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의 어깨 위로 늦은 햇살 하나가 조용히 내려앉았다
빛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느렸고, 온기라고 하기엔 다소 쓸쓸했다
아마도 노인과 함께 늙어간 햇살이었나 보다
몸이 기억하는 계절들, 이름도 없는 감정들, 그리고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말들처럼
허리 굽은 햇살은 오늘도 어김없이 노인의 어깨 위에서 함께 늙어갔다
노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말 대신 주머니 속에서 무언가를 만지작거렸다
몇 푼의 동전이거나 젊은 날의 흔적일 수도 있다
혹은 기억조차 가물거리는 장성한 자식의 옛 모습일지도 모른다
그것이 무엇인지 나는 모른다, 단지 추측이 타올랐다 꺼졌을 뿐이다
마침내 주머니를 빠져나온 손이 심하게 굽어 있었다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 위에 찡그린 눈동자들이 머물다 사라졌다
하지만 그들은 몰랐다. 손마디 사이로 미처 전하지 못한 사랑이 남아 있었다는 것을
리어카를 끄는 노인의 걸음이 느렸다
그러나 느리다는 건 늙었다는 뜻이 아니라,
먼저 지나온 시간의 무게이며 오늘도 쌓여가는 이야기들이다
그의 걸음 뒤를 따르는 먼지마저 이야기처럼 보였다
다시금 햇살이 그의 등을 더듬고,
바람은 노인의 등을 떠밀었다
노인의 세상이 잠시 숨을 고르다 이야기를 만들며 다시 걸었다
그가 지난 자리엔 이상하리만치 오랜 냄새가 풍겨왔다
그건 꽃의 냄새가 아니라,
오래된 책갈피를 넘길 때만 나는 시간의 냄새,
혹은 삶을 오래 품은 가구의 나무결에서 나는 마른 향 같기도 했다
그는 그렇게 쾌쾌묵은 이야기를 남기며 걸었고,
나는 무심코 그가 남긴 이야기 중 말 없는 구절들을 몸으로 받아 적었다
그리고 나는 그제야 알았다
허리 굽은 햇살이 노인을 찾은 이유를