 짖어봐! 그럼 살려줄게 이래서 부모 없는 것들은 상대하면 안 되는 거야]
순간 준범의 낯빛이 어두워졌지만, 눈빛은 오히려 붉게 빛났다.
움켜잡은 두 손의 심줄이 바쁘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을 때 어둠 사이로 이형수의 얼굴이 보였다.
둘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자신 앞의 일진 무리를 한 명씩 쓰러뜨렸다.
아무리 무장한 일진이라도 상대는 여자였다.
힘으로 준범과 이형수를 상대하기란 역부족이었다.
더욱이 준범과 이형수는 타고난 싸움꾼이었다. 서른 명은 몰라도 열다섯 남짓으로는 이들을 상대로 이길 확률이 그리 높지 않다.
이형수와 준범은 마치 춤을 추듯 날렵했고 둘의 움직임은 흡사 대호연(大虎燕) 같았다.
큰 호랑이 두 마리가 제비처럼 빠르게 움직이자 서른을 넘던 일진 무리가 삽시간에 쓰러졌다.
숨을 헐떡이던 이형수가 주저앉아 숨을 고르고 있는 준범을 향해 걸어오며 어깨를 가볍게 툭 치며 자리를 벗어났다.
[야! 박준범 이제 빚 다 갚았다.. 다신 보지 말자]
# 환영자 (歡迎者)
종합병원 응급실에 환자 하나가 실려 왔다.
[이번이 벌써 몇 번째야!] [모르겠어요 요즘 이런 환자 너무 많아요.]
[경찰에 신고는 했나요? ] [예 아마 조금 있으면 도착할 겁니다.]
[여보세요 정신 차리세요.] [제 말 들려요?] [소용없어요 이송 중에 뺨도 때려봤어요]
순간 의사가 구급대원을 노려본다. [어쩔 수 없었어요] [확인은 해야 하잖아요]
의사는 말없이 한숨을 내쉰다. [일단 병실로 옮기세요.] [예, 자~ 서두릅시다.]
이번에는 20대 남성이다. 얼마 전부터 이상한 환자들이 들어온다.
하나같이 멍하고 묻는 말엔 대답도 하지 않고 뭐랄까 뭐에 홀린 사람 같다고 해야 하나
어떻게 보면 영혼이 없는 사람 같다.
살아있긴 하지만 살아있는 사람 같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빈 껍데기 같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런 환자들이 부쩍 많이 늘었다.
처음엔 젊은 10대와 20대가 대부분이었는데 요즘 들어 50대 어떨 땐 노인들도 간혹 같은 증상으로 실려온다.
눈매가 갸름하고 왼쪽 눈썹이 반으로 잘린 사복 차림의 형사가 다급히 뛰어와 이제 막 이동을 시작한 환자와 의사 사이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며 중얼거렸다.
[이번에도 늦었군... 현장을 직접 확인하고 싶었는데...] [그나저나 이번에도 젊은이네... 젊은 사람만 그러는 건가?] 이 형사가 말했다.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얼마 전부터 나이가 다변화하고 있어요]
[이유를 모르겠네...] [혹시 다른 증상이나 변화? 뭐 참고할만한 특이점이 있나요?]
[아뇨] [뭐든 있었으면 좋겠네요.]
이 형사와 최 박사는 새로 들어온 환자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눈다.
[분명히 뭔가 있는 것 같은데 도무지 알 수가 없네요]
[일단 사건접수가 된 이상 찾아봐야지요] [휴~]이 형사의 깊은 한숨에서 그간의 고단함을 느낄 수 있었다.
[피곤하시면 잠시 쉬었다 하시지요!] [하하하! 최 선생님 깨서도 피곤하다고 환자 대충 보시지 않잖아요] 멎적어하는 최 박사를 뒤로하고 이 형사가 돌아 나왔다.
이 형사가 차에 타려고 문 손잡이를 잡는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예 근처에 있으니 곧 가겠습니다]
멈춰진 이 형사의 차량 뒤로 PC 방이 보인다.
[드디어 현장을 보게 되는군] [언제부터 이러고 있습니까?] [오늘 온종일 여기 앉아서 게임을 하고 계셨는데 계속 욕을 하는 겁니다. 그러더니 1시간 전부터 욕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아 봤는데 멍하니 화면만 보고 계시더라고요.] [처음엔 휴대전화로 동영상 보시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옆 테이블 청소하려고 갔다가 힐끗 봤는데 저러고 있잖아요.]
[그때 마침 형사님께서 주셨던 명함이 생각나서 연락드렸어요] [119 부르겠습니다.]
[어라! 이 사람은!] [야! 준범아!] [이 자식 뭐야 네가 왜 여기에 있냐?] [야! 정신 차려]
10년이 지났지만 이형수는 준범을 한눈에 알아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